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의 마르지 않는 샘
옛날 어느 마을에, 마시면 지혜를 주고 병을 낫게 하는 신비한 샘이 솟았다고 상상해 봅시다. 처음에는 모두가 자유롭게 샘물을 마시며 풍요를 누렸죠. 하지만 어느 날, 가장 힘센 거인이 나타나 샘 주위에 거대한 성벽을 쌓고는 외쳤습니다. “이 샘은 이제 내 것이다! 물이 필요하면 나에게 대가를 지불하라!”
여러분, 21세기의 ‘데이터’가 바로 이 신비한 샘물과 같습니다. 특히 오늘날 세상을 바꾸고 있는 인공지능(AI)의 심장은 바로 이 데이터라는 샘물이죠. 그런데 이 엄청난 자원을 지금 소수의 거인들—거대 기술 기업과 몇몇 국가—이 자신들의 성벽 안에 완벽하게 가두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그 거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들이 쌓은 성벽 아래서 우리가 어떤 상처를 입고 있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로 데이터의 물길을 터야함을 설명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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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주들의 초상화: 거인들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가?
거인의 성은 하나의 모습이 아닙니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다른 영토에서 데이터를 지배하며 자신만의 AI 제국을 건설하고 있죠. 그들의 초상화를 한번 그려볼까요?
제1 성주, ‘모든 것을 아는 현자’ 구글
구글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검색), 누구와 이야기하는지(Gmail), 어디로 향하는지(지도), 심지어 우리의 건강 상태까지(헬스케어) 알고 있죠. 이 방대한 ‘삶의 데이터’는 구글의 AI ‘제미나이(Gemini)‘를 세상에서 가장 박식한 현자로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질문하기도 전에 답을 예측하고, 내 취향에 맞는 광고를 콕 집어 보여주는 능력은 바로 이 독점적인 데이터 샘물에서 나옵니다.
제2 성주, ‘관계와 욕망의 지배자’ 메타
메타(페이스북, 인스타그램)는 우리의 ‘관계’와 ‘욕망’을 지배합니다. 우리가 누구를 좋아하고, 무엇에 열광하며, 어떤 생각에 분노하는지, 그 모든 감정의 지도를 손에 쥐고 있죠. 이 ‘감정 데이터’는 사람들의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추천 알고리즘의 핵심 재료이자, 그들의 AI ‘라마(Llama)‘를 더 사람처럼 만드는 비밀 병기입니다.
제3 성주, ‘닫힌 왕국의 제왕’ 애플
애플은 ‘프라이버시’라는 높은 성벽을 자랑합니다. “당신의 정보는 당신의 기기 안에 안전합니다"라고 말하죠. 하지만 그 왕국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앱스토어 결제, 애플 뮤직 청취 기록, 시리에게 하는 질문—은 제왕의 통제 아래 있습니다. 애플은 광고는 팔지 않지만, 이 고품질의 ‘생태계 데이터’를 이용해 시리를 더 똑똑하게 만들고, 애플 생태계를 한층 더 견고하게 잠그는 데 사용합니다.
제4 성주, ‘떠오르는 마법사’ OpenAI
ChatGPT를 만든 OpenAI는 새로운 유형의 거인입니다. 처음에는 인터넷이라는 공동 도서관의 책을 모두 쓸어 담아 AI를 가르쳤죠. 하지만 이제 그들의 가장 강력한 마법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전 세계 수억 명의 사용자들이 ChatGPT와 나누는 대화, 질문을 고쳐주는 과정 하나하나가 모두 OpenAI의 AI를 실시간으로 훈련시키는 최고의 교재가 됩니다. 우리는 돈을 내고, 심지어 공짜로, 거인의 마법사를 훈련시키는 ’ unpaid AI 조련사’가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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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거대한 용’ 중국
중국은 국가라는 거대한 용 그 자체가 성주입니다. 14억 인구의 안면인식 데이터, 도시 곳곳의 CCTV, 소셜미디어 검열, 알리바바와 텐센트 같은 거대 기업의 데이터를 국가가 주도하여 하나의 거대한 용광로에 쏟아붓습니다. 이 ‘국가 데이터’는 사회 통제 시스템을 강화하고, 미국의 기술 패권에 도전하는 강력한 AI를 벼려내는 무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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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보이지 않는 피해: 데이터 독점이 남기는 상처들
자, 이 거인들이 정말 대단한 AI를 만들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뭐가 문제라는 거죠?“라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성벽 아래,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는 보이지 않는 상처들이 곪아가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이야기 두 개를 들려드릴게요.
이야기 하나: 내 그림을 훔쳐 간 AI
여기,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체로 SNS에서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한 일러스트레이터 ‘수지’씨가 있습니다. 그녀는 수년간 자신의 작품을 인스타그램(메타의 영토)과 개인 포트폴리오 사이트(구글 검색의 대상)에 꾸준히 올려왔죠. 어느 날, 수지씨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한 AI 이미지 생성기에 “수지 스타일로 그려줘"라고 입력하면, 자신의 그림체와 거의 똑같은 그림이 단 몇 초 만에 쏟아져 나오는 겁니다. 거인들은 수지씨의 허락도 없이 그녀의 데이터를 긁어모아 AI를 훈련시켰고, 이제 사람들은 단돈 몇 푼에 ‘수지 스타일’의 그림을 무한정 뽑아 쓰고 있습니다. 수지씨의 피와 땀이 담긴 데이터는, 그녀의 일자리를 빼앗는 칼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이야기 둘: AI가 거절한 나의 꿈
성실하게 직장을 다니며 창업을 꿈꾸던 청년 ‘민준’씨. 그는 사업 자금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은행의 AI 대출 심사 시스템은 그를 ‘고위험군’으로 분류하고 대출을 거절합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죠. 사실, 은행의 AI는 과거의 대출 데이터를 학습했는데, 이 데이터에는 ‘특정 지역 출신’이나 ‘특정 학교 졸업생’의 연체율이 높다는 과거의 사회적 편견이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민준씨는 개인의 신용도와 상관없이, 단지 AI가 학습한 편향된 데이터의 희생양이 되어 꿈을 향한 첫걸음조차 떼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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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가 성문을 열어야만 하는 진짜 이유
수지씨와 민준씨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오픈 데이터’라는 성문을 열어야만 하는 절박한 이유입니다. 단순히 ‘데이터를 나누자’는 착한 운동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을 지키기 위한 생존 전략인 것이죠.
중세 시대, 모든 지식은 소수의 수도사들만이 읽을 수 있도록 수도원 도서관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다 ‘인쇄술’이라는 혁신이 나타나 지식을 모두에게 개방하자, 비로소 르네상스와 과학 혁명이 폭발했습니다.
‘오픈 데이터’는 바로 21세기의 인쇄술입니다.
- ‘수지’들을 지키기 위해: 오픈 데이터를 통해 데이터의 출처를 명확히 하고, 원작자가 자신의 데이터가 AI 학습에 쓰이는 것을 거부하거나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규칙을 만들어야 합니다.
- ‘민준’들을 구하기 위해: 다양한 배경의 데이터가 공개되고 공유될 때, 비로소 우리는 AI의 편견을 바로잡고, 더 공정한 판단을 내리는 AI를 만들 수 있습니다.
- 진정한 혁신을 위해: 우리 모두에게 인쇄술이 주어질 때, 비로소 수많은 작은 구텐베르크들이 나타나 의료, 교육, 환경 등 각 분야에서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는 맞춤형 AI를 꽃피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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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래를 여는 ‘데이터 도서관’
물론 모든 데이터를 무작정 길거리에 풀어놓자는 말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똑똑한 ‘데이터 도서관’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민감한 개인정보는 철저히 보호하고, 데이터의 품질을 관리하며, 학생, 연구자, 스타트업 등 누구나 공정한 규칙 아래 데이터를 빌려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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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샘물을 모두에게
거인의 성벽은 높고 견고해 보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소수가 독점했던 지식과 권력이 결국 다수에게 개방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데이터는 거인의 전리품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든 인류의 유산입니다. 이 소중한 유산을 다시 우리 손으로 가져와 모두를 위한 AI, 모두를 위한 혁신, 모두를 위한 더 나은 미래를 여는 것. 그것이 바로 ‘오픈 데이터 혁명’의 진정한 목표입니다. 이제, 신비한 샘물을 다시 모든 사람의 것으로 되돌릴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