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고라스의 식탁에서 시작해 실리콘밸리 연구실에서 완성되는 비건 푸드의 모든 것을 알아봅니다.
- 비건(Vegan)이라는 단어의 탄생 배경과 철학적 의미를 이해합니다.
- 대체육, 배양육 등 비건 푸드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술을 살펴봅니다.
- 비건 시장의 성장 동력과 미래의 식탁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합니다.
오늘날 비건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지만, 그 뿌리는 생각보다 훨씬 깊습니다. 이 글에서는 고대 철학자들의 식탁에서 시작된 비건의 개념이 어떻게 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하나의 단어로 태어나고, 실리콘밸리의 기술 혁신을 거쳐 우리 식탁 위로 올라왔는지 그 장대한 여정을 따라가 봅니다.
모든 것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이야기의 시작을 위해 기원전 500년경,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위대한 수학자 피타고라스는 모든 종 사이의 자비를 설파하며 육식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철학은 동양의 불교, 자이나교가 설파한 ‘아힘사(Ahimsa, 비폭력)’ 원칙과도 맞닿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대부분 동안 평범한 사람들에게 식물성 식단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습니다. 고기는 귀한 음식이었죠. 산업혁명 이후 공장식 축산으로 누구나 고기를 쉽게 먹을 수 있는 풍요의 시대가 열리자, 역설적으로 고기를 먹지 않는 행위가 의미 있는 **철학적 ‘선택’**이 되었습니다. 가장 오래된 질문이 우리 모두의 식탁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제1장: ‘비건(Vegan)‘이라는 말의 탄생
시간은 1944년 영국, 제2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으로 이동합니다. 조용한 목공 교사였던 **도널드 왓슨(Donald Watson)**은 기존 채식주의자(Vegetarian)와 자신을 구분할 새로운 단어가 필요했습니다. 그는 유제품과 달걀조차 거부하는 더 엄격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944년 11월, 왓슨과 동료들은 ‘베지테리언(VEGetariAN)‘의 시작과 끝을 따 **‘비건(VEGAN)’**이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세계 최초의 비건 단체인 ‘비건 소사이어티(The Vegan Society)‘를 창립했습니다.
초기 비건 운동은 식단을 넘어, “인간에 의한 동물의 착취로부터 동물을 해방시키는 원칙"이라는 철학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이는 음식, 의복, 노동 등 인간의 삶을 위해 동물을 이용하는 모든 행위를 거부하는 포괄적인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제2장: 우리가 비건을 선택하는 세 가지 이유
오늘날 사람들은 왜 비건을 선택할까요? 가상의 인물 ‘지나’의 여정을 통해 현대 비건이 마주하는 세 가지 핵심 동기를 알아봅니다.
1. 윤리적 각성 (동물 복지)
지나는 어느 날 ‘공장식 축산’의 현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충격에 빠집니다. 그녀는 동물을 착취하고 고통을 주는 시스템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다는 윤리적 각성을 통해 비건에 첫발을 내딛습니다. 이는 인간이 다른 종보다 우월하다는 믿음, 즉 **‘종차별주의(speciesism)’**에 대한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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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구의 간청 (환경)
지나는 축산업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4.5%를 차지하며, 이는 모든 교통수단이 내뿜는 양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의 주된 원인 역시 축산업입니다. 비건 식단으로 개인의 탄소 발자국을 최대 73%까지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지구의 미래를 위한 작은 실천의 희망을 줍니다.
3. 나를 위한 약속 (건강)
마지막으로 지나는 자기 자신을 돌아봅니다. 식물성 식단이 심장 질환, 제2형 당뇨병, 특정 암의 발병 위험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들을 접합니다. 물론 비타민 B12, 철분 등 영양소 균형을 위한 세심한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닫습니다.
이러한 개인적 변화는 **‘가치소비’**와 **‘미닝아웃(Meaning Out)’**이라는 사회적 트렌드와 맞물려 더욱 확산됩니다. 소셜 미디어 속 유명인들의 모습은 비건을 ‘힙하고’ 의미 있는 라이프스타일로 만들었습니다.
식물성 식단 길라잡이
다양한 채식의 종류가 헷갈리시나요? 아래 표로 간단히 정리해 드립니다.
종류 | 정의 | 허용 식품 예시 |
---|---|---|
플렉시테리언 (Flexitarian) | 기본적으로 채식을 지향하지만, 상황에 따라 육류나 생선을 섭취하는 유연한 채식주의자. | 대부분의 식물성 식품, 가끔 닭고기나 생선 |
페스코 베지테리언 (Pesco-Vegetarian) | 육류는 먹지 않지만, 어류와 해산물은 섭취하는 채식주의자. | 채소, 과일, 곡물, 유제품, 달걀, 생선, 해산물 |
락토-오보 베지테리언 (Lacto-Ovo-Vegetarian) | 육류와 어류는 먹지 않지만, 유제품(Lacto)과 알(Ovo)은 섭취하는 가장 일반적인 채식주의자. | 채소, 과일, 곡물, 유제품, 달걀 |
비건 (Vegan) | 육류, 어류, 유제품, 알, 꿀을 포함한 모든 동물성 제품을 섭취하지 않으며, 생활 전반에서 동물 착취 제품을 거부. | 채소, 과일, 곡물, 콩류, 견과류, 씨앗 |
프루테리언 (Fruitarian) | 식물의 생명을 해치지 않기 위해, 식물에서 자연적으로 떨어진 열매(과일, 견과류, 씨앗)만을 섭취. | 과일, 견과류, 씨앗 |
제3장: 비건 푸드테크, 실험실에서 온 미래의 음식
이제 우리는 실리콘밸리의 연구실로 떠나봅니다. 이곳에서는 과학 기술이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질문인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대한 혁신적인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1. 식물성 대체육: 고기를 해체하다
어떻게 콩이 고기의 맛과 식감을 낼 수 있을까요?
- 질감의 비밀, 압출성형 기술: 초기 ‘콩고기’에 쓰인 TVP(조직 식물 단백) 기술을 넘어, **HMMA(고수분 대체육 제조 기술)**는 식물성 단백질 분자를 실제 근섬유와 유사한 결로 정렬시킵니다. ‘비욘드 미트(Beyond Meat)‘가 진짜 고기 같은 질감을 구현한 비결입니다.
- 풍미의 핵심, ‘헴(Heme)’: ‘임파서블 푸드(Impossible Foods)‘는 고기 특유의 풍미와 육즙이 ‘헴(Heme)’ 분자에서 나온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콩 뿌리혹에서 헴을 만드는 유전자를 효모에 삽입해 대량 생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기술 덕분에 “피 흘리는” 식물성 버거가 탄생했습니다.
2. 배양육: 동물이 아닌 고기를 기르다
배양육은 살아있는 동물에게서 채취한 소량의 세포를 영양분이 가득한 배양액 속에서 키워 고기 조직으로 만드는 기술입니다. 동물을 도축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궁극의 대안으로 꼽히지만, 아직 높은 생산 비용과 규제라는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3. 정밀 발효: 미래를 양조하다
정밀 발효는 효모 같은 미생물을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하여 우유 단백질(카제인, 유청)이나 달걀흰자 단백질 등 특정 성분만 생산하게 하는 기술입니다. 동물 없이 치즈, 아이스크림, 머랭을 만들 수 있는 ‘세포 없는 세포 농업’ 기술로, 식품 산업의 공급망 자체를 바꿀 잠재력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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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소수에서 주류로, 비건 시장의 성장
연구실의 혁신은 이제 거대한 시장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 비건 식품 시장은 연평균 10% 이상 성장하며 2030년대 초반에는 1,000억 달러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됩니다. 한국 채식 인구 역시 10여 년 만에 10배 이상 증가한 25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맛의 거인들: 두 버거 이야기
이 시장을 이끄는 대표적인 두 기업, 비욘드 미트와 임파서블 푸드는 서로 다른 전략을 가집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이 두 거인의 경쟁은 **‘선택의 즐거움’**을 의미합니다. 질감을 중시한다면 비욘드 미트, 고기 본연의 풍미와 육즙을 원한다면 임파서블 푸드를 선택해볼 수 있겠죠. 여러분의 첫 대체육 버거는 어느 쪽이 될까요?
구분 | 비욘드 미트 (Beyond Meat) | 임파서블 푸드 (Impossible Foods) |
---|---|---|
창업자 배경 | 이선 브라운 (Ethan Brown) - 청정에너지, 비즈니스 전문가 | 패트릭 브라운 (Patrick O. Brown) - 스탠퍼드 생화학 교수 |
핵심 기술 | 고수분 대체육 제조 기술 (HMMA) | 정밀 발효를 통한 ‘헴(Heme)’ 분자 생산 |
주요 원료 | 완두콩 단백질 | 콩 단백질 + 헴(Heme) |
타겟 고객 | 유연한 채식주의자, 주류 소비자 | 고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육식 애호가 |
시장 전략 | 대형 유통망 파트너십, GMO-Free 강조 | 기술력 기반의 차별화, 푸드서비스 채널 선점 |
한국에서도 풀무원(지구식단), 신세계푸드(베러미트) 같은 대기업과 언리미트, 더플랜잇 등 혁신 스타트업들이 비건 시장의 성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문화가 된 비건
이제 비건은 최고의 미식(파인 다이닝) 영역으로도 확장되었습니다. 뉴욕의 **‘일레븐 매디슨 파크’**는 완전 비건 메뉴로 전환하고도 미쉐린 3스타를 유지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한국에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비건 미식, 바로 사찰음식이 있습니다. 오신채(五辛菜)를 사용하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사찰음식은 가장 한국적이면서 완벽한 비건 다이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
피타고라스의 식탁에서 시작된 작은 고민은 이제 인류의 미래를 바꿀 거대한 산업이 되었습니다. 접시 위의 혁명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 비건의 확장: 비건은 단순한 식단을 넘어 동물권, 환경, 건강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철학이자 라이프스타일이 되었습니다.
- 기술의 진보: 식물성 대체육, 배양육, 정밀 발효 기술은 ‘동물 없는 축산업’이라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현실로 만들고 있습니다.
- 시장의 성장: 비건은 더 이상 소수의 선택이 아닌, MZ세대의 가치소비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주류 시장입니다.
오늘 당신의 식탁 위 선택이 내일의 메뉴를 결정하고, 나아가 지구의 미래를 만들어갑니다. 오늘 저녁, 가까운 비건 레스토랑을 찾아보거나 마트에서 식물성 대체육을 구입해 요리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작은 실천이 위대한 변화의 시작입니다.
참고자료
- The Vegan Society https://www.vegansociety.com/
- FAO, “Tackling climate change through livestock” https://www.fao.org/ag/againfo/resources/en/publications/tackling_climate_change/index.htm
- Poore, J., & Nemecek, T. (2018). Reducing food’s environmental impacts through producers and consumers. Science, 360(6392), 987-992.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aq0216
- Beyond Meat https://www.beyondmeat.com/
- Impossible Foods https://impossiblefoods.com/
- Oatly https://www.oatly.com/
- Eleven Madison Park https://www.elevenmadisonpark.com/
- 미닝아웃(Meaning Out): ‘의미’를 뜻하는 ‘meaning’과 ‘벽장 속에서 나오다’라는 ‘coming out’이 결합된 신조어. 개인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소비 행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현상.
- 오신채(五辛菜): 불교에서 금하는 다섯 가지 자극적인 채소(마늘, 파, 부추, 달래, 흥거 등).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진다.
- 가격 패리티(Price Parity): 대체 상품의 가격이 기존 상품의 가격과 같아지는 지점. 비건 식품이 주류가 되기 위한 중요한 목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