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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이 위험할 때: AI 예측의 함정

pho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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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 앞에서 고민하는 사람의 실루엣, 미래의 불확실성을 상징
갈림길 앞에서 고민하는 사람의 실루엣, 미래의 불확실성을 상징

이야기의 시작: 지식의 작은 섬

옛날 어느 마을에, 바다 너머 미지의 땅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몇몇 탐험가들이 작은 배를 타고 나가 해안선 근처의 작은 섬 하나를 발견하고 돌아왔죠. 그들은 자신들이 ‘신대륙’의 모든 것을 보았다고 확신에 차서 외쳤습니다. “저 너머엔 온통 자갈과 모래뿐이오!”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습니다. 더는 미지의 땅을 향한 위대한 항해를 꿈꾸지 않았고, 그 가능성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습니다. 그들이 발견한 ‘작은 섬’이라는 단편적인 지식이, 광활한 대륙 전체를 향한 탐험의 문을 닫아버린 셈이죠.

오늘날 인공지능(AI)의 미래를 예측하는 우리의 모습이 이와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제 막 AI라는 거대한 대륙의 해안가에 도착했을 뿐인데, 벌써부터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그 착각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있을까요?

자신감의 함정: 우리는 왜 틀리는가?

심리학에는 ‘더닝 크루거 효과’라는 재미있는 이론이 있습니다. 어떤 분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죠. 마치 산의 초입에 선 사람이 정상은 금방이라고 착각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AI의 세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 초심자의 확신: 이제 막 AI에 대해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나, 단편적인 성공 사례에 매료된 사람들은 종종 AI의 미래를 너무나 낙관적이거나, 혹은 너무나 비관적으로 단정 짓곤 합니다. “AI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거야!” 혹은 “AI 때문에 인류는 멸망할 거야!” 와 같은 극단적인 예측들이죠.
  • 전문가의 신중함: 반면, 수십 년간 AI를 연구해 온 진짜 전문가들은 오히려 예측에 신중합니다. 그들은 AI가 얼마나 복잡하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많은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마치 경험 많은 등반가가 산의 위대함과 위험성을 알기에 겸손해지는 것처럼 말이죠.

2015년, 많은 AI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이 인간 바둑 챔피언을 이기려면 적어도 2027년은 되어야 한다고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1년 뒤인 2016년,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죠. 이는 우리의 예측이 얼마나 빗나가기 쉬운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체스판 앞에서 고뇌하는 로봇, AI의 예측 불가능한 수를 상징
체스판 앞에서 고뇌하는 로봇, AI의 예측 불가능한 수를 상징

빗나간 예측이 부르는 위험한 미래

“그래서 예측이 좀 틀리면 어떤가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섣부른 예측과 맹신은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이야기: ‘완벽한 채용’ AI의 배신

2024년, 혁신을 꿈꾸는 IT 기업 ‘퓨처테크’는 ‘인간의 편견을 완벽하게 제거했다’고 예측하며 야심 차게 AI 채용 시스템 ‘뉴런-매치’를 도입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지난 20년간의 성공적인 직원 데이터를 학습해 최고의 인재를 가려내도록 설계되었죠. 모두가 공정한 채용의 시대가 열렸다며 환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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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최고의 실력을 갖춘 개발자 지망생 ‘민준’은 퓨처테크에 지원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뛰어난 코딩 실력과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했지만, 서류 전형에서 계속 탈락의 쓴맛을 봐야 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죠.

비밀은 ‘뉴런-매치’가 학습한 데이터에 있었습니다. 지난 20년간 IT 업계는 남성 중심이었고, 성공한 직원 데이터의 대부분 역시 남성이었습니다. AI는 자신도 모르게 ‘남성’이라는 특성을 ‘성공적인 직원의 주요 지표’로 학습해버린 것입니다. 심지어 ‘야구 동아리 활동’ 같은 남성 중심적 취미 활동에 가산점을 주도록 알고리즘이 짜여 있었습니다. 민준의 이력서에 적힌 ‘뜨개질 동아리 회장’이라는 이력은 감점 요인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편견 없는 완벽한 채용’이라는 섣부른 예측은, 결국 ‘과거의 차별을 자동으로 재생산하는’ 위험한 현실을 낳았습니다. 퓨처테크는 최고의 인재를 놓쳤고, AI는 우리 사회의 편견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어버렸습니다.

한 사람의 이력서 위에 올려진 돋보기, AI의 편향된 시선을 상징
한 사람의 이력서 위에 올려진 돋보기, AI의 편향된 시선을 상징

1. 잘못된 길로 가는 투자

민준의 이야기처럼, 장밋빛 미래 예측은 엄청난 자원과 인재를 비현실적인 목표에 쏟아붓게 만듭니다. 과거 수많은 기술 예측들이 ‘곧 상용화될 것’이라며 투자를 이끌었지만, 결국 ‘기술적 겨울(AI Winter)‘을 맞으며 사라져 갔습니다. AI 도입 프로젝트의 실패율이 80%에 달한다는 통계는, 우리가 얼마나 준비 없이 미래에 뛰어들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잘못된 지도는 우리를 목적지가 아닌 낭떠러지로 이끌 수 있습니다.

2. 우리 안의 편견을 먹고 자라는 AI

우리가 AI에게 세상을 가르칠 때 사용하는 데이터에는 우리의 편견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AI는 이 편견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뉴런-매치’의 사례처럼, 특정 성별이나 인종에 대한 차별적인 데이터를 학습한 AI는 채용이나 대출 심사에서 불공정한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오류가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위험한 불씨가 됩니다.

3. 진짜 문제를 외면하게 만드는 허상

‘인간을 뛰어넘는 초지능(특이점, Singularity)‘과 같은 거대하고 자극적인 예측에 몰두하다 보면, 우리는 바로 지금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들을 놓치기 쉽습니다. AI가 만들어내는 가짜 뉴스, 알고리즘에 의한 여론 조작, 대규모 실업 문제, 엄청난 전력 소모로 인한 환경 문제 등은 이미 우리 앞에 닥친 현실입니다. 먼 미래의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를 논하기 전에,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하지 않을까요?

AI가 만들어내는 가짜 뉴스, 알고리즘에 의한 여론 조작등을 상징하는 이미지
AI가 만들어내는 가짜 뉴스, 알고리즘에 의한 여론 조작등을 상징하는 이미지
AI로 비롯될수 있는 대규모 실업
AI로 비롯될수 있는 대규모 실업
AI 의 막대한 에너지소비로 야기될수 있는 환경재앙 상상도
AI 의 막대한 에너지소비로 야기될수 있는 환경재앙 상상도

지도가 아닌 나침반을 들고

우리는 AI라는 미지의 대륙을 탐험하는 첫 세대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손에 들린 것은 완성된 지도가 아니라,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어야 합니다.

성급한 예측으로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하거나 위험한 길로 들어서기보다는,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겸손함입니다.

아는 것이 위험할 때는, 바로 우리가 자신의 앎을 과신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AI의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선택과 책임감 있는 탐험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안개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지도에 대한 맹신이 아니라 우리 손에 들린 나침반, 즉 올바른 방향을 향한 윤리적, 철학적 고민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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