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나라의 힘은 드넓은 영토와 막강한 군사력에서 나왔습니다. 가령, 19세기 영국은 강력한 해군력으로 전 세계 바다를 지배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건설했죠. 20세기 냉전 시대에는 미국과 소련이 더 많은 핵무기를 만들고, 더 넓은 우주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며 세계를 두 조각으로 나누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알던 전통적인 지정학이었습니다. 국경을 맞대고, 바다와 하늘에서 힘을 겨루던 시대였죠.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이야기는 조금 다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 바로 디지털 기술이 세계의 판도를 뒤흔드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되었거든요. 마치 고대의 신들이 휘두르던 번개처럼, 기술은 이제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거대한 ‘무기’이자, 새로운 관계를 맺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전쟁터, 디지털 영토
우리는 모두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살아가죠.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수많은 앱과 서비스를 이용하며 디지털 세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이 기술들 뒤에는 보이지 않는 국경, 즉 ‘디지털 영토’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답니다.
과거 제국들이 더 많은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었다면, 오늘날의 강대국들은 자국의 기술 플랫폼이 전 세계의 디지털 영토를 장악하도록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 과거의 영토 확장: 15세기 대항해시대에 유럽 국가들이 신항로를 개척하고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여 식민지를 건설하며 부와 힘을 축적했습니다.
- 현대의 디지털 영토 확장: 미국의 구글, 메타, 중국의 텐센트, 바이트댄스(틱톡) 같은 기업들은 자사의 서비스를 전 세계에 퍼뜨려 사용자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경제적, 문화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특정 국가가 특정 플랫폼에 종속되는 현상은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식민지’ 문제를 낳기도 합니다.
이들의 경쟁은 단순히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의 생각과 데이터를 누가 통제하느냐의 문제, 즉 미래의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의 싸움인 셈입니다.
국경을 넘나드는 보이지 않는 군대
기술은 국경을 너무나 쉽게 넘나듭니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새로운 외교적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습니다.
- 데이터는 어디로 가는가?: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은 서로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국경을 넘나드는 스파이를 보내고 도청 장치를 설치했습니다. 2013년, 전직 미 국가안보국(NSA)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 정부가 ‘프리즘’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의 데이터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이는 동맹국 정상들의 통화까지 도청했다는 사실을 포함하고 있어 큰 외교적 파장을 일으켰죠. 이 사건은 디지털 시대의 정보 수집과 주권 문제가 얼마나 민감한지를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 누가 규칙을 만드는가?: 과거에는 철도, 도로, 항만 같은 물리적인 인프라를 누가 장악하느냐가 중요했습니다. 지금은 5G 통신망, 해저 케이블, 반도체 공급망 같은 기술 인프라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동맹국들에게 중국 화웨이의 5G 장비를 사용하지 말라고 압력을 가하는 것은, 미래 통신 기술의 표준과 규칙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대표적인 디지털 외교 사례입니다. 이는 단순히 통신 장비를 파는 문제를 넘어, 미래 디지털 경제의 주도권을 둘러싼 치열한 힘겨루기입니다.
- 보이지 않는 공격, 사이버 전쟁: 과거에는 미사일과 폭탄으로 국가 기반 시설을 파괴했습니다. 하지만 2010년, 이란의 핵시설 원심분리기가 갑자기 오작동하며 파괴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범인은 **‘스턱스넷(Stuxnet)’**이라는 컴퓨터 웜 바이러스였습니다. 이는 물리적 충돌 없이도 적국의 핵심 인프라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최초의 사이버 전쟁 사례로 꼽힙니다. 이제 각국은 국방의 한 축으로 사이버 사령부를 창설하고 보이지 않는 공격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기술 외교관의 시대
이처럼 복잡하고 첨예한 갈등 속에서, 새로운 유형의 외교, 바로 **‘디지털 외교’**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외교관들은 군축 협상 대신 ‘AI 무기 통제’를, 무역 협상 대신 ‘데이터 이전 협약’을 논의해야 합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은 디지털 외교의 가장 뜨거운 현장입니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 기술과 장비가 중국의 군사력 강화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력한 수출 통제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에 맞서 중국은 희귀 광물 수출을 통제하며 맞불을 놓고 있죠. 이는 마치 과거 강대국들이 석유 자원을 무기화했던 것처럼, 이제는 작은 칩 하나가 국가 안보와 경제의 명운을 좌우하는 핵심 전략 자산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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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우리에게 놀라운 편리함과 가능성이라는 ‘도구’를 선물했지만, 동시에 국가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안보를 위협하는 날카로운 ‘무기’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외교가 지도 위에서 이뤄졌다면, 미래의 외교는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와 반도체 회로 위에서 펼쳐질 것입니다. 이 새로운 시대의 지정학적 지도 위에서, 기술이라는 언어를 이해하고 구사하는 능력이 모든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