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을 잃어버린 사람들
어느 작은 마을에 그림자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 마을 사람들은 해가 뜨면 일터로 향하고, 해가 지면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와 잠들기 바빴죠. 이들에게 그림자는 사치였습니다.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바로 이 마을을 지배하는 유일한 법칙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도 이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많이!“를 외치며 숨 가쁘게 달려왔지만, 문득 돌아본 우리의 마음 한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무엇을 위해 이토록 애쓰는가’에 대한 깊은 질문이 자리하고 있지는 않나요? 어쩌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 바로 ‘나’ 자신을 돌볼 시간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1장: ‘열심’이라는 이름의 함정
누가 노동을 신성하다 말했나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말입니다. 근면과 성실은 우리 사회 최고의 미덕으로 꼽히며, 잠시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모두가 서로를 채찍질했죠. 하지만 한번 생각해볼까요? 과연 인간은 일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일까요?
먼 옛날, 고대의 현자들은 노동을 고통스러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인간이 생계를 위해 육체를 소모하는 것을 그리 명예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들에게 진정한 가치는 사색하고, 예술을 즐기며, 함께 어울려 이야기꽃을 피우는 ‘여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세상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더 많은 것을 생산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한 경쟁이 시작되면서 ‘일’은 가장 신성한 행위로 둔갑했습니다. 쉬지 않고 일하는 기계의 부품이 되는 것이야말로 성공의 증표처럼 여겨지게 된 것입니다. 성직자들은 노동의 신성함을 설파했고, 경제학자들은 더 많은 노동이 더 큰 부를 가져온다고 약속했으며, 도덕주의자들은 게으름을 모든 악의 근원이라며 비난했습니다.
넘치면 부족한 만 못하다: 과잉 생산의 비극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 문구처럼, 우리는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모두가 미친 듯이 일한 결과, 세상에는 물건이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창고에는 팔리지 않은 상품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쌓여만 갔죠.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은 그대로인데, 물건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결국, 넘치는 물건들을 감당하지 못한 공장들은 문을 닫기 시작했고, 어제까지 밤새워 일하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렸습니다.
Advertisement
참 이상한 일입니다. 너무 열심히 일해서, 너무 많은 것을 만들어서 오히려 모두가 고통받게 되다니요. 이는 마치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전부 들이켜 버린 것과 같은 어리석음이었습니다. ‘더 많이’를 향한 맹목적인 질주가 결국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2장: ‘게으름’이라는 이름의 지혜
세 시간만 일한다면?
만약 우리에게 하루 세 시간만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어떨까요? “에이, 그런 세상이 어디 있어?“라며 손사래를 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건 허황된 꿈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놀랍도록 발전했습니다. 사람의 팔 수십 개, 수백 개를 합친 것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일하는 기계들이 등장했죠. 이론적으로는 이 똑똑한 기계들에게 힘든 일을 맡기고, 우리는 훨씬 적은 시간만 일하며 여유를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의 노동 시간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교묘한 방식으로 늘어만 갑니다. 퇴근 후에도 스마트폰으로 업무를 보고, 주말에도 밀린 일을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니까요. 기계는 인간을 돕는 하인이 아니라, 인간을 더 혹사시키는 무서운 주인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진정한 부를 찾아서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바로 ‘게으를 수 있는 권리’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게으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나태함이 아닙니다. 노동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는 ‘창조적인 여가’를 의미합니다.
생각해보세요. 남은 시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 잊고 있던 나를 만나는 시간: 그동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뤄두었던 책을 읽고, 좋아하는 음악을 실컷 들을 수 있습니다. 텅 빈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거나, 서툰 솜씨로 악기를 배우며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도 있죠.
-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 사랑하는 가족과 저녁을 함께 먹고,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일에 치여 소홀했던 관계들이 회복되고,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때로는 그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거나, 공원을 산책하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멈춤’의 시간이야말로 지친 몸과 마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최고의 보약입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되찾으세요
그림자를 잃어버렸던 마을에 한 현자가 나타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하늘을 보십시오. 그리고 천천히 걸어보세요. 여러분의 발밑에, 여러분을 꼭 닮은 그림자가 조용히 따라오고 있을 겁니다.”
마을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며 일을 멈췄습니다. 그러자 정말 신기하게도, 그들이 잃어버렸던 그림자가 스르륵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림자는 땀 흘려 일하는 모습이 아닌, **여유롭게 미소 짓는 바로 그들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런 ‘멈춤’의 용기입니다. 꽉 막힌 근면 사회의 톱니바퀴에서 잠시 벗어나, 나만의 속도를 되찾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행복과 삶의 의미를 되찾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Advertisement
오늘, 당신의 그림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