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속에서 울려 퍼지는 질문,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 현대인이 겪는 번아웃과 소외의 근본적인 원인을 이해합니다.
- ‘멈춤’, ‘연결’, ‘창조’라는 삶의 의미를 찾는 세 가지 경로를 발견합니다.
- 실존주의 철학을 통해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갈 영감을 얻습니다.
왜 우리는 공허한가: 의미를 잃어버린 사회
고요한 밤, 스마트폰 불빛에 의지해 잠 못 이루거나 만원 지하철에서 깊은 한숨을 내쉴 때,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철학적 사색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우리 존재 깊은 곳의 외침입니다. 광고 대행사에서 20년을 일한 강준구 씨처럼, 어느 날 문득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이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이 글은 이 질문이 왜 오늘날 유독 절박하게 다가오는지, 그 원인을 사회 구조와 개인의 경험을 통해 파헤치고, 마침내 우리 자신의 답을 찾기 위한 철학적 나침반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고요 속에서 떠오르는 근원적인 질문
1. 번아웃이라는 전염병, 영혼의 소진
번아웃(Burnout)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영혼의 소진에 가깝습니다. 성공한 음악가 이적 씨가 어느 날 자신의 음악이 “너무 쓸데없고” 의미 없게 느껴졌다고 고백한 것처럼, 번아웃은 재능이나 성공의 부재가 아닌 목적의 상실에서 비롯됩니다.
저 역시 비슷한 무력감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잠을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고, 의욕 상실과 열정이 교차하며 마음이 텅 빈 느낌. 이는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었다는 신호입니다. 문제는 이 상태가 폭식, 음주 등 일시적인 쾌락에 의존하게 만들어 스스로를 파괴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서울아산병원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번아웃은 개인이 추구하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클 때 발생합니다. 결국 우리가 느끼는 극심한 피로는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영혼의 피로인 셈입니다.
번아웃은 단순한 피로를 넘어선 영혼의 고갈 상태입니다.
2. 시스템이 만든 소외: 우리는 왜 부품이 되었나
현대인의 의미 상실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닌, 우리가 속한 사회 시스템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입시 지옥’은 생존 경쟁만을 가르치고, 이 과정에서 협력이나 자아 발견의 기회는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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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중심의 교육은 소외의 시작점이 됩니다.
사회학자 에리히 프롬은 현대인이 시스템의 주인이 아닌 ‘심부름꾼’이 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내면이 아닌 사회적 기능(“나는 회사원입니다”)으로 답합니다. 정체성은 시장에서의 ‘교환가치’로 환원되고, 인간은 소외됩니다.
결국, 사무실 책상에서 느끼는 공허함은 어릴 때부터 내재적 동기를 제거하고 외부적 목표(대학, 취업, 승진)만을 주입해온 시스템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선 사람들
시스템이 주는 답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1. 멈춤의 용기: 잠시 경주를 멈추고 나를 돌아보다
박소연 씨는 텅 비어버린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이대로 일만 하다가 끝나버리지는 않을까?“라는 절박한 질문 끝에 그녀는 자신에게 ‘안식년’을 선물하고 방콕으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그녀가 얻은 것은 새로운 직업이 아닌 **‘느긋하게 생활하는 법’**과 세상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보는 눈이었습니다. 이처럼 잠시 멈춰 자신의 길을 재설정하는 ‘갭이어(Gap Year)‘는 결과가 아닌 과정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합니다.
때로는 멈춤이 가장 빠른 길일 수 있습니다.
2. 두 번째 인생: 타인과의 연결에서 의미를 찾다
주된 경력이 끝난 뒤, 어떤 이들은 진정한 삶을 시작합니다. 명예퇴직 후 스리랑카에서 컴퓨터를 가르친 60대 양병택 씨, 은퇴 후 자살 예방 상담 봉사를 하는 72세 미셸 씨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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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공통점은 삶의 무게중심을 개인의 성취에서 타인과의 연결과 봉사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직함과 연봉이 아닌, 정서적 안정감과 기여를 통해 얻는 내면적 가치는 소외감에 대한 강력한 해독제가 됩니다.
타인을 돕는 행위는 자신의 삶을 채우는 길이 됩니다.
3. 미지의 길: 주체적인 삶의 빛과 그림자
안정된 직장을 떠나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은 낭만적이지만은 않습니다. ‘귀농 빚쟁이’ 유튜버 최지은 씨는 농사일의 고됨과 외로움을 솔직하게 토로합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귀농하십시오. 너무 행복합니다"라고 외칩니다. 왜일까요? 그 삶이 비록 고달파도 온전히 자신이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수동적인 피고용인에서 능동적인 창조자로의 전환, 즉 주체성의 회복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심리적 보상을 주는 것입니다.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될 때, 고난조차 의미의 일부가 됩니다.
비교: 의미를 향한 세 가지 길
길 1: 멈춤과 성찰 | 길 2: 봉사와 연결 | 길 3: 창조와 주체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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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동 | 의도적으로 ‘경주’에서 벗어나기 (갭이어, 안식년, 여행) | ‘두 번째 막’을 타인을 돕는 데 헌신하기 (자원봉사, 멘토링) | 무에서부터 새로운 것을 만들기 (창업, 귀농, 창작 활동) | | 의미의 원천 | 외부 압력에서 벗어나 내면의 가치를 발견하고 과정에 집중하기 | 개인의 경험을 공동체의 자산으로 전환하고, 기여를 통해 목적 찾기 | 온전한 주체성을 행사하고,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며 정체성 찾기 | | 대표 사례 | 방콕으로 떠난 박소연 씨 | 위기 상담 봉사를 하는 미셸 씨 | ‘귀농 빚쟁이’ 최지은 씨 |
나만의 답을 찾기 위한 철학적 나침반
1.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당신은 도구가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말했습니다. 도구는 목적(본질)이 정해진 후 만들어지지만, 인간은 정해진 목적 없이 세상에 먼저 던져진 존재(실존)이며, 스스로 행동을 통해 목적(본질)을 창조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현대 사회는 ‘좋은 학생’, ‘생산적인 노동자’라는 본질을 개인에게 강요하며 이 순서를 뒤집으려 합니다. 이것이 바로 소외의 뿌리입니다. 삶의 의미를 찾는 행위는, 우리 자신의 존재에서 출발해 스스로의 의미를 구축하는 인간 본연의 공식을 되찾으려는 투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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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는 인간이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2. “아모르 파티”: 당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법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는 완전한 책임을 동반하기에 두렵습니다. 이 무게를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철학적 해답을 니체는 **‘아모르 파티(Amor Fati)’, 즉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에서 찾았습니다.
이는 수동적 체념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태도입니다. ‘귀농 빚쟁이’의 삶이 바로 아모르 파티의 증거입니다. 그녀는 고난을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이 낳은 현실로 긍정하며 그 안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의미는 고통을 피하는 데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감내할 가치가 있는 고통을 찾아내는 데서 발견됩니다.
결론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우리가 잘못되었다는 신호가 아니라, 오히려 살아있고 깨어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여정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 핵심 요점 1: 번아웃과 소외는 단순한 피로가 아닌, 현대 사회 시스템 속에서 발생하는 ‘의미의 위기’입니다.
- 핵심 요점 2: 의미는 멈춤과 성찰, 타인과의 연결, 주체적인 창조 등 다양한 길을 통해 발견될 수 있습니다.
- 핵심 요점 3: 삶의 의미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존주의 철학처럼 우리 스스로의 선택과 행동으로 만들어가는 ‘동사’입니다.
이 글을 닫으며, 당신의 삶을 판단이 아닌 호기심으로 바라보기를 제안합니다. 당신은 오늘, 당신의 이야기를 어떤 문장으로 시작하시겠습니까? 거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매일의 삶을 통해 내놓는 작고 구체적인 대답들 속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