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거실의 트로이 목마
어느덧 우리 집 거실, 그리고 부모님 댁 안방 한가운데에 익숙하게 자리 잡은 안마의자. 가족의 피로를 풀어주는 이 듬직한 가구의 뒤편에는, 사실 한 편의 거대한 대하드라마가 숨겨져 있답니다. 혁신이라는 칼로 시장의 낡은 규칙을 베고, ‘렌탈’이라는 날개를 달아 하늘 높이 솟아올랐던 제국의 이야기 말이죠.
하지만 그 눈부신 왕좌 아래에서는 인간의 탐욕이 독버섯처럼 자라났고, 믿었던 동료의 등 뒤에서는 배신의 칼날이 번뜩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안마의자 제국, **‘바디프랜드’**의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비범한 아이디어가 어떻게 신화가 되고, 그 눈부신 성공이 어떻게 오만과 분열의 씨앗이 되어 스스로를 무너뜨리는지에 대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한때 시장을 호령했던 제국의 탄생부터 균열, 그리고 피로 얼룩진 왕좌의 게임까지, 그 깊고 어두운 심연으로 함께 들어가 보려 합니다.
제1장: 혁명가의 등장, ‘렌탈’이라는 신세계를 열다
2007년 이전, 대한민국의 안마의자 시장은 변화 없는 ‘고요한 연못’과 같았습니다. 투박한 디자인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일본 브랜드 제품들은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죠. 시장 규모는 고작 200억 원 남짓. 누구도 이 작은 연못에서 거대한 폭풍이 일어날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때, 조경희 전 회장과 그의 사위 강웅철 의장이 설립한 바디프랜드가 등장했습니다. 그들의 손에 들린 무기는 바로 **‘렌탈(Rental)’**이라는, 당시로서는 혁명과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왜 수백, 수천만 원짜리 제품을 한 번에 사야 하나요? 매달 몇만 원으로 최고의 휴식을 빌려 쓰세요.”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제안은 시장의 판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목돈 부담이라는 높은 벽이 허물어지자, 잠자고 있던 거대한 수요가 화산처럼 폭발했습니다. 정수기와 비데가 렌탈을 통해 모든 가정의 필수품이 되었던 것처럼, 안마의자의 대중화 시대가 활짝 열린 것입니다.
하지만 바디프랜드의 혁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안마의자는 낡은 의료기기가 아니라, 삶의 품격을 높이는 프리미엄 가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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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멋진 철학 아래, 이탈리아 디자이너와 손잡고 집안 어디에 두어도 어울릴 세련된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인기 드라마의 화려한 펜트하우스 거실에 놓인 바디프랜드는 더 이상 ‘효도 상품’이 아닌, ‘성공한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가전’이라는 욕망의 상징이 되었죠.
여기에 ‘건강수명 10년 연장’이라는 담대한 목표를 내걸고 연구개발(R&D)에 엄청난 투자를 쏟아부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수면 마사지’ 기술을 개발했고, 스트레스에 지친 현대인을 위한 ‘멘탈 마사지’, ‘브레인 마사지’까지 선보이며 안마의자의 개념을 정신적, 의학적 영역으로 확장했습니다.
기술, 디자인, 마케팅, 비즈니스 모델. 이 네 개의 바퀴가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자, 바디프랜드라는 전차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 헬스케어 가전 시장의 왕좌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들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제2장: 균열의 서막, 왕좌에 드리운 그림자
모든 제국은 더 넓은 영토를 꿈꾸는 법입니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바디프랜드 역시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기 위한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죠. 결국 2015년, 창업주 일가는 중대한 결정을 내립니다. 사모펀드(PEF)인 VIG파트너스에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 대부분을 약 4,000억 원에 넘기고 2대 주주로 내려앉은 것입니다.
외부의 자금 수혈은 제국의 성장에 강력한 연료가 되어주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 결정은 훗날 걷잡을 수 없는 분쟁의 씨앗을 품은 ‘판도라의 상자’였습니다. 회사를 자식처럼 키우려는 창업주의 ‘장기적 비전’과, 최대한 빨리 수익을 내고 떠나야 하는 사모펀드의 ‘단기적 목표’가 하나의 왕좌 아래에서 아슬아슬한 동거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좌절된 꿈: 상장(IPO)이라는 신기루
바디프랜드에게 ‘상장(IPO)‘은 오랜 꿈이었습니다. 성공적인 상장은 창업주에게는 명예를, 투자자에게는 막대한 이익을 안겨줄 ‘약속의 땅’과 같았죠. 하지만 세 번에 걸친 야심 찬 도전은 모두 ‘미승인’이라는 냉혹한 통보로 돌아왔습니다. 제국의 화려한 갑옷 아래 감춰져 있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입니다.
- 불투명한 지배구조: 창업주와 사모펀드가 복잡하게 얽힌 지분 구조는 기업의 투명성에 대한 의심을 낳았습니다.
- 경영권 분쟁의 불씨: 이 복잡함은 언제든 주주 간 싸움이 터질 수 있다는 잠재적 위험으로 평가되었습니다.
- 치명적인 오너 리스크: 무엇보다 창업주 강웅철 의장을 둘러싼 배임·횡령 혐의가 결정타였습니다.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는 증권 시장에서 가장 꺼리는 위험 신호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상장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이 실패는 단순히 꿈이 좌절된 것을 넘어, 제국의 신뢰도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이는 균열을 가속하는 비극의 신호탄이었습니다.
제3장: 왕좌의 게임, 피로 물든 동맹
시간이 흘러 첫 번째 주인이었던 VIG파트너스는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새로운 주인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2022년, 또 다른 사모펀드인 스톤브릿지캐피탈과 신생 운용사 한앤브라더스가 손을 잡고 바디프랜드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창업주 강웅철 의장은 2대 주주로서 새로운 주인과 함께 재도약을 꿈꾸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진 세력이 하나의 권력을 나눠 갖는 동맹은 역사상 언제나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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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깨졌습니다. 인수 후 불과 6개월 만에, 스톤브릿지 측이 한앤브라더스를 배임·횡령 혐의로 고발하면서 피비린내 나는 내전의 막이 올랐습니다.
- 1차전 (스톤브릿지 & 강웅철 vs 한앤브라더스): 처음에는 스톤브릿지와 창업주 강웅철 의장이 손을 잡고 한앤브라더스를 공격했습니다. 결국 힘에서 밀린 한앤브라더스는 경영에서 손을 떼야 했습니다.
- 2차전 (한앤브라더스 vs 강웅철): 그러나 패배한 한앤브라더스는 칼끝을 돌려 옛 동맹이었던 강웅철 의장을 똑같은 혐의로 고소하며 반격했습니다. 싸움은 걷잡을 수 없는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습니다.
이들의 싸움은 “누가 회사를 더 잘 이끌 것인가"가 아닌, **“누가 더 회삿돈을 많이 빼돌렸는가”**를 다투는 추악한 폭로전이 되었습니다. 혁신과 성장의 신화는 온데간데없고, 탐욕과 배신으로 얼룩진 막장 드라마만이 남았습니다.
제4장: 몰락의 가속, 무너지는 제국의 재정
왕들이 옥좌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동안, 제국의 성벽은 속절없이 허물어지고 있었습니다. 내전의 대가는 처참했습니다.
2021년 6,000억 원이 넘었던 매출은 분쟁이 본격화된 후 4,000억 원대까지 곤두박질쳤습니다. 한때 900억 원에 가깝던 영업이익은 167억 원으로 무려 **81%**나 쪼그라들었고, 결국 적자를 기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가장 뼈아픈 것은 시장의 마음이 떠나간 것이었습니다. 바디프랜드가 내부 싸움으로 힘을 낭비하는 사이, 경쟁사 세라젬은 ‘척추 의료가전’이라는 새로운 무기로 무섭게 성장했습니다. 결국 바디프랜드는 한때 자신의 것이었던 ‘업계 1위’ 왕관마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몰락은 단순히 싸움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소비자들은 이제 단순한 휴식을 넘어 전문적인 ‘치료’ 기능을 원하기 시작했고, 렌탈 시장의 경쟁은 훨씬 치열해졌습니다. 외부 환경의 거센 폭풍우 속에서, 바디프랜드의 선장들은 서로를 공격하느라 배가 가라앉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입니다.
제5장: 폐허 속에서, 제국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가?
벼랑 끝에 몰린 바디프랜드는 최근 필사적인 재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두 다리가 따로 움직이는 ‘헬스케어로봇’ 기술을 선보이며 기술력을 과시하는 한편, 가격을 낮춘 모델과 디자인을 강조한 가구를 내놓으며 떠나간 고객들의 마음을 돌리려 애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최근 실적이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국의 재건을 이야기하기엔 아직 갈 길이 너무나도 멉니다.
근본적인 문제인 창업주와 대주주를 둘러싼 법적 리스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경영권 분쟁이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습니다. 왕좌를 둘러싼 싸움이 완전히 끝나지 않는 한, 그 어떤 혁신도 모래 위에 쌓은 성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혁명가’는 이제 탐욕과 분열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바디프랜드의 이야기는 한 기업의 성공과 실패를 넘어,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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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요? 눈에 보이는 성장에 취해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이라는 내실을 다지지 못할 때, 그 성공은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을까요?
- 외부 자본은 구원일까요, 약탈자일까요? 기업의 도약을 위해 필요한 자본이 어떻게 창업자의 꿈을 훼손하고, 회사를 투기 대상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 리더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요? 리더의 잘못된 판단과 도덕적 해이가 한 기업을 넘어 수많은 직원과 고객에게 어떤 상처를 남길까요?
오늘도 우리 집 거실의 안마의자는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 안락함 속에서, 한 제국의 흥망성쇠가 남긴 이 서늘한 교훈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과연 바디프랜드는 스스로 만든 폐허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요? 그 미래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험난한 과정 속에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