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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음모론이 되는 세상

phoue

4 min read --

조용한 시작, 비극의 서막

어느 날 오후, 당신의 스마트폰 화면에 흥미로운 영상 하나가 떠오릅니다. “충격! 유명 정치인의 숨겨진 비밀 폭로” 자극적인 제목과 섬네일에 이끌려 영상을 클릭합니다. 영상이 끝나자, 비슷한 종류의 영상들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알고리즘은 친절하게도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계속해서 추천해주죠. 그렇게 몇 개의 영상을 더 보고 나면, 어느새 당신은 처음의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거대한 무언가가 세상을 조종하고 있다는 확신에 사로잡히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더 이상 낯선 이야기가 아닙니다. 소셜 미디어 속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이죠. 작은 눈송이 같았던 가짜뉴스는 소셜 미디어라는 거대한 언덕을 만나 뒹굴기 시작합니다. ‘좋아요’와 ‘공유’는 눈 뭉치를 키우는 힘이 되고, 추천 알고리즘은 가장 가파른 경사로를 안내합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 눈 뭉치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음모론의 눈사태가 되어 우리 사회를 덮칩니다.

가짜 뉴스가 소셜미디어라는 언덕을 만나면?
가짜 뉴스가 소셜미디어라는 언덕을 만나면?

플랫폼이 키워낸 비극의 사례들

이야기는 특정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현실의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 페이스북: 증오가 피운 학살의 불꽃, 미얀마 로힝야 사태

미얀마에서 페이스북은 단순한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를 넘어, 인터넷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로힝야족은 불법 이민자이며, 우리의 것을 빼앗는 벌레’라는 식의 가짜뉴스가 조직적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페이스북의 그룹 기능과 페이지는 증오를 확산시키는 완벽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과 그룹을 형성해 서로의 혐오를 확인하고 증폭시켰습니다.

알고리즘은 더 많은 사람에게 이 증오 섞인 콘텐츠를 배달했습니다.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온라인상의 혐오는 현실 세계의 폭력으로 번져, 수많은 로힝야족이 학살되고 삶의 터전을 잃는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유엔(UN) 조사단조차 페이스북이 로힝야족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지적할 정도였죠. 하지만 페이스북의 대응은 너무나도 더뎠습니다. 언어적 장벽과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을 핑계로 사실상 방관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고, 비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뒤에야 뒤늦은 사과를 내놓았을 뿐입니다.

미얀마 로힝야족 난민들이 힘겹게 국경을 넘는 모습
미얀마 로힝야족 난민들이 힘겹게 국경을 넘는 모습

## 왓츠앱: 암호화된 메시지에 실려 온 죽음, 인도 집단 린치

강력한 암호화 기능으로 사적인 대화의 장이 된 왓츠앱. 하지만 이 ‘보안’이라는 특성은 인도의 작은 마을들을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아이들을 납치하는 낯선 이들이 마을에 나타났다"는 가짜 메시지가 조작된 영상과 함께 순식간에 퍼져나갔습니다. 메시지는 가족, 친구, 이웃의 단체 대화방을 통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달되었고, 그 진위는 누구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암호화되어 있기에 메시지의 최초 유포자를 추적하거나 확산 경로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공포는 곧 낯선 이에 대한 맹목적인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아무 죄 없는 여행객이나 외부인이 아이 유괴범으로 몰려 마을 사람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사망하는 끔찍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습니다. 왓츠앱은 메시지 전달 횟수를 제한하는 등의 소극적인 조치를 취했지만,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퍼진 불신과 공포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 유튜브: 알고리즘이 안내하는 음모론의 토끼굴, 피자게이트와 QAnon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시청 기록을 바탕으로 가장 흥미로워할 영상을 끊임없이 추천합니다. 이 기능은 우리를 편리하게 하지만, 동시에 아주 깊고 어두운 ‘토끼굴’로 안내하기도 합니다. ‘피자게이트’ 음모론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워싱턴 D.C.의 한 피자 가게 지하실에서 민주당 유력 인사들이 아동 성 착취 조직을 운영한다는 황당한 주장은 유튜브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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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음모론 영상을 시청한 사람에게 유튜브 알고리즘은 더욱 자극적이고 확증적인 다른 음모론 영상들을 연달아 추천했습니다. 이 토끼굴에 빠진 사람들은 점차 현실 감각을 잃고 음모론을 진실로 믿게 되었습니다. 결국 한 남성은 ‘아이들을 구하겠다’며 피자 가게에 총을 들고 난입하는 실제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알고리즘의 문제는 이후 QAnon과 같은 더욱 거대하고 위험한 음모론이 성장하는 토양이 되었고, 이는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라는 초유의 사태로까지 번졌습니다. 유튜브는 뒤늦게 유해 콘텐츠 규정을 강화했지만, 이미 알고리즘이 키워낸 괴물은 세상을 뒤흔들고 있었습니다.

여러 갈래로 나뉘는 미로 같은 토끼굴
여러 갈래로 나뉘는 미로 같은 토끼굴

#3. 음모론자들은 어떻게 우리를 사로잡는가

음모론자들은 이 플랫폼들의 특성을 교묘하게 활용하여 대중을 선동합니다.

  • 감정적 방아쇠 당기기: 그들은 논리나 팩트 대신 공포, 분노, 불신과 같은 원초적인 감정을 자극합니다. “기득권층이 당신을 속이고 있다"는 식의 메시지로 ‘우리’와 ‘저들’을 나누고, 소속감과 함께 적개심을 심어줍니다.
  • “스스로 연구하라"는 함정: 그들은 주류 언론이나 전문가를 믿지 말고 “직접 찾아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안내하는 길의 끝에는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왜곡된 정보와 거짓 자료들만이 가득할 뿐입니다.
  • 커뮤니티 형성: 라이브 스트리밍, 비공개 그룹 등을 통해 추종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합니다. 이곳에서 음모론은 단순한 정보를 넘어, 함께 공유하는 신념이자 종교가 됩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소셜 미디어 플랫폼 운영 주체들은 ‘표현의 자유’라는 방패 뒤에 숨거나, 수익성 악화를 우려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기 일쑤였습니다.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논란으로 번진 뒤에야 마지못해 계정을 삭제하거나 규제를 강화하는 ‘사후약방문’식의 대응을 반복해왔습니다.

#4. 우리가 보는 세상은 진짜 세상일까

소셜미디어는 인간의 세계관 형성에 생각보다 깊이 관여합니다. 소셜미디어로 인해 사회와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이 달라집니다. 거시적, 정치적 영역에서나 미시적, 개인적 영역에서나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소셜미디어가 불러올 충격과 영향을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이해해왔습니다.

독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우리가 사회에 대해,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21세기형 소셜 미디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않다.”

우리가 보고 믿는 세상은 어쩌면 내 손안의 작은 화면 속 알고리즘이 교묘하게 설계한, 또 다른 세상일지도 모릅니다.

#가짜뉴스#음모론#소셜미디어#유튜브#페이스북#왓츠앱#알고리즘#선동#사회문제#미디어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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