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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뇌가 최악의 재무 상담사인 이유

pho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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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이기는 법

서론: 신어보지 않는 신발과 쓰지 않는 헬스장 회원권의 미스터리

솔직해져 봅시다. 당신의 옷장 깊숙한 곳에는 신발 한 켤레가 있습니다. 70% 할인이라는 말에 혹해서 샀지만, 딱 한 번 신었죠. 그 옆에는 새해 다짐에 불타올라 구매한 요가 매트가 있습니다. 아직 비닐도 뜯지 않은 채로요. 왜 우리처럼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미래의 자신이 후회할 결정을 이토록 꾸준히 내리는 걸까요? 왜 우리의 행동은 최선의 의도와 종종 어긋나는 걸까요?

우리의 옷장 속에는 종종 비합리적인 결정의 증거들이 잠자고 있습니다.
우리의 옷장 속에는 종종 비합리적인 결정의 증거들이 잠자고 있습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두 종류의 인간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는 전통 경제학이 상상한 완벽하게 논리적인 로봇,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입니다. 다른 하나는 매일 아침 거울에서 마주하는, 복잡하고 감정적이며 때로는 지저분하기까지 한 진짜 ‘인간‘이죠.

이 글은 단순히 인간의 재미있는 실수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측 가능하고 체계적인 비합리성의 패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행동경제학은 바로 이 패턴을 해독하는 과학, 즉 ‘인간 두뇌 사용 설명서‘와 같습니다. 지금부터 노벨상 수상자들의 지적인 세계로, 수십억 달러를 날린 기업들의 대실패 현장으로, 그리고 마침내 ‘자기 두뇌의 CEO‘가 되는 실용적인 도구 상자로 함께 떠나보겠습니다.


1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논리 로봇 (경제학자들에겐 죄송!)

이상적인 인간

경제학 교과서 속 세상은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는 이상적인 인간상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 경제적 인간은 마치 슈퍼컴퓨터와 같습니다. 완벽한 정보를 가지고 있고, 흔들림 없는 의지력을 갖추었으며, 오직 하나의 목표, 즉 개인의 이익(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움직입니다. 이 모델은 우아하고 수학적으로 아름다우며, 복잡한 세상을 단순화시켜 주었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은 오랫동안 이 모델을 사랑했습니다.

초기의 균열들

하지만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조차 인간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국부론》뿐만 아니라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복합적인 존재임을 묘사했습니다. 20세기 초, 제도학파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결정이 합리적 계산보다는 사회적 ‘습관‘이나 ‘관습‘에 의해 좌우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결정적 균열: 허버트 사이먼

그러나 이 완벽한 합리성이라는 가정에 진정으로 정면 도전한 인물은 허버트 사이먼이라는 이름의 다재다능한 천재였습니다. 그의 주장은 명쾌했습니다. 인간은 최적화(optimization)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만족화(satisficing)‘를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식당을 고르는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최적화를 추구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면 도시의 모든 식당을 조사하고, 리뷰, 메뉴, 가격을 완벽하게 비교 분석하여 단 하나의 최고 식당을 찾아낼 것입니다. 반면, 만족화를 추구하는 우리는 거리를 걷다가 괜찮아 보이고 빈자리가 있는 식당을 발견하면 그곳으로 들어갑니다. 우리는 ‘최고’를 찾지 않고 ‘이만하면 충분히 좋은’ 것을 찾습니다.

사이먼은 이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이라는 개념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지만, 당시 주류 경제학계는 그의 아이디어가 통찰력은 있지만 수학적으로 엄밀하지 않다고 평가절하했습니다. 주류 경제학의 견고한 수학적 성채를 뚫기 위해서는, 철학적 통찰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인간의 비합리성이 단지 실수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패턴임을 수학적으로, 그리고 실험적으로 증명해낼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심리학자들이 무대에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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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두뇌 해커들: 경제학 노벨상을 수상한 심리학자들

환상의 파트너십

허버트 사이먼이 뿌린 씨앗에 싹을 틔운 사람들은 대니얼 카너먼아모스 트버스키라는 두 이스라엘 출신 심리학자였습니다. 이 전설적인 지적 파트너십의 핵심 기여는 인간의 판단 ‘오류‘가 무작위적인 실수가 아니라, 우리 뇌의 작동 방식에서 비롯된 체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편향‘임을 엄격한 실험으로 증명해낸 것입니다.

주류로 가는 다리

카너먼과 트버스키가 실험실에서 인간 마음의 비밀을 파헤치고 있을 때, 젊은 경제학자 리처드 탈러는 현실 세계에서 전통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들(‘이례 현상’)을 수집하고 있었습니다. 똑똑한 동료 교수들조차 왜 그렇게 비합리적인 경제적 선택을 반복하는지 고민하던 그는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연구에서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탈러의 역할은 심리학의 발견과 경제학 이론 사이에 결정적인 ‘다리‘를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심리학적 통찰을 경제학의 언어로 번역하여 ‘보유 효과’, ‘심리 회계’ 같은 실제 경제 현상에 적용했습니다.

이단아에서 주류로

이들의 여정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습니다. 사이먼의 철학적 문제 제기, 카너먼트버스키의 심리학적 증명, 그리고 탈러의 경제학적 통합이라는 이 3단계는 행동경제학이 성공적으로 뿌리내리는 데 필수적이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 이들의 핵심 논문이 발표된 이후, 관련 연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한때 ‘이단’ 취급받던 이 분야는 이제 전 세계 유수 대학의 정규 과목이자 정부 정책과 기업 경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류 학문이 되었습니다. 사이먼(1978), 카너먼(2002), 탈러(2017)에게 수여된 세 번의 노벨 경제학상은 행동경제학이 경제학의 변방에서 핵심으로 이동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역사적 이정표입니다.

행동경제학의 선구자들은 세 번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으로 그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행동경제학의 선구자들은 세 번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으로 그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3부: 당신 마음의 비밀 규칙: 사용자 가이드

전망 이론: 얻는 기쁨보다 잃는 고통이 더 크다

행동경제학의 가장 핵심적인 이론인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가 실제로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지를 설명합니다. 이는 전통 경제학의 기대효용이론에 대한 강력한 대안입니다.

  • 준거점(Reference Points): 우리는 가진 돈의 절대적인 액수(예: 통장 잔고 5,000만 원)에 따라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특정 기준점으로부터의 ‘변화‘에 반응합니다. 연봉이 4,000만 원에서 3,800만 원으로 줄어든 사람과 2,800만 원에서 3,000만 원으로 오른 사람을 생각해 보세요. 절대 액수는 전자가 훨씬 높지만, 행복감은 후자가 더 큽니다. 이전 연봉이라는 ‘준거점’ 때문에 한쪽은 ‘손실‘을, 다른 쪽은 ‘이익‘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 손실 회피(Loss Aversion): 이것이 바로 전망 이론의 핵심입니다. 10만 원을 얻는 기쁨보다 10만 원을 잃는 고통이 심리적으로 훨씬 더 크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그 고통은 기쁨보다 약 2배에서 2.5배 정도 더 강합니다. 이 강력한 심리적 기제가 바로 우리가 왜 그렇게 현재 가진 것을 포기하기 어려워하고(보유 효과), 변화를 싫어하는지(현상 유지 편향)를 설명하는 열쇠입니다.

이러한 심리적 원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유명한 ‘아시아 질병 문제’ 실험입니다.

스토리: 아시아 질병 문제

당신이 공중 보건 책임자라고 상상해 보세요. 희귀한 아시아 질병이 퍼져 600명이 죽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당신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프레임 1 (이익):

  • A안: 200명을 ‘확실히 살린다’.
  • B안: 1/3 확률로 600명을 모두 ‘살리고’, 2/3 확률로 아무도 ‘살리지 못한다’.

프레임 2 (손실):

  • C안: 400명이 ‘확실히 죽는다’.
  • D안: 1/3 확률로 아무도 ‘죽지 않고’, 2/3 확률로 600명 모두 ‘죽는다’.

수학적으로 A안과 C안은 동일한 결과(200명 생존, 400명 사망)를, B안과 D안도 동일한 결과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이익’ 프레임에서는 72%의 사람들이 확실한 이익(200명을 살리는 것)을 택해 A안을 선택했습니다. 반면, ‘손실’ 프레임에서는 단 22%만이 C안을 선택하고, 78%가 불확실한 도박, 즉 D안을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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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전망 이론의 예측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익을 지켜야 할 때는 위험을 회피하고(A안 선택), 손실을 피해야 할 때는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더 큰 위험을 감수하는(D안 선택) 것입니다. 우리의 선택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이 어떻게 포장되느냐(프레이밍)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집니다.

휴리스틱과 편향: 뇌의 게으르지만 위험한 지름길

우리의 뇌는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분석하는 대신, 빠르고 효율적인 판단을 위한 정신적 지름길, 즉 **휴리스틱(heuristics)**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지름길은 때로 체계적인 오류, 즉 **편향(bias)**으로 이어집니다.

  • 기준점 설정(Anchoring): 처음 들은 정보가 닻(anchor)처럼 머릿속에 박혀 이후의 판단을 좌우하는 현상입니다. 협상에서 처음 제시된 가격이 최종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상점에서 높은 ‘정가’를 ‘할인가’와 함께 보여주어 할인 폭이 커 보이게 만드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 가용성(Availability): 어떤 사건의 빈도를 판단할 때, 그 사례가 얼마나 쉽게 머릿속에 떠오르는지에 의존하는 경향입니다. 언론에서 비행기 사고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 통계적으로 훨씬 위험한 자동차 사고보다 비행기 사고의 위험을 과대평가하게 됩니다.
  • 프레이밍(Framing): 위에서 본 아시아 질병 문제처럼, 동일한 내용이라도 표현 방식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는 현상입니다. ‘지방 5% 함유’ 요구르트보다 ‘95% 무지방’ 요구르트가 더 건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 효과 때문입니다.

내면의 줄다리기: 계획가 vs. 행동가

우리 내면에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이성적인 ‘계획가‘와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충동적인 ‘행동가‘가 공존합니다. 이 둘의 싸움 때문에 우리는 현재의 즐거움을 미래의 더 큰 보상보다 훨씬 더 선호하는 ‘현재 편향‘을 보입니다. 다이어트, 금연, 저축과 같은 장기적인 목표가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에 ‘심리 회계(Mental Accounting)‘라는 이상한 습관이 더해집니다. 경제학적으로 모든 돈은 똑같지만(대체가능성), 우리는 마음속으로 돈에 꼬리표를 붙입니다. 힘들게 번 ‘월급’은 아껴 쓰지만, 우연히 생긴 ‘꽁돈’은 쉽게 써버리는 경험, 다들 있으시죠? 이는 비합리적인 소비와 투자 결정으로 이어지는 주요 원인입니다.

손실 회피, 현상 유지 편향, 디폴트 옵션의 힘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왜 기본 설정값(디폴트)을 바꾸기 귀찮아하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이는 단지 게으름 때문만이 아닙니다. 현재의 상태를 변경하는 것은 잠재적 이익을 얻는 행위인 동시에, 지금 가진 익숙한 상태를 ‘잃어버리는’ 행위로 인식됩니다. 손실 회피 원칙에 따라, 우리는 그 ‘잃어버림’의 고통을 더 크게 느끼기 때문에 변화에 저항하고 현상 유지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이처럼 행동경제학의 이론들은 서로 맞물려 인간의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을 입체적으로 설명합니다.


4부: 대실패 열전: 인간 심리를 무시했을 때 벌어지는 일들

이론은 현실에서 증명될 때 비로소 강력한 힘을 갖습니다. 행동경제학의 통찰을 무시했을 때 기업과 정부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 보여주는 몇 가지 극적인 실패 사례를 통해, 우리는 최적화 모형과 현실의 괴리가 만들어내는 비극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매몰비용의 대참사: 콩코드와 코닥의 비극

매몰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란? 이미 지불해서 되돌릴 수 없는 시간, 노력, 돈(매몰비용)이 아까워서, 앞으로 손해가 더 커질 것이 뻔한데도 그 일을 계속하는 비합리적인 의사결정 오류입니다. “본전 생각” 때문에 더 큰 구덩이에 빠지는 심리적 함정이죠.

스토리 1: 하늘을 날던 백조, 콩코드 1960년대,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야심 찬 항공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바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 개발입니다. 파리에서 뉴욕까지 비행시간을 3시간대로 단축시키는 꿈의 비행기였죠. 하지만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예산을 초과했고, 기술적 문제와 엄청난 소음, 낮은 연비 등 경제성이 없다는 경고가 잇따랐습니다. 합리적인 판단이었다면 프로젝트는 조기에 중단되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두 나라 정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이미 쏟아부은 막대한 돈과 시간, 그리고 국가적 자존심이라는 ‘매몰비용‘이 그들의 눈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들어간 돈이 얼만데 포기할 수 없다“는 논리가 이성을 마비시킨 것입니다. 결국 콩코드는 총 19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은 끝에 2003년, 쓸쓸하게 퇴장했습니다.

콩코드는 기술적 경이였지만, 매몰비용 오류의 상징적인 경제적 실패 사례가 되었습니다.
콩코드는 기술적 경이였지만, 매몰비용 오류의 상징적인 경제적 실패 사례가 되었습니다.

스토리 2: 자신의 발명품에 의해 파산한 회사, 코닥 더욱 비극적인 이야기는 코닥에서 벌어졌습니다. 놀랍게도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는 1975년, 코닥의 젊은 엔지니어 스티브 새슨에 의해 발명되었습니다. 토스터만 한 크기에 흑백 이미지를 카세트테이프에 저장하는 조악한 형태였지만, 그것은 분명 미래였습니다. 하지만 코닥의 경영진은 이 발명품을 보고 공포에 질렸습니다. 그들은 이 기술을 환영하는 대신, 철저히 묻어버렸습니다. 당시 코닥은 필름과 인화지 판매로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었고, 이 수익 모델은 회사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는 그들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것과 같았습니다. 코닥의 경영진은 두 가지 강력한 심리적 편향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첫째는 ‘현상 유지 편향‘입니다. 그들은 현재의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둘째는 ‘매몰비용 오류‘입니다. 수십 년간 필름 공장과 화학 기술에 투자한 수십억 달러가 아까워, 새로운 기술로의 전환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발명한 미래를 받아들이는 대신, 과거의 영광을 지키려다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이는 기술의 실패가 아니라, 인간 심리의 처참한 실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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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닥은 디지털 카메라를 최초로 발명했지만, 필름 사업에 대한 매몰비용과 현상 유지 편향 때문에 스스로 몰락했습니다.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를 최초로 발명했지만, 필름 사업에 대한 매몰비용과 현상 유지 편향 때문에 스스로 몰락했습니다.

“정직이 최악의 정책"의 역설: JC페니의 자폭

스토리 3: JC페니의 ‘공정하고 정직한’ 가격 정책 2011년, 위기에 빠진 미국 백화점 JC페니는 구원투수로 애플 스토어의 성공 신화를 쓴 론 존슨을 CEO로 영입했습니다. 그의 진단은 논리적이었습니다. “상시 할인과 끝없는 쿠폰은 고객을 속이는 ‘가짜 가격’이다. 우리는 정직하게 ‘공정하고 정직한(Fair and Square)’ 상시 저가 정책을 펼치자”. 그는 고객들이 합리적인 ‘호모 이코노미쿠스’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대재앙이었습니다. 1년 만에 매출은 25% 급감했고, 회사는 거의 1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론 존슨은 17개월 만에 쫓겨났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론 존슨은 인간 심리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들을 무시했습니다.

  • 기준점(Anchor)의 소멸: 100달러짜리 제품을 50달러에 사는 것과, 원래부터 50달러인 제품을 사는 것은 심리적으로 완전히 다릅니다. 높은 ‘정가’라는 기준점이 사라지자, ‘공정한’ 가격은 더 이상 ‘싸다’는 느낌을 주지 못했습니다. 고객들은 할인이라는 ‘승리‘의 쾌감을 잃어버렸습니다.
  • 손실 회피의 역습: 고객들은 ‘공정한 가격’이라는 이득보다, 자신들이 사랑했던 쿠폰과 세일 행사를 ‘잃어버렸다‘는 고통을 훨씬 더 크게 느꼈습니다.
  • 게임의 박탈: 론 존슨은 자신이 옷만 파는 것이 아니라, ‘좋은 물건을 싸게 사는 게임‘이라는 즐거운 경험을 함께 팔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는 게임을 없앴고, 고객들은 경기장을 떠났습니다.

넛지가 충분하지 않을 때: 부드러운 개입의 한계

스토리 4: 코로나19 백신 복권의 실패 행동경제학의 통찰은 ‘넛지(Nudge)’, 즉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 사람들의 행동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는 정책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넛지는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많은 정부가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백신 복권’과 같은 넛지 정책을 도입했습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문자 메시지 알림 같은 간단한 넛지는 원래 백신을 맞으려던 사람들의 실제 접종을 약간 독려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백신에 대해 강한 불신이나 반감을 가진 사람들을 움직이는 데는 거의 효과가 없었습니다. 넛지는 강력한 신념이나 뿌리 깊은 불신을 이겨낼 만큼 강력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스토리 5: 유령 열차, 용인 경전철 한국의 용인 경전철 사업은 잘못된 계획이 얼마나 큰 재앙을 낳는지 보여주는 공공 부문 실패의 교과서적 사례입니다. 사업 초기, 하루 이용객을 16만 1천 명으로 예측했지만, 실제 개통 후 이용객은 9천 명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계산 착오가 아니었습니다. 정치적 목적과 과도한 **낙관주의(계획 오류)**가 결합되어 비현실적인 수요 예측을 낳았고, 한번 시작된 거대 프로젝트는 막대한 ‘매몰비용’ 때문에 누구도 멈출 수 없는 유령 열차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근본적인 설계 결함은 작은 넛지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이 실패 사례들은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기업과 정부의 대실패는 종종 단 하나의 잘못된 결정이 아니라, 여러 심리적 편향들이 연쇄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과도한 **자신감(Overconfidence Bias)**으로 시작하고, 자신의 믿음을 지지하는 정보만 찾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을 거쳐, 결국 되돌릴 수 없는 매몰비용의 늪에 빠지는 비극적인 패턴을 반복합니다.


5부: 세상을 움직이는 넛지들 (좋든 싫든)

실패 사례들이 경고를 울린다면, 성공 사례들은 행동경제학이 가진 긍정적 힘을 보여줍니다.

선한 영향력: 공공정책의 혁신

  • 내일 더 저축하기 (Save More Tomorrow): 이 놀라운 퇴직연금 프로그램은 인간의 게으름(관성)과 손실 회피 심리를 역으로 이용했습니다. 가입 방식을 ‘선택 가입’에서 ‘자동 가입‘으로 바꾸고(디폴트 설정), 저축액 증액 시점을 미래의 ‘임금 인상’ 시점과 연동시켰습니다. 사람들은 월급이 줄어드는 고통 없이, 저축률을 극적으로 높일 수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 도입 후 저축률이 3배 가까이 상승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 장기기증과 세금 납부: 장기기증 서약을 ‘기증 거부’ 의사를 밝혀야 하는 ‘옵트아웃(opt-out)’ 방식으로 바꾸자 기증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또한, 세금 체납자에게 위협적인 문구 대신 “귀하가 사는 지역의 10명 중 9명은 세금을 제때 냈습니다“와 같은 **사회적 증거(Social Proof)**를 제시했을 때 납세 순응도가 훨씬 높아졌습니다.

소비자를 유혹하는 기술: 마케터의 도구 상자

기업들은 오래전부터 행동경제학의 원리를 본능적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비밀을 알고 더 현명한 소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마케팅에 숨겨진 행동경제학

행동경제학 개념심리적 원리당신이 본 마케팅 사례
기준점 설정 (Anchoring)처음 본 정보가 이후의 판단을 지배한다.높은 ‘정가’를 ‘할인가’와 함께 표시하여 할인 폭이 커 보이게 만든다.
손실 회피 (Loss Aversion)얻는 기쁨보다 잃는 고통이 더 크다.한정 판매! 놓치지 마세요!” 또는 쇼핑몰의 카운트다운 타이머는 기회를 잃는다는 두려움을 자극한다.
미끼 효과 (Decoy Effect)명백히 별로인 제3의 선택지를 추가해 특정 상품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팝콘 가게에서 작은 사이즈 3,000원, 큰 사이즈 7,000원일 때, 중간 사이즈를 6,500원에 추가하면 큰 사이즈가 매우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사회적 증거 (Social Proof)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따라 한다.베스트셀러” 딱지, 고객 후기, “현재 15명이 이 상품을 보고 있습니다“와 같은 문구.
희소성 (Scarcity)드문 것은 더 가치 있어 보인다.재고 2개 남음!”, “오늘만 이 가격!” 등은 즉각적인 구매를 유도한다.

돈과 감정: 행동 재무학

전통 재무학은 시장이 완벽하게 효율적이라고 가정하지만, 행동 재무학은 투자자들의 심리적 편향이 시장의 거품과 붕괴를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처분 효과(Disposition Effect)‘입니다. 이는 전망 이론으로 완벽하게 설명됩니다. 투자자들은 가격이 오른 주식(이익 구간)은 너무 빨리 팔아버립니다. 확실한 이익을 실현하려는 ‘위험 회피’ 심리 때문입니다. 반대로 가격이 내린 주식(손실 구간)은 너무 오래 보유합니다. 손실을 확정 짓는 고통을 피하고 언젠가 오를 것이라는 희망에 더 큰 위험을 감수하는 ‘위험 추구’ 심리 때문입니다.


6부: 내 두뇌의 CEO가 되는 법: 더 나은 결정을 위한 실용 가이드

우리는 뇌의 기본 설정을 바꿀 수는 없지만, 이런 편향을 인지하고 그에 대응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이것은 당신 자신을 위한 ‘선택 설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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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향을 이기는 전략들

  • 매몰비용과 싸우려면:만약 오늘 처음 이 일을 시작한다면, 지금 아는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과연 이 시간과 돈, 감정을 투자할 것인가?“라고 자문해 보세요. 대답이 ‘아니오’라면, 손실을 끊어낼 때입니다.
  • 기준점과 싸우려면: 협상할 때 가능하다면 항상 먼저 제안하세요. 그럴 수 없다면, 상대가 제시한 첫 번째 숫자를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당신이 조사한 정보를 바탕으로 대화를 다시 시작하세요.
  • 프레이밍과 싸우려면: 어떤 선택지를 마주했을 때, 적극적으로 그것을 다른 관점에서 다시 표현해 보세요. “성공률 90%“라는 말을 들으면, “실패율 10%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라고 질문하세요. 이익과 손실의 관점을 모두 검토하는 것입니다.
  • 과신과 싸우려면:사전 부검(Pre-mortem)‘을 해보세요. 당신의 프로젝트나 결정이 1년 뒤 처참하게 실패했다고 상상하고, 그 이유를 모두 적어보는 겁니다. 이는 당신이 현재 보지 못하는 잠재적 위험을 보게 해줍니다.
  • 계획가/행동가 갈등을 해결하려면:약속 장치(Commitment Device)‘를 사용하세요. 저축하고 싶다면 월급날에 맞춰 저축 계좌로 자동 이체를 설정하세요. 운동하고 싶다면 친구와 함께 수업을 예약하여 사회적 약속을 활용하세요.

당신의 개인 편향 버스터 체크리스트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 이 체크리스트를 활용해 당신의 뇌를 점검해 보세요.

결정 전 자가 점검 체크리스트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당신이 싸우고 있는 편향
1. 내가 처음 들은 숫자나 정보는 무엇인가? 그것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두고 있지는 않은가?기준점 설정 (Anchoring)
2. 내가 얻을 것보다 잃을 것에 더 집중하고 있는가? 이 문제가 다르게 표현되었다면 어땠을까?손실 회피 & 프레이밍
3. 이미 쏟아부은 시간이나 돈 때문에 이 길을 계속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매몰비용 오류
4. 내가 이미 믿고 있는 것을 확인해주는 정보만 찾고 있는가? 내 입장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은 무엇인가?확증 편향
5. 이 선택이 단지 다른 모든 사람이 하기 때문에 좋아 보이는가? 내 개인적인 목표와 정말 맞는가?사회적 증거 / 무리 짓기 행동
6. 내 안의 ‘계획가’는 내가 무엇을 하길 원할까? 어떻게 하면 장기적인 선택을 ‘지금 당장’ 하기 쉬운 선택으로 만들 수 있을까?현재 편향 / 자기 통제 문제

결론: 당신은 예측 가능하게 비합리적이다 - 그리고 그것이 당신의 슈퍼파워다

지난 수십 년간 행동경제학이 이룬 혁명은 우리에게 중요한 진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우리는 합리적인 로봇도, 예측 불가능하게 행동하는 존재도 아닙니다. 우리의 비합리성은 체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패턴을 따릅니다.

이것은 나쁜 소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엄청난 힘을 줍니다.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그 시스템을 해킹하는 첫걸음입니다. 당신 뇌의 기본 설정을 안다는 것은, 당신 자신을 위해 더 나은 시스템을 설계하고, 다른 사람이 그 설정을 이용해 당신을 조종하려 할 때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음에 ‘70% 할인’이라는 팻말을 보거나, 손해 본 주식을 팔지 못하고 끙끙 앓거나, 이미 맛없는 줄 알면서도 돈이 아까워 음식을 꾸역꾸역 다 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거든, 웃으세요. 당신이 고장 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저 인간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제, 당신은 그 게임의 규칙을 아는 인간입니다.

#행동경제학#심리학#재무#의사결정#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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