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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동십훈의 진실: 4,300년 비밀인가, 현대의 신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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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던 아기 놀이 ‘단동십훈’의 감동적인 전설과 그 이면에 숨겨진 역사적 진실을 탐구합니다.

  • ‘단동십훈’에 담긴 10가지 가르침의 신화적 의미
  • ‘단동십훈’ 전설이 역사적 사실이 아닌 이유
  • ‘도리도리’, ‘짝짜꿍’ 등 놀이의 진짜 어원과 과학적 효과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사랑의 언어, 단동십훈

당신과 아기, 단둘이 마주 앉은 고요한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아기의 보드라운 두 손을 잡고 나지막이 “도리도리… 짝짜꿍…” 노래를 부르는 순간, 그것은 아마도 인류 최초의 대화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 놀이를 그저 아기를 어르는 단순한 몸짓이라 생각해왔습니다.

엄마와 아기가 마주보며 교감하는 모습
엄마와 아기가 마주보며 교감하는 모습

그런데 만약, 이 놀이 속에 우리 민족의 역사와 우주의 철학이 암호처럼 숨겨져 있다면 어떨까요? ‘도리도리’와 ‘짝짜꿍’이 사실은 4,300여 년 전 단군 시대부터 내려온 왕가의 비전 육아법, 즉 **단동십훈(檀童十訓)**이었다는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지금부터 그 비밀의 문을 함께 열어보겠습니다.

1부. 무릎 위에서 펼쳐지는 우주: 단동십훈 10가지 가르침

‘단동십훈’은 **‘단군(檀)의 아이(童)들이 익혀야 할 열 가지(十) 가르침(訓)’**이라는 뜻으로, 단순한 놀이가 아닌 뇌신경과 소근육을 발달시키는 과학적 훈련이자, 우주의 섭리를 심어주는 철학 교육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제1훈. 불아불아 (弗亞弗亞): 생명의 찬가

아기 허리를 잡고 좌우로 기우뚱거리며 “너는 하늘에서 내려온 귀한 존재"라는 생명의 존귀함을 축복합니다.

제2훈. 시상시상 (侍上侍上 / 詩想詩想): 공경의 가르침

아기를 앞뒤로 흔들어주며, 세상의 이치에 순응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르칩니다.

제3훈. 도리도리 (道理道理): 지혜의 첫걸음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한쪽만 보지 말고 세상 만물의 이치와 도리를 깨우치라는 지혜를 전합니다.

제4훈. 지암지암 / 죔죔 (持闇持闇): 분별의 지혜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살면서 참되고 바른 것은 굳게 잡고 그릇된 것은 멀리하라는 분별력을 가르칩니다.

제5훈. 곤지곤지 (乾知坤知 / 坤地坤地): 하늘과 땅의 조화

손가락으로 손바닥을 콕콕 찧으며, 하늘과 땅의 이치를 깨달아 조화로운 사람이 되라는 의미를 담습니다.

제6훈. 섬마섬마 (西摩西摩): 홀로서기의 격려

아기가 스스로 서려 할 때 “섬마섬마"하고 응원하며, 독립적인 인격체로 자라도록 격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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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훈. 업비업비 (業非業非): 첫 번째 도덕률

위험한 행동을 막으며 “업비업비"라고 말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닌 것은 하지 말라는 최초의 도덕 교육입니다.

제8훈. 아함아함 (亞含亞含 / 亞合亞合): 내 안의 소우주

손으로 입을 막는 시늉은, 천지의 기운을 내 안에 모으고 말을 조심하라는 교훈을 줍니다.

제9훈. 짝짜꿍 (作作宮): 창조의 환희

손뼉을 치는 것은 음양이 조화롭게 만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기쁨을 표현하며,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제10훈. 질라아비 훨훨 (地羅亞備活議 / 支娜阿備活活議): 자유를 향한 축복

아기 팔을 잡고 나비처럼 춤을 추며, 아이의 영혼과 육신이 자유롭게 날아오르기를 축복하는 마지막 의식입니다.

그저 아기의 재롱이라고만 생각했던 놀이들이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2부. 역사가의 질문: 오래된 이야기의 균열

제가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정말 가슴 벅차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역사가의 숙명은 아름다운 이야기에 감동하는 것을 넘어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수천 년’이라는 시간 앞에서 우리는 냉철한 증거를 살펴봐야 합니다.

완벽해 보이는 이야기 속에서 몇 가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이 발견됩니다.
완벽해 보이는 이야기 속에서 몇 가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이 발견됩니다.

첫 번째 수수께끼: 언어의 변화

언어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계속 변합니다. 4,300년 전의 소리와 의미가 오늘날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전해졌다는 것은 언어학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두 번째 수수께끼: 한자의 시대착오

단동십훈의 모든 해석은 ‘도리(道理)’, ‘곤지(坤地)’ 같은 **한자(漢字)**에 기반합니다. 하지만 역사학계의 정설에 따르면, 단군 시대에 한반도에서는 한자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조선 시대 그림에 스마트폰이 등장하는 것과 같은 **명백한 시대착오(anachronism)**입니다.

세 번째 수수께끼: 철학의 시간여행

해설에 등장하는 ‘도(道)’, ‘음양(陰陽)’ 등의 개념은 단군 시대보다 훨씬 뒤인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체계화된 철학 사상입니다. 단군 시대에 이런 고도로 발달한 철학이 이미 존재했다는 주장은 역사적 순서에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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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단동십훈이 우리 고유의 전통임을 증명하려던 한자와 동양 철학이 오히려 그것이 고대의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3부. ‘오래된’ 전통의 현대적 탄생

그렇다면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어디서 태어난 것일까요?

문헌상 ‘단동십훈’이 뚜렷하게 등장하는 것은 1962년 출간된 『빛나는 겨레의 얼』이라는 책으로, 역사적 고증보다는 특정 민족종교의 사상적 해석에 가깝습니다.

이 이야기는 **유사역사학(Pseudohistory)**과 결합하며 힘을 얻었습니다. 유사역사학이란 엄밀한 학문적 방법론을 따르지 않고, ‘우리 민족의 위대한 고대’라는 결론에 맞춰 역사를 왜곡하는 ‘가짜 역사’를 말합니다. 특히, 『환단고기(桓檀古記)』를 신봉하거나 증산도(甑山道)와 같은 일부 단체에서 자신들의 세계관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유포했습니다.

언론과 방송은 ‘단동십훈’이 대중에게 상식처럼 퍼져나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언론과 방송은 '단동십훈'이 대중에게 상식처럼 퍼져나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2008년 유력 일간지 칼럼과 2011년 EBS 다큐멘터리를 통해 ‘단동십훈’은 공신력 있는 ‘우리 전통의 비밀’로 대중에게 각인되었습니다. 이는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고 싶은 대중의 열망, 유사역사학의 서사, 그리고 미디어의 무비판적 수용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현대의 신화’였던 셈입니다.

4부. 말의 맨 얼굴: ‘도리도리’는 그냥 ‘도리도리’다

그렇다면 모든 해석을 걷어냈을 때, 이 말들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요?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도리도리’, ‘짝짜꿍’, ‘곤지곤지’, ‘죔죔’ 등은 모두 특별한 한자 어원 없이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순우리말’**입니다. 대부분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이거나, 움직임을 흉내 낸 의태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죔죔 (잼잼): ‘잼잼’이 아닌 ‘죔죔’이 표준어이며, ‘아기가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동작’을 뜻하는 ‘죄암죄암’이 줄어든 말입니다.
  • 짝짜꿍: ‘젖먹이가 손뼉을 치는 재롱’ 또는 ‘서로 짝이 잘 맞는 일’을 뜻하는 순우리말입니다.
  • 곤지곤지: 손가락으로 손바닥을 찧는 모양을 나타내는 의태어로, ‘진진’(경상), ‘지깡지깡’(전라) 등 다양한 지역 방언이 존재합니다. 이는 고정된 한자어에서 유래했다면 나타나기 어려운 현상입니다.

비교/대안

‘단동십훈’ 신화와 학문적 분석 비교

‘단동십훈’이라는 매혹적인 신화와, 역사와 언어학이 밝혀낸 진실을 아래 표로 비교해 보겠습니다.

놀이‘단동십훈’의 신화적 해석국어학적/역사학적 분석
도리도리道理道理: 천지 만물의 도리를 깨달으라순우리말 의태어. 고개를 좌우로 젓는 모양. 역사적/문자적 근거 없음.
짝짜꿍作作宮: 음양의 조화로 궁(새로운 세계)을 만들라순우리말 의성어. 손뼉 치는 소리. ‘짝이 잘 맞는다’는 의미로 확장.
곤지곤지乾知坤地: 하늘과 땅의 이치를 알라순우리말 의태어. 손가락으로 손바닥을 찧는 모양. 다양한 방언 존재.
죔죔(잼잼)持闇持闇: 진리를 붙잡고, 가질 줄 알면 놓을 줄도 알라‘죄암죄암’의 준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모양을 나타내는 순우리말.

결론

‘단동십훈’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신화를 믿고 싶었던 ‘내 아이가 지혜롭고 올바른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만큼은 시대를 초월한 모든 부모의 진실된 염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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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단동십훈’의 신화가 약속했던 교육적 효과는 현대 뇌과학과 발달심리학을 통해 증명되고 있습니다. 이 놀이들은 아이의 정서적 유대감 형성, 신체 및 인지 발달에 매우 효과적인 최고의 ‘전인(全人)교육’입니다.

핵심 요점 3줄 요약

  1. ‘단동십훈’은 단군 시대의 비전이 아닌, 20세기 중반 이후 만들어진 현대의 신화입니다.
  2. ‘도리도리’, ‘짝짜꿍’ 등은 심오한 한자 뜻이 아닌, 소리나 모양을 흉내 낸 순우리말입니다.
  3. 신화는 사실이 아니지만, 이 놀이들은 아이의 정서, 신체, 인지 발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결국 ‘도리도리 짝짜꿍’에 담긴 진짜 비밀은 4,300년 전 단군의 가르침이 아닌, 세대를 넘어 이어져 온 부모의 본능적인 지혜와 사랑입니다. 이제 ‘단동십훈’의 신화 너머, 우리 아이와의 교감에 담긴 진짜 마법에 집중해 보세요.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찾아 헤매던 가장 위대하고 오래된 비밀입니다.

참고자료
#단동십훈#전통육아#도리도리#짝짜꿍#곤지곤지#유사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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