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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관세 정책과 금리의 기묘한 이중주

phoue

7 min read --

트럼펫과 콘트라베이스의 이상한 합주

여러분, 잠시 눈을 감고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장에 와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세계 경제라는 이름의 이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중요한 두 악기가 연주를 시작합니다. 하나는 대통령의 손에 들린 채, 세계 무역의 판을 뒤흔드는 격렬하고 높은 소리의 ‘트럼펫’, 바로 미국의 관세 정책입니다. 다른 하나는 시장의 가장 깊은 곳에서 경제의 건강 상태와 미래에 대한 기대를 묵직하게 연주하는 ‘콘트라베이스’, 바로 미국의 국채 금리이죠.

원래 이 두 악기는 ‘인플레이션’이라는 하나의 악보를 보고 조화롭게 연주하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트럼펫이 “관세를 높여 수입 물가를 올리겠다!“하고 높은 음을 내면, 콘트라베이스도 “물가 상승이 걱정되니 금리를 올려야겠다!“하고 무거운 음으로 화답했죠.

하지만 2025년 지금, 우리는 역사상 가장 기이한 이중주를 듣고 있습니다. 백악관의 트럼펫은 전 세계를 향해 10%, 60%, 심지어 100%가 넘는 관세 폭탄을 터뜨리며 광란의 행진곡을 연주하는데, 월스트리트의 콘트라베이스는 오히려 낮은 음을 유지하며 경제 침체의 장송곡을 조용히 연주하고 있는 겁니다.

관세는 ‘인플레이션’을 외치는데, 시장은 ‘경기 침체’를 속삭이는 이 거대한 불협화음.
관세는 '인플레이션'을 외치는데, 시장은 '경기 침체'를 속삭이는 이 거대한 불협화음.
관세는 ‘인플레이션’을 외치는데, 시장은 ‘경기 침체’를 속삭이는 이 거대한 불협화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이 이야기에서 단순한 현상 분석을 넘어, 이 엇박자 뒤에 숨겨진 진짜 이유와 앞으로 펼쳐질 세계 경제의 미래를 함께 탐험해보고자 합니다.


‘관세 폭탄’의 귀환, 무엇이 달라졌나?

이번 트럼프 행정부 2기의 관세 정책은 과거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예전에는 중국의 철강 제품처럼 특정 국가의 특정 품목을 노리는 ‘정밀 저격’이었다면, 지금은 전 세계를 사정권에 둔 ‘무차별 융단폭격’에 가깝습니다.

세상 모든 물건에 ‘미국세(稅)‘를 매기다

가장 큰 특징은 **‘보편적 기본 관세’**입니다. 마치 “미국에 물건을 팔고 싶어? 그럼 일단 10%의 입장료부터 내.“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아요. 어느 나라든, 어떤 물건이든 가리지 않고 기본 관세를 붙여, 전 세계 모든 교역 상대국에게 ‘미국 우선주의’라는 명확한 비용 청구서를 날린 셈이죠.

“네가 때리면 나도 때린다"는 식의 대응

여기에 **‘상호호혜 관세’**라는 무시무시한 규칙이 더해집니다. “만약 네가 미국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매기면, 우리도 네 나라 자동차에 똑같이 25%를 매길 거야.“라는 단순하고 힘에 기반한 논리입니다. 이는 ‘모든 무역 파트너는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자유 무역의 오랜 약속을 깨고, 세계 무역 질서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로 바꾸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들은 단순히 수입품 가격을 올리는 것을 넘어, 지난 수십 년간 효율성을 중심으로 짜인 글로벌 공급망이라는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를 멈춰 세우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이제 ‘어디서 가장 싸게 만들까?‘가 아니라, ‘어디가 관세 폭탄으로부터 안전할까?‘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시대에 직면했습니다.

침묵하는 시장의 경고, 금리의 역설

경제학 교과서라면 이렇게 말할 겁니다. “관세가 오르면 수입 물가가 오르고, 그럼 전반적인 물가 상승(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겠죠? 그럼 중앙은행(연준)은 금리를 올릴 것을 고려하고, 시장의 장기 국채 금리도 자연히 오를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교과서를 비웃고 있습니다. 백악관이 연일 관세 폭탄을 터뜨리며 인플레이션에 불을 지피고 있는데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가격인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거나 오히려 떨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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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025년 미국 관세 정책 발표와 10년물 국채 금리 비교 그래프
2024-2025년 미국 관세 정책 발표와 10년물 국채 금리 비교 그래프

이 그래프는 충격적인 사실을 보여줍니다. 관세 발표 직후 금리가 잠시 흔들릴지는 몰라도, 큰 흐름을 보면 물가 상승의 공포를 반영해 치솟기보다는, 오히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사람들이 안전한 곳(미국 국채)으로 돈을 피신시키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습니다. (국채를 사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국채 가격은 오르고, 금리는 반대로 떨어집니다.)

시장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요?

  • “인플레이션보다 경기 침체가 더 무섭다”: 시장은 관세가 결국 사람들의 지갑을 닫게 하고 기업의 투자를 얼어붙게 만들어, 세계 경제를 깊은 침체의 늪으로 빠뜨릴 것이라 걱정하고 있습니다.
  • “일단 가장 안전한 곳으로!”: 무역 전쟁이 격해질수록 세상은 불안해집니다. 이때 전 세계의 큰돈들은 위험한 주식 시장이나 신흥국을 떠나 가장 안전한 피난처인 미국 국채로 몰려들고, 이는 금리를 떨어뜨립니다.
  • “연준이 마음대로 금리를 올리지 못할걸?”: 시장은 연준이 정치적 압력에 못 이기거나, 혹은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오는 최악의 상황(스태그플레이션)에서 섣불리 금리를 올리지 못할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국채 시장은 백악관의 요란한 트럼펫 소리를 “저러다 말겠지"라고 무시하거나, 혹은 “저 소리가 결국 모든 것을 망가뜨릴 거야"라고 경고하고 있는 셈입니다.

한 지붕 두 가족, 백악관과 연준의 다른 꿈

백악관과 연방준비위원회의 격돌
백악관과 연방준비위원회의 격돌
이 기묘한 불협화음의 한가운데에는 미국 경제를 움직이는 두 거인, **백악관(정부)**과 **연준(중앙은행)**의 깊어지는 갈등이 있습니다.

  • 백악관의 꿈: “강한 미국!“을 외치며 당장의 경제 성장률을 올리고, 제조업을 살려 지지층을 결집하는 등 정치적이고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중합니다. 그들의 무기는 ‘관세’와 ‘감세’, 그리고 “금리 좀 내려!” 하는 ‘연준 압박’입니다.
  • 연준의 꿈: 법에 정해진 대로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는 데 집중합니다. 정치로부터 독립해 장기적인 경제 안정을 추구하며, 주요 무기는 ‘기준금리’ 조절입니다.

그런데 관세 정책은 이 관계를 최악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관세는 수입품 가격을 올려 물가를 자극하는 동시에, 무역 전쟁의 불안감으로 경기를 얼어붙게 만듭니다. 이는 연준에게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즉 ‘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이라는 최악의 딜레마를 안겨줍니다.

물가를 잡으려고 금리를 올리면 경기가 완전히 무너질 수 있고, 경기를 살리려고 금리를 내리면 물가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을 수 있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죠. 어쩌면 백악관은 바로 이 점을 노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관세로 연준을 코너에 몰아넣어, 결국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내리도록 압박하는 고도의 전략일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미국 근원 소비자물가지수와 연방기금금리 추이 비교 차트
미국 근원 소비자물가지수와 연방기금금리 추이 비교 차트

트럼프의 진짜 속마음은 무엇일까?

백악관은 “미국 노동자를 보호하고 무역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훨씬 복잡한 노림수가 숨어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가설 1: 세계 질서 리셋 버튼을 누르다: “지금까지 우리가 만든 자유무역 규칙은 다 버리고, 이제부터 모든 건 미국과 1:1로 힘의 논리에 따라 새로 정하자!“는 큰 그림일 수 있습니다. 관세는 모든 나라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강력한 ‘입장료’인 셈입니다.
  • 가설 2: 연준을 길들여 금리 주도권을 뺏다: 앞서 말했듯, 관세로 스태그플레이션 딜레마를 만들어 연준이 금리를 내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전략입니다. 경제를 흔드는 건 백악관이 하고, 수습의 책임은 연준에게 떠넘기는 것이죠.
  • 가설 3: 중국과의 기술 패권 전쟁에서 승리하다: 반도체, AI 같은 첨단 기술에 높은 관세를 매기는 것은,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두고 벌이는 ‘기술 냉전’의 일환일 수 있습니다. 돈의 문제를 넘어, 중국의 기술 발전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의도입니다.
  • 가설 4: 국내 정치에서 이기기 위한 승부수: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이유일 수 있습니다. “강한 미국” 이미지는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설령 경제에 부작용이 생겨도, 그 책임을 중국이나 연준에게 돌리면 되니 정치적 부담이 적은 위험한 도박일 수 있습니다.

이 네 가지 가설은 아마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보는 관세 전쟁이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 정치, 기술, 세계 질서의 판을 바꾸려는 거대한 게임의 일부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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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라는 나비의 날갯짓, 세계는 어떻게 변하나?

미국이 던진 관세라는 돌멩이는 전 세계라는 호수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보여주는 세계 지도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보여주는 세계 지도

  • 중국: 가장 큰 피해자이자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미국 수출길이 막히자 내수 시장을 키우고,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일대일로’)를 강화하며, 어떻게든 스스로 기술을 개발하려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미국의 압박이 역설적으로 중국의 경제 체질 개선을 가속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습니다.
  • 유럽: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경쟁자가 되었습니다. 미국에 맞서자니 전면전이 부담스럽고, 숙이자니 자존심과 산업이 무너질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만의 길을 가겠다"며 독자적인 공급망과 무역 규칙을 만들며 제3의 블록을 형성하려 하고 있습니다.
  • 신흥국: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신세입니다. 세계 경제가 불안해지면 달러 가치가 올라 신흥국들의 통화 가치는 폭락하고, 외국인 투자 자금은 썰물처럼 빠져나갑니다. 멕시코나 베트남처럼 일부 반사이익을 얻는 나라도 있지만, 대부분은 거대한 파도에 휩쓸릴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 한국과 같은 동맹국: 가장 복잡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안보는 미국에 기대고 있지만, 경제는 중국과 너무나 깊게 얽혀있기 때문이죠. 미국의 ‘탈중국’ 요구와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 사이에서, 국가의 미래를 건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승리인가? 이미 시작된 부작용들

백악관의 주장과 달리, 관세 정책은 미국 경제에도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습니다.

  • 미국 소비자의 몫이 된 청구서: 관세는 결국 수입품 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됩니다. 월마트의 생활용품부터 유럽산 자동차까지, 모든 것이 비싸지면서 미국인들의 지갑은 얇아지고 있습니다.
    미국 마트에서 올라버린 중국산 생필품의 가격에 마트에서 구입을 망설이는 미국 소비자의 이미지
    미국 마트에서 올라버린 중국산 생필품의 가격에 마트에서 구입을 망설이는 미국 소비자의 이미지
  • 기업들의 깊어지는 한숨: 해외에서 부품을 가져오는 기업은 생산 비용이 늘고, 해외에 물건을 파는 기업은 보복 관세 때문에 가격 경쟁력을 잃습니다. 무엇보다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들은 신규 투자나 고용을 망설이게 되고, 이는 경제의 성장 동력을 갉아먹습니다.
  • 달러 왕국의 균열: 가장 무서운 부작용은 ‘달러 패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이 달러 결제망을 무기처럼 사용하자, 다른 나라들은 “이러다 우리도 당하겠다” 싶어 달러 없이 거래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다른 통화로 결제하거나, 중앙은행들이 달러 대신 금이나 유로를 사들이고 있죠. 단숨에 무너지진 않겠지만, 달러라는 절대 반지에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겁니다.
    달러 왕국의 균열
    달러 왕국의 균열

새로운 시대, 우리의 생존법

우리는 지금 경제학 교과서가 통하지 않는 ‘뉴 앱노멀(New Abnormal)‘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경제 지표보다 대통령의 트윗 하나가 시장을 더 크게 흔드는 ‘정치 리스크’의 시대입니다. 이런 혼돈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요?

  1. 지도를 다시 그려라 (지정학적 분산 투자): 예전처럼 주식, 채권으로 나누는 것을 넘어, ‘어느 나라’, ‘어느 정치 블록’의 자산인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미국 중심에서 벗어나, 관세 전쟁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인도나 아세안, 혹은 독자 노선을 걷는 유럽 등으로 투자를 분산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2. ‘관세 면역’ 기업을 찾아라: 다른 나라에 대한 의존도가 낮고 튼튼한 내수 시장을 가졌거나, 혹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관세 장벽을 뛰어넘는 기업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제 기업의 재무제표만큼이나 ‘공급망 지도’를 꼼꼼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3. ‘안전자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라: 절대 안전할 것 같던 미국 국채마저 정치적 불확실성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금과 같은 전통적인 안전자산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장기적으로는 특정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난 새로운 자산의 역할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미국 관세와 금리의 엇박자는 단순히 두 지표의 불일치가 아닙니다. 이는 세계화의 시대가 저물고, 각자도생의 보호무역주의가 시작되는 ‘대전환’의 서곡입니다. 이 거대한 불협화음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낡은 악보에 의존할 수 없습니다. 격렬한 트럼펫 소리와 불안한 콘트라베이스의 속삭임에 모두 귀 기울이며, 다가올 폭풍우에 대비해 자신만의 튼튼한 방주를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미국경제#관세#금리#트럼프#스태그플레이션#세계경제#투자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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