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 시사

게임체인저 위고비의 눈물

phoue

4 min read --

1. 한 줄기 빛: 기적의 신약 탄생기

이야기의 시작은 ‘GLP-1’이라는 조금은 낯선 이름의 호르몬에서 출발합니다. 본래 우리 몸속에서 혈당을 조절하고 뇌에 포만감을 전달하는 착한 일꾼이었죠. 덴마크의 자랑스러운 제약사, 노보노디스크는 이 GLP-1의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하던 물질이 체중 감소에도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수많은 연구 끝에, 노보노디스크는 GLP-1의 효과는 극대화하고, 몸속에서 더 오래 머물도록改良한 ‘세마글루타이드’ 성분을 개발해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이자, 비만 치료의 새로운 역사를 쓴 ‘위고비’의 심장이었죠. 오랜 시간 비만과의 전쟁에 뾰족한 수가 없던 인류에게 ‘위고비’의 등장은 그야말로 한 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노보노디스크 연구원이 실험실에서 세마글루타이드 분자 구조를 살펴보는 이미지
노보노디스크 연구원이 실험실에서 세마글루타이드 분자 구조를 살펴보는 이미지

2. 세상을 뒤흔든 열풍: ‘살 빼는 주사’의 시대

2021년, 미국 FDA의 승인을 받은 위고비는 순식간에 전 세계를 휩쓸었습니다. ‘기적의 다이어트 주사’라는 별명과 함께 할리우드 스타들과 유명인들이 앞다투어 그 효과를 간증하기 시작했죠. 주 1회 주사만으로 평균 15%의 체중 감량 효과를 보인다는 임상 결과는 비만으로 고통받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이는 폭발적인 수요로 이어졌습니다.

수요가 공급을 아득히 초과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위고비 품귀 현상’이 빚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약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나들었고, 노보노디스크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덴마크에서는 노보노디스크의 시가총액이 국가 전체 GDP를 뛰어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며, 명실상부한 ‘국민 기업’의 위용을 뽐냈습니다.


3. 빛의 이면: 연구로 확인된 부작용과 필연적 요요

하지만 눈부신 성공 뒤에는 감수해야 할 대가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불편함 정도로 여겨졌던 부작용들이 실제 연구 데이터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며 사용자들의 불안감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 연구가 말해주는 위고비의 부작용

위고비의 효과를 입증한 가장 대표적인 연구인 STEP(Semaglutide Treatment Effect in People with Obesity) 임상시험에서부터 부작용은 명확하게 보고되었습니다. 참가자 중 상당수가 **메스꺼움(44%), 설사(30%), 구토(24%), 변비(24%)**와 같은 위장관계 부작용을 경험했죠. 이는 약물이 위장 운동을 늦추는 원리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소화불량으로 불편해하는 사람의 모습을 담은 일러스트
소화불량으로 불편해하는 사람의 모습을 담은 일러스트

더 나아가, 의학 학술지 ‘JAMA’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위고비와 같은 GLP-1 계열 약물이 췌장염, 담낭 질환, 장폐색과 같은 심각한 질환의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비록 발생 확률은 드물지만, 한번 발생하면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경고였죠. 여기에 설치류 실험에서 갑상선 수질암 위험이 보고되어 제품에는 ‘블랙박스 경고’가 붙었고, 체중 감량 시 지방뿐 아니라 근육까지 함께 빠지는 문제 역시 중요한 부작용으로 지적되었습니다.

# 약을 끊으면 시작되는 ‘요요’의 공포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약을 중단했을 때 찾아왔습니다. 위고비는 비만이라는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약효가 지속되는 동안 ‘증상’을 조절하는 약에 가깝습니다. 약물로 억지로 눌러왔던 식욕과 신체 시스템이 약을 끊는 순간 원래대로, 혹은 그 이상으로 돌아오는 것이죠.

Advertisement

이 현상은 STEP 1 임상시험의 연장 연구에서 명확하게 증명되었습니다. 해당 연구에서 위고비 투여를 중단한 참가자들은 1년 만에 감량한 체중의 3분의 2 이상을 회복했습니다. 15kg을 뺐다면, 1년 만에 다시 10kg이 찐 셈입니다. 억눌렸던 식욕이 폭발하고, 느려졌던 위장 운동이 정상화되면서 체중은 무섭게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결국 위고비를 통한 체중 유지는 ‘평생’ 약을 맞아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경제적, 심리적 부담감과 함께 깊은 좌절감을 안겨주었습니다.


4. 거인의 등장: 일라이 릴리의 역습

노보노디스크가 영원한 왕좌를 누릴 것 같던 그때, 미국의 거대 제약사 일라이 릴리가 무서운 기세로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일라이 릴리가 개발한 ‘마운자로(젭바운드)‘는 위고비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약이었습니다. GLP-1에 더해 GIP라는 또 다른 호르몬까지 동시에 공략하여, 임상 시험에서 위고비를 뛰어넘는 평균 20% 이상의 체중 감량 효과를 입증해버린 것이죠.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은 시장의 판도를 순식간에 바꾸어 놓았습니다. 소비자들과 투자자들의 관심은 더 뛰어난 효과를 보이는 마운자로에게로 쏠리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일라이 릴리는 한 발 더 나아가, 주사제가 아닌 먹는 비만 치료약(오르포글리프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며 노보노디스크의 숨통을 조여왔습니다. 주사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수많은 잠재 고객들까지 흡수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의 등장을 예고한 셈입니다.

일라이 릴리 와 노보노 디스크 로고
일라이 릴리 와 노보노 디스크 로고


5. 흔들리는 왕국: 덴마크 국민 기업의 위기

결국, 시장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2024년 6월, 정점을 찍었던 노보노디스크의 주가는 무섭게 곤두박질치기 시작했습니다. 강력한 경쟁, 부작용과 요요 현상이라는 명확한 한계, 그리고 예상보다 더딘 시장 성장률 등이 겹치면서 회사의 2025년 실적 전망치가 하향 조정되자, 투자자들은 가차 없이 등을 돌렸습니다.

불과 1년여 만에 주가는 고점 대비 60% 이상 폭락하며 거대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한 기업의 위기를 넘어, 노보노디스크에 경제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던 덴마크 전체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낳고 있습니다. 한때 세상을 구원할 ‘기적의 신약’으로 불렸던 위고비. 그 눈부신 영광의 시간이 끝나고, 이제 노보노디스크는 왕좌를 지키기 위한 처절한 생존 경쟁에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하향 곡선을 그리는 노보노디스크 주가 그래프
하향 곡선을 그리는 노보노디스크 주가 그래프

#위고비#노보노디스크#일라이릴리#마운자로#비만치료제#GLP-1#위고비부작용#위고비요요#STEP임상시험#세마글루타이드#

Recommended for You

안전 마진: 워런 버핏은 알고 리먼은 몰랐던 부의 비밀

안전 마진: 워런 버핏은 알고 리먼은 몰랐던 부의 비밀

5 min read --
자율성 프리미엄: 돈으로 시간을 사는 법, 당신도 진짜 부자가 될 수 있다

자율성 프리미엄: 돈으로 시간을 사는 법, 당신도 진짜 부자가 될 수 있다

13 min read --
역인수에서 스테이블코인까지: 네이버-두나무 빅딜의 숨겨진 전략

역인수에서 스테이블코인까지: 네이버-두나무 빅딜의 숨겨진 전략

26 min read --

Advertisemen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