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밤을 지켜주는 작은 등대
늦은 밤, 하루의 끝자락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길. 도시의 화려한 불빛들이 하나둘 잠들 시간에도, 어김없이 우리를 기다리는 익숙한 불빛이 있습니다. 파란색과 초록색이 어우러진 그 간판 아래, 누군가는 든든한 도시락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누군가는 시원한 음료수로 하루의 갈증을 풉니다.
이곳은 단순한 가게가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식당이 되고, 때로는 필요한 물건을 언제든 구할 수 있는 만물상이 되며, 때로는 택배를 보내고 공과금을 내는 작은 우체국이자 은행이 되어줍니다.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세혈관처럼 퍼져있는 작은 생태계, 바로 GS25입니다.
하지만 이 평범해 보이는 골목의 불빛이 사실은 50년의 역사를 품은 거대한 유통 제국의 최전선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지금부터 전선을 만들던 작은 회사에서 출발해, 고객의 모든 일상을 책임지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을 꿈꾸는 우리 곁의 제국, GS리테일의 심장부로 흥미진진한 시간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GS리테일 50년 변혁의 연대표
연도/시대 구분 | 주요 이정표 및 사건 |
---|---|
1971-1989 | |
기반 구축의 시대 | 1974년: ‘럭키슈퍼마켓’ 1호점 개점으로 유통업의 첫발을 내딛다. |
1990-2004 | |
편의점 혁명과 성장 | 1990년: 대한민국 토종 편의점 ‘LG25’ 1호점을 열다. |
2002년: LG유통, 슈퍼센터, 백화점 3사 통합으로 몸집을 키우다. | |
2005-2014 | |
GS 시대의 개막과 혁신 | 2005년: LG에서 GS로, ‘GS리테일’이라는 새 이름으로 태어나다. |
2010년: ‘김혜자 도시락’ 출시, ‘혜자롭다’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다. | |
2011년: 세계 최초 증정품 보관 앱 ‘나만의 냉장고’를 선보이다. | |
2015-2020 | |
사업 다각화와 도전 | 2015년: 파르나스호텔 인수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하다. |
2018년: H&B 스토어 ‘왓슨스’를 ‘랄라블라’로 리브랜딩하다. | |
2019년: ‘GS수퍼마켓’을 ‘GS THE FRESH’로 새롭게 단장하다. | |
2021-현재 | |
옴니채널 제국을 향하여 | 2021년: GS홈쇼핑과 합병, 온-오프라인 통합 거함으로 출범하다. |
2021년: 배달앱 ‘요기요’에 투자하며 퀵커머스 전쟁에 뛰어들다. | |
2023년: 통합 멤버십 ‘우리동네GS’로 디지털 제국의 문을 열다. |
제1장: 두 가문의 동맹, 제국의 뿌리가 되다 (1971-2005)
전선 공장에서 식료품 가게로
GS리테일의 첫 페이지는 놀랍게도 우리가 아는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이 아닌, 전기를 다루는 공장에서 시작됩니다. 1971년 ‘금성전공’이라는 이름의 이 회사가 훗날 대한민국 골목 상권을 지배하게 될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죠.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읽는 특별한 DNA는 이미 그때부터 꿈틀대고 있었나 봅니다.
1974년, 회사는 ‘럭키슈퍼마켓’ 1호점을 열며 유통업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입니다. 시장 바구니를 들고 흥정하던 것이 당연했던 시절, 규격화된 상품과 깔끔한 진열대를 갖춘 슈퍼마켓의 등장은 그야말로 새로운 소비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57년간의 약속: ‘인화(人和)‘라는 이름의 신뢰
GS리테일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뿌리가 된 LG그룹의 아주 특별한 창업 이야기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바로 구씨 가문과 허씨 가문, 피를 나누지 않은 두 가문이 무려 57년간이나 거대한 기업을 함께 일군 동업 신화입니다. ‘동업하면 망한다’는 세상의 통념을 보기 좋게 깨뜨린 이들의 비결은 단 하나, ‘인화(人和)’, 즉 사람 사이의 화목과 신뢰였습니다.
구씨 가문이 사업의 큰 그림을 그리는 ‘바깥일’을 맡으면, 허씨 가문은 재무와 살림을 꼼꼼히 챙기는 ‘안살림’을 책임졌습니다. 이처럼 서로를 믿고 역할을 나눈 ‘인화’의 정신은 훗날 GS리테일이 수많은 가맹점주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상생(相生)’**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영원할 것 같던 두 가문의 동행은 3세 경영 시대를 맞아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다른 재벌가들처럼 경영권을 두고 다투는 대신,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택했습니다. 각자 가장 잘하는 분야(LG는 전자·화학, GS는 에너지·유통)에 집중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자는 멋진 합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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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마침내 LG유통은 **‘GS리테일’**이라는 새 이름과 함께 독립적인 항해를 시작합니다. 이 이별은 끝이 아니라, 유통 전문가로서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위대한 첫걸음이었습니다.
제2장: 전설의 탄생, 국민 편의점 GS25 (1990-현재)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편의점
1990년, 서울의 한 동네에 **‘LG25’**라는 낯선 간판이 걸렸습니다. 외국 브랜드를 빌려온 것이 아니라, 순수 우리 기술과 자본으로 만든 대한민국 토종 편의점 1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자부심은 한국인의 입맛과 생활 방식에 꼭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든든한 기반이 되어주었죠.
영원한 라이벌: GS25 vs CU
대한민국 편의점의 역사는 GS25와 CU(옛 훼미리마트)의 라이벌 역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두 거인의 치열한 경쟁은 대한민국 편의점 산업을 키우고 수많은 혁신을 낳는 원동력이었습니다. CU가 매장 수를 공격적으로 늘리며 ‘양적 성장’에 집중했다면, GS25는 매장 하나하나의 내실을 다지는 ‘질적 성장’ 전략으로 맞섰습니다.
연도 | 구분 | GS25 (GS리테일) | CU (BGF리테일) |
---|---|---|---|
2019 | 점포 수 | 13,918개 | 13,877개 |
매출액 | 6조 8,566억 원 | 5조 9,436억 원 | |
2023 | 점포 수 | 17,390개 | 17,762개 |
매출액 | 8조 2,457억 원 | 8조 1,948억 원 |
표에서 보듯, 점포 수는 엎치락뒤치락하지만 매출액(점포당 효율성)에서는 GS25가 꾸준히 앞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3장: 시장의 규칙을 바꾼 세 가지 혁신
치열한 경쟁 속에서 GS25가 왕좌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고객의 마음을 훔친 ‘게임 체인저’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하나. ‘혜자롭다’ 신드롬: 도시락, 문화를 만들다
2010년, GS25는 ‘국민 엄마’ 김혜자 배우의 따뜻한 이미지에 주목했습니다. ‘푸짐하고 정성스러운 엄마의 밥상’이라는 콘셉트로 탄생한 **‘김혜자 도시락’**은 그야말로 대성공을 거두었죠. 이 도시락의 인기는 “와, 이거 정말 혜자롭다!“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습니다. 한 기업의 상품이 우리말의 일부가 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마케팅의 신화로 남아있습니다.
둘. ‘나만의 냉장고’: 주머니 속의 마법
‘1+1’ 행사를 이용해 본 적 있으신가요? 예전에는 증정품을 당장 필요 없어도 억지로 들고 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죠. GS리테일은 이 작은 불편함에 주목했습니다. 2011년, 증정품을 스마트폰 앱에 ‘보관’했다가 원할 때 전국 어디서든 찾아갈 수 있는 **‘나만의 냉장고’**가 탄생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이 마법 같은 서비스는 GS리테일의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셋. 콜라보의 예술: 편의점을 놀이터로 만들다
MZ세대가 주요 소비자로 떠오르자, GS25는 편의점을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닌, ‘경험을 파는 문화 공간’으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인기 게임(메이플스토리), 글로벌 OTT(넷플릭스)와의 협업 상품들은 팬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며 편의점을 새로운 놀이터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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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왕국의 건설, 그 빛과 그림자 (2005-현재)
승리의 기억: 슈퍼마켓의 화려한 부활
편의점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GS리테일은 더 큰 제국을 꿈꿨습니다. 2019년, 낡은 이미지의 ‘GS수퍼마켓’을 **‘GS THE FRESH’**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대대적인 변신에 나섭니다. 성공의 비결은 전국의 매장을 온라인 주문 상품을 배송하는 ‘도심 속 물류센터’로 활용한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GS THE FRESH는 대한민국 1위 슈퍼마켓으로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습니다.
실패의 교훈: ‘랄라블라’의 쓸쓸한 퇴장
물론 모든 도전이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2018년 야심 차게 선보인 H&B 스토어 **‘랄라블라’**는 뼈아픈 실패의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올리브영’이라는 강력한 경쟁자와의 차별화에 실패하며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고, 결국 2022년 사업을 접어야 했습니다. 이 실패는 거대 기업이라도 명확한 정체성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값비싼 교훈을 남겼습니다.
미래를 향한 거대한 베팅
GS리테일은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더 큰 그림을 그렸습니다. 2021년, 오프라인의 최강자 GS리테일과 온라인의 강자 GS홈쇼핑이 하나로 합쳐졌습니다. 같은 해, 배달앱 2위 **‘요기요’**에 거액을 투자하며 쿠팡과 배달의민족이 격돌하는 퀵커머스 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전했죠. 이 모든 것은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문 진정한 ‘옴니채널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거대한 포석이었습니다.
제5장: 편의점의 미래, 디지털 국경을 넘다 (현재와 미래)
O4O 제국의 완성: ‘우리동네GS’
50년의 역사를 쌓아 올린 GS리테일이 꿈꾸는 미래는 **‘우리동네GS’**라는 하나의 앱으로 요약됩니다. 편의점, 슈퍼마켓, 퀵커머스, 간편결제까지 모든 서비스가 이 앱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고객이 앱으로 주문하면, 전국 1만 8천여 개의 매장이 즉시 물류센터가 되어 문 앞까지 배송해 주는 세상. 이것이 바로 GS리테일이 가진 가장 강력한 미래 무기입니다.
이윤을 넘어 상생으로
GS리테일의 미래는 단순히 돈을 버는 것에만 있지 않습니다. 창업 정신인 ‘인화’는 가맹점주들과의 ‘상생’으로 이어져 의료비 지원, 법률 상담 등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적 약자를 돕는 ‘내일스토어’ 운영과 같은 ESG 경영을 통해 우리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따뜻한 제국을 꿈꿉니다.
다시, 골목의 불빛 아래에서
이제 다시 이야기의 시작이었던 밤 11시, GS25 편의점으로 돌아와 봅시다. 이제 이 공간은 더 이상 평범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진열대의 ‘혜자로운’ 도시락은 한 시대를 정의한 문화의 상징으로 보이고, 고객이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는 모습에서는 **‘나만의 냉장고’**에서 시작된 디지털 혁신의 역사가 겹쳐 보입니다. 헬멧을 쓴 배달 기사의 분주한 움직임 속에서는 미래의 사활을 건 퀵커머스 전쟁의 치열함이 느껴집니다.
저 파란색과 초록색 간판은 57년간의 아름다운 동행이 남긴 유산이자, 수많은 성공과 실패를 딛고 일어선 생존의 증거이며, 우리 곁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바꾸어가는 한 제국의 깃발입니다. GS리테일의 50년 역사는 박물관에 갇힌 과거가 아닙니다. 바로 지금, 당신이 서 있는 동네 골목에서, 수백만 명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매일 새롭게 쓰이고 있는 살아있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