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작은 콩 한 알에서 시작되어 우리 민족의 영혼을 빚어낸 된장의 위대한 대서사시를 소개합니다.
- 수천 년을 이어온 된장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된장과 간장이 어떻게 나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 우리 선조들이 된장에 담았던 지혜와 철학을 배울 수 있습니다.
모든 이야기의 시작: 한반도의 작은 콩
모든 위대한 서사가 그렇듯, 된장의 역사 역시 작고 소박한 주인공 ‘콩’에서 시작됩니다. 오늘날 전 세계인의 식탁에 오르는 이 작물의 고향은 바로 만주와 한반도였습니다.
고고학자들은 고조선 유적지에서 불에 탄 콩을 발견하며, 수천 년 전부터 이 땅의 사람들이 콩을 귀하게 길러왔음을 증명했습니다.
한반도는 콩을 위해 준비된 땅과 같았습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랄 뿐 아니라 땅을 비옥하게 만들었고, 쌀밥에 부족했던 양질의 단백질을 풍부하게 공급하며 우리 조상들의 든든한 영양 공급원이 되어주었습니다.
이처럼 콩과 한민족은 수천 년에 걸쳐 서로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온 공생(共生)의 역사를 함께했습니다.
시간과 미생물의 마법, 발효의 발견
날것으로 먹기 어렵고 익혀두면 금세 상하는 콩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조상들은 ‘발효’라는 위대한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3세기 중국 역사서 『삼국지』는 “고구려인들은 술 빚기, 장 담그기 등 발효 음식을 만드는 솜씨가 뛰어나다“고 기록하며, 당시 한반도의 발효 기술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음을 증언합니다.
발효 기술은 혹독한 겨울을 나게 해주는 식량 저장 기술이자, 콩의 영양 효율을 극대화하는 영양 과학이었습니다. 이는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가능하게 하여 사회 발전의 굳건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된장의 조상, ‘시(豉)‘의 탄생
발효 기술이 체계화되면서, 역사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된장의 원형 ‘시(豉)‘가 등장합니다.
서기 683년, 신라 신문왕의 혼례 예물 목록에 ‘장시(醬豉)‘가 포함된 사실은 ‘시’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당대의 부와 권위를 상징하는 최고급 사치품이었음을 말해줍니다. ‘시’를 만들기 위해선 풍부한 콩, 귀한 소금, 고도의 발효 기술이 모두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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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고대 중국 문헌 『박물지(博物誌)』는 ‘시’가 외국에서 들어온 산물이라 기록하고 있어, 그 기원이 한반도일 가능성에 힘을 실어줍니다.
위대한 분리: 된장과 간장, 두 갈래 길에 서다
하나의 항아리에서 시작된 ‘시’의 역사는 곧 한국 음식사의 흐름을 바꾼 위대한 분리를 맞이합니다. 고려 초기에 이르러, 우리 조상들은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 발효시킨 뒤 검은빛 액체와 노란빛 고형물을 분리하는 기법을 개발했습니다.
이로써 맑고 깊은 감칠맛의 ‘간장’과 구수하고 풍부한 맛의 ‘된장’이 탄생했습니다. 이 분리는 하나의 발효 과정에서 각기 다른 쓰임새를 가진 두 개의 핵심 조미료를 얻게 된 기술적 대도약이었습니다.
이 위대한 분리를 통해 비로소 한식 맛의 ‘문법’이 완성되었습니다. 간장은 맑은 국이나 조림에, 된장은 찌개나 쌈장, 무침에 사용되며 수많은 한식 요리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맛의 심장, 메주를 빚는 지혜
된장과 간장의 모든 맛은 ‘메주’라는 작은 우주에서 시작됩니다. 잘 삶은 콩을 찧어 네모나게 빚고 볏짚으로 엮어 겨우내 처마 밑에 매달아 말리는 과정은 과학과 정성이 결합된 예술과 같습니다.
메주가 마르는 동안, 공기 중의 **황국균(Aspergillus oryzae)**과 볏짚의 고초균(Bacillus subtilis) 같은 유익한 미생물들이 콩 단백질을 분해하며 깊고 구수한 맛과 향을 만들어냅니다.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이런 맛의 교향곡을 만들어낸다니, 정말 놀랍지 않나요?
우리 조상들은 미생물의 존재를 몰랐지만, 경험을 통해 최적의 미생물 생태계를 조성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이는 자연과 협력하여 맛을 창조해낸 ‘응용 미생물학’이자 지혜의 결정체였습니다.
시대를 넘어, 백성의 삶에 스며들다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된장은 국가의 구휼품이자 약재로 쓰였고, 집안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척도가 될 만큼 민족의 삶 깊숙이 스며들었습니다. 선조들은 된장이 지닌 다섯 가지 미덕, ‘오덕(五德)‘을 칭송하며 그 가치를 철학의 경지로 끌어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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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의 오덕(五德): 선조들의 지혜, 현대 과학으로 풀다
옛 미덕 (덕) | 시적 의미 (의미) | 현대적 해석 |
---|---|---|
단심(丹心) | 변치 않는 마음: 다른 맛과 섞여도 제 맛을 잃지 않는다. | 강력한 풍미 구조: 아미노산과 펩타이드가 만들어내는 깊고 복합적인 감칠맛은 다른 재료의 맛에 쉽게 가려지지 않고 음식의 중심을 잡아준다. |
항심(恒心) | 한결같은 마음: 오래 두어도 변하거나 상하지 않는다. | 천연 방부 효과: 높은 염도와 유익균의 활동이 부패균의 증식을 억제하여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
불심(佛心) | 부처의 마음: 생선 비린내와 고기의 누린내를 없애준다. | 효소에 의한 냄새 제거: 단백질 분해 효소(프로테아제)가 비린내의 원인인 트리메틸아민 등 불쾌한 냄새 분자를 분해한다. |
선심(善心) | 착한 마음: 매운맛 등 자극적인 맛을 부드럽게 감싸준다. | 맛의 조화와 균형: 풍부한 감칠맛과 구수한 맛이 고춧가루의 날카로운 매운맛이나 채소의 쓴맛을 완화하고 전체적인 맛의 균형을 맞춘다. |
화심(和心) | 조화로운 마음: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려 맛을 돋운다. | 뛰어난 요리 범용성: 국, 찌개, 무침, 쌈장 등 어떤 형태의 요리에도 잘 어우러져 맛의 깊이를 더하는 만능 조미료의 역할을 한다. |
결론
저 역시 된장찌개의 구수한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된장 한 숟갈에는 단순한 맛 이상의 것이 담겨 있습니다.
- 역사의 타임캡슐: 된장은 수천 년 전 한반도의 콩에서 시작된 우리 민족의 역사 그 자체입니다.
- 한식 맛의 근원: 발효 기술의 발견과 된장/간장의 분리는 한식의 맛을 완성한 위대한 혁신이었습니다.
- 지혜의 결정체: 메주에 담긴 과학적 지혜와 ‘오덕’은 음식을 넘어선 우리 선조들의 철학을 보여줍니다.
오늘 저녁, 구수한 된장찌개로 우리 음식에 담긴 깊은 역사를 직접 맛보는 것은 어떨까요?
참고자료
- [신문과 놀자!/클릭! 재밌는 역사]단백질이 풍부한 콩… 선사시대부터 한반도-만주서 재배했어요
- 콩의 전성시대 - RDA인테러뱅 - 농사로 농업기술포털
- 1. 기원 및 전파 2. 재배환경 및 특성
- 콩의 원산지가 한국이라고요? 난 이해가 안가는데요? > 고재형의 뒤틀린 역사 바로알기
- [자연음식 이야기] 김치(1) - 매일신문
- 삼국시대 장아찌 형태로 시작 고려시대 동치미 .나박김치 등장 - 미주 한국일보
- 된장 - 한국민속대백과사전
- 장담그기 - 한국민속대백과사전
- [기획특집:발명이야기]된장…삼국시대 이전부터 국민 음식 - 창업일보
- 된장 - 농촌여성신문
- 장(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된장과 간장을 분리하는 장가르기 시기와 방법 - YouTube
- 메주 레시피 건강조리법 건강기능 식품특성 어원유래 역사배경 - 램프쿡
- [김순동 교수의 발효이야기] 메주는 콩이 된장이나 간장이 되게 하는 효소제 - 매일신문
- 숙성법 - 한국콩연구회
- 된장(된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간장(간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우리 것이 힘] 전통발효식품
- 선조들이 남긴 최고의 식품 된장 - 헬스조선
- Korea’s traditional food, Doenjang(Soybean paste)! When did we start eating it?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