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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역사 속 치우천왕의 상반된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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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역사, 신화의 기록을 넘나드는 치우(蚩尤) 비교 분석

  • 이우혁 작가의 소설 『치우천왕기』 속 영웅의 모습 파악
  • 『사기』, 『산해경』 등 역사 기록 속 치우의 상반된 이미지 비교
  • 한국 민속과 현대 문화에서 치우가 수용되고 변용된 과정 이해

전쟁신의 끝나지 않는 수수께끼

치우천왕은 동아시아 역사와 신화 속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다채롭고 유동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중국 정사(正史)에서는 중화 문명의 시조 황제(黃帝)에게 대항한 포악한 반란군으로 기록되는 동시에,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황제들이 제사를 올렸던 강력한 군신(軍神)이기도 하죠. 또한, 저희 한민족에게는 민속 신앙 속에서 악귀를 쫓는 수호신(도깨비)의 원형으로 자리 잡았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민족의 위대함을 상징하는 영웅으로 부활했습니다. 이처럼 치우는 괴물, 반역자, 전쟁의 신, 존경받는 조상, 그리고 현대의 국가적 영웅이라는 상충하는 정체성을 한 몸에 지닌 수수께끼 같은 존재입니다.

치우천왕기 표지 이미지
다양한 가면처럼 여러 얼굴을 가진 치우천왕의 정체성.

이우혁 작가의 대하 판타지 소설 『치우천왕기』는 이러한 치우의 복잡하고 모순적인 유산을 현대적 서사로 재구성하려는 시도의 정점에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판타지 소설을 넘어, 역사 속에서 파편화되고 때로는 적대적으로 묘사되었던 치우라는 인물을 현대 한국 독자들을 위한 일관성 있고 영웅적인 국가 서사로 재창조하려는 의식적인 ‘신화 재창조(re-mythologizing)’ 작업으로 평가할 수 있어요.

이번 포스트에서는 소설 속 치우천왕의 모습과 역사 기록, 민속 전승을 비교하며 소설적 상상력과 역사, 신화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한 인물의 초상을 다채롭게 빚어내는지를 종합적으로 조명해 보겠습니다.


『치우천왕기』, 새로운 영웅을 만들다

이우혁 작가는 역사 기록 속 치우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소설은 치우를 한민족의 이상적인 시조이자 도덕적 깊이를 지닌 영웅으로 재탄생시킵니다.

소설 속 영웅의 초상: 치우천과 치우비 형제

소설은 희네(훗날의 치우천)와 나래(훗날의 치우비)라는 쌍둥이 형제를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특히 형 치우천은 중국 문헌에서 묘사되는 ‘포악한’ 반란군과 정반대로, 깊은 사유와 따뜻한 인간애를 지닌 원칙주의적인 지도자로 그려집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과 백성을 지키기 위해 고뇌하지만, 결코 생명을 가벼이 여기지 않으며 적에게까지 관용을 베풉니다. 작가는 치우천에게 한국의 건국 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을 투영하여, 그를 단순한 전쟁 영웅이 아닌 민족의 이상적인 시조로 격상시킵니다.

신화로 빚어낸 세계: 주신족 대 지나족

『치우천왕기』의 서사는 기원전 2700년경 동북아시아를 무대로, 주인공 형제가 속한 ‘주신족(珠申族)’과 공손헌원(黃帝)이 이끄는 ‘지나족(支那族)’의 대결 구도를 그립니다. 이 구도는 고대사의 패권을 둘러싼 민족 간의 투쟁이라는 거대한 스케일을 부여하며 독자들을 몰입하게 만듭니다. 작가는 여기에 고대 이집트와 수메르 문명, 투르크족 용병 등 실존했던 역사와 신화 요소를 정교하게 엮어 넣어 판타지 서사에 깊이와 설득력을 더합니다.

소설 속 전투 묘사 삽화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치우천왕의 군대

탁록대전: 역사 기록의 전복

소설의 클라이맥스인 **탁록대전(涿鹿大戰)**에서 작가는 가장 극적인 역사 재해석을 시도합니다. 소설 속 치우천왕은 압도적인 전략과 리더십으로 공손헌원의 군대를 격파하고 결정적인 승리를 거둡니다. 이는 황제가 승리했다는 중국의 공식 역사 기록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설정이죠. 작가는 이를 통해 치우천왕이 한민족의 정통성 있는 통치자인 ‘자오지 한웅(慈烏支桓雄)’으로 즉위하는 서사를 완성하며, 그를 패배자가 아닌 승리자로 확고히 각인시킵니다.


역사와 신화 속 치우의 여러 얼굴

그렇다면 실제 역사와 신화 기록 속 치우는 어떤 모습일까요? 소설과 달리 기록 속 그의 모습은 매우 모순적이고 복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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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기록: 『사기』의 반란군 vs 『산해경』의 마술사

치우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입니다. 『사기』는 치우를 염제의 통치가 쇠퇴하자 난을 일으킨 “가장 포악한(最爲暴)” 반란군으로 규정합니다. 결국 황제(黃帝)가 탁록의 들판에서 그를 사로잡아 죽임으로써 천하를 통일했다고 기록하며, 치우를 문명 질서를 위협하는 야만적인 세력으로 묘사합니다.

반면, 신화집 **『산해경(山海經)』**은 치우를 정치적 반란군이 아닌 초자연적 힘을 지닌 존재로 그립니다. 그는 풍백(風伯)과 우사(雨師)를 부르고 짙은 안개를 일으켜 황제의 군대를 공격하는 강력한 마술사로 등장합니다. 비록 황제가 보낸 가뭄의 여신 발(魃)에게 패배하지만, 그의 신비로운 능력은 후대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숭배의 역설: 전쟁의 신, 병주(兵主)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중국 역사에서 패배한 반란군 치우가 최고의 **전쟁신(兵主)**으로 숭배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사기』에는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 제사를 지낸 ‘팔신(八神)’ 중 하나로 치우를 모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심지어 한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은 항우와의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치우에게 제사를 올려 승리를 기원했고, 승리 후 수도에 그의 사당을 세우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국가 이념상으로는 반역자였지만,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그의 강력한 무력이 필요했던 고대인들의 실용적인 인식을 보여주는 역설입니다.

한반도의 수용: 재야사학과 민속 신앙

한반도에서 치우는 중국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수용되고 변용되었습니다. 재야사학계의 문헌인 **『환단고기(桓檀古記)』**에서 치우는 배달국의 제14대 환웅인 ‘자오지 환웅’으로, 황제와의 73번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한 위대한 영웅 조상으로 그려집니다. (단, 『환단고기』는 주류 사학계에서 위서로 간주됩니다.)

민간에서는 그의 강력하고 무서운 이미지가 국가를 수호하는 상징으로 변모했습니다.

  • 둑제(纛祭): 고려와 조선시대에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며 지낸 국가 제사에서 군신(軍神)으로 숭배되었습니다.
  • 도깨비와 귀면와(鬼面瓦): “구리 머리에 쇠 이마”를 한 치우의 모습은 악귀를 쫓는 도깨비의 원형이자, 건물의 사악한 기운을 막는 귀신 얼굴 기와(귀면와)의 형상과 연결되었습니다.

귀면와 이미지
사악한 기운을 막는 역할을 했던 귀면와\(鬼面瓦\)

이러한 흐름은 21세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서포터즈인 **‘붉은 악마(Red Devils)’**의 공식 엠블럼으로 이어지며, 치우는 불굴의 투지를 상징하는 현대적 아이콘으로 완벽하게 재탄생했습니다.

붉은 악마 엠블럼
붉은 악마의 상징이 된 치우천왕의 얼굴


비교 분석: 치우는 어떻게 기억되는가?

소설과 여러 기록에 나타난 치우의 속성을 비교하면, 각 서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를 다르게 그렸는지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속성서사 구분내용
정체성/칭호소설 『치우천왕기』주신(珠申)의 왕, 자오지 한웅
중국 정사 (『사기』)반란군, 구려(九黎)의 지도자
중국 신화 (『산해경』)황제에게 도전한 전사
한국 재야사학 (『환단고기』)배달국 14대 환웅
한국 민속 및 제례군신(軍神), 도깨비 왕
성격소설 『치우천왕기』지혜롭고 자비로운 원칙주의 지도자
중국 정사 (『사기』)“가장 포악함(最爲暴)”, 반역적
중국 신화 (『산해경』)공격적이고 호전적인 도전자
한국 재야사학 (『환단고기』)위대한 전사왕, 어짊(仁)
한국 민속 및 제례두렵고 강력하나, 수호적인 존재
탁록대전 결과소설 『치우천왕기』승리, 황제를 전략으로 제압
중국 정사 (『사기』)황제에게 패배 후 피살
중국 신화 (『산해경』)황제에게 패배 후 피살
한국 재야사학 (『환단고기』)승리, 황제를 사로잡아 신하로 삼음

이 표는 이우혁 작가가 『사기』의 부정적 속성(포악한 반란군, 패배자)을 체계적으로 전복하고, 『환단고기』의 승리 서사와 『산해경』의 신비로운 능력, 한국 민속의 수호신 이미지를 조합하여 자신만의 복합적인 영웅을 창조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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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현대에 되살아난 영웅 서사

치우천왕의 이야기는 기록하는 주체의 관점과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재해석되어 온 역사의 산물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치우의 모습이 가장 마음에 드시나요?

  • 핵심 요약 1: 중국 정사 속 치우는 황제에게 패배한 ‘반란군’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강력한 ‘전쟁의 신’으로 숭배받았습니다.
  • 핵심 요약 2: 한반도에서는 국가의 수호신(둑제)과 민간의 벽사(귀면와, 도깨비) 상징으로 수용되었고, 현대에는 ‘붉은 악마’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 핵심 요약 3: 이우혁의 소설 **『치우천왕기』**는 이러한 모순된 기록들을 현대 한국인의 정체성에 맞게 재조합하여, 자비롭고 지혜로운 ‘승리하는 영웅’ 서사를 성공적으로 창조했습니다.

이처럼 신화와 역사는 고정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필요에 의해 재창조되기도 합니다. 치우천왕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강력한 서사가 지닌 힘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참고자료
#치우천왕#이우혁#치우천왕기#황제헌원#탁록대전#붉은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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