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완벽한 ‘에코-라이프’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사는 30대, 김지연입니다. 저는 스스로 꽤 의식 있는 소비자라고 생각해왔어요. 외출할 땐 항상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챙기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은 날이면 플라스틱 용기를 꼼꼼하게 헹궈 분리수거함에 넣었죠. 가끔은 저렴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기분 전환 삼아 옷을 사고, 안 입는 옷들은 의류 수거함에 넣으며 ‘자원의 선순환’에 기여한다고 뿌듯해했습니다. 제 일상은 나름의 ‘친환경’ 규칙들로 채워져 있었고, 이만하면 괜찮다고, 지구를 위해 제 몫을 다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1장: 배달 용기, 나의 착한 배신
그날은 유독 야근이 길어져, 허기진 배를 붙잡고 스마트폰으로 떡볶이를 주문했습니다. 맛있게 먹고 난 뒤, 저는 늘 하던 대로 남은 양념을 깨끗이 닦아내고 플라스틱 용기를 분리수거함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산더미처럼 쌓인 배달 용기들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이 많은 플라스틱은 전부 어디로 갈까?’
그 작은 의문이 저를 ‘리얼리티 쇼크’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충격적인 진실은, 제가 그렇게 열심히 씻어서 버린 플라스틱 용기 중 상당수가 실제로는 재활용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 재활용의 진실: 음식물에 오염되었거나, 여러 재질이 섞여 있거나, 색깔이 들어간 플라스틱은 선별 과정에서 탈락해 결국 소각되거나 매립된다는 것.
- 보이지 않는 비용: 제가 누린 30분의 편리함을 위해, 이 플라스틱은 땅속에서 500년 넘게 썩지 않고 남아 지구를 괴롭히게 될 운명이었습니다.
제가 ‘착한 일’이라 믿었던 분리수거는 편리한 소비에 대한 면죄부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해졌습니다.
2장: 옷장 속의 비극, 패스트패션의 민낯
배달 음식의 충격은 제 소비 습관 전체를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제 옷장을 가득 채운 옷들이 눈에 들어왔죠. 저는 유행에 민감한 편이라, 저렴한 가격의 ‘패스트패션’을 즐겨 입었습니다. 한두 철 입고 버려도 부담 없다는 게 큰 장점이었죠.
하지만 제가 몰랐던 사실은, 우리가 가볍게 사고 버리는 옷 한 벌을 만들기 위해 지구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였습니다.
- 물과 화학물질: 티셔츠 한 장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물은 약 2,700리터. 한 사람이 3년 동안 마실 수 있는 양입니다. 옷을 염색하는 과정에서는 수많은 화학 물질이 강과 바다로 흘러들어 갑니다.
- 플라스틱 섬유: 제가 즐겨 입던 저렴한 옷들의 대부분은 ‘폴리에스터’ 같은 합성 섬유였습니다. 이 옷들을 세탁할 때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플라스틱이 떨어져 나와 하수구를 통해 바다로 흘러가고, 결국 해양 생물과 우리 식탁 위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제 옷장은 더 이상 즐거움의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지구의 신음 소리가 가득한 비극의 현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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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보이지 않는 쓰레기, 디지털 탄소 발자국
플라스틱과 옷처럼 눈에 보이는 쓰레기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큰 충격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클라우드에 사진을 저장하고, 퇴근 후에는 몇 시간씩 OTT 서비스를 즐겨보는 평범한 디지털 시민입니다. 손에 잡히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니, 이런 활동은 환경과 무관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우리가 스트리밍 버튼을 누르는 순간,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있는 거대한 ‘데이터 센터’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디지털 생활은 공짜가 아니다. 막대한 양의 전기를 먹는 하마, 데이터 센터가 그 비용을 치르고 있다.’
이 서버들을 식히기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전력이 소모되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탄소가 배출됩니다. 제 편리한 디지털 라이프가 사실은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손에 잡히지 않기에 더 무서운 현실이었습니다.
불편함을 선택할 용기
이제 저는 압니다. 제가 살아온 방식이, 우리 대부분이 편리하다고 여기는 일상이 실은 지구에 빚을 지는 삶이었다는 것을요. 텀블러 하나를 쓰는 것으로 모든 책임을 다했다고 착각했던 과거의 제가 부끄럽습니다.
‘리얼리티 쇼크’는 저에게 아픈 진실을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절망만 남은 것은 아닙니다.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조금 더 명확해졌기 때문입니다. 배달 음식을 시키기 전에 한 번 더 고민하고, 옷 한 벌을 사더라도 오래 입을 수 있는 것으로 신중하게 고르며, 불필요한 데이터는 정리하는 작은 습관.
물론 불편합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우리가 지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선택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 아닐까요? 완벽한 친환경주의자는 될 수 없겠지만, 어제의 나보다는 조금 더 나은 ‘지구 시민’이 되기 위해, 저는 오늘 기꺼이 이 불편함을 선택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