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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을 향한 여정: 호기심, 소크라테스, 그리고 AI

pho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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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어주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이라는 가려움

새벽 2시, 스마트폰의 불빛에 의지해 ‘블랙홀’로 시작한 검색이 ‘고대 로마 목욕탕’을 거쳐 ‘희귀 시리얼 광고’로 이어지는 경험, 다들 있으시죠? 이 멈출 수 없는 에 대한 갈증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특성입니다. 이 글은 앎을 향한 인간의 위대한 여정을 생물학적, 철학적, 기술적 관점에서 깊이 파헤칩니다.

  • 인간이 왜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알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뇌과학적 이해
  • 정보, 지식, 지혜의 차이와 진정한 앎에 이르는 과정
  • 구글과 AI 시대에 우리가 마주한 앎의 위기와 대처 방안

1. 탐험가의 뇌: 우리는 왜 ‘왜?‘라고 묻는가

우리가 무언가를 알고 싶어 하는 욕망은 단순한 지적 취향이 아니라, 뇌 깊숙이 새겨진 생물학적 명령에 가깝습니다.

호기심의 생물학: 도파민과 뇌 가소성

그 중심에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몰랐던 사실을 깨달을 때 뇌는 도파민을 분비해 만족감을 줍니다. 이 쾌감은 우리를 계속해서 새로운 지식을 갈망하게 만듭니다. 앎의 즐거움을 맛본 뇌는 계속 새로운 지식을 원하는 것이죠.

뇌와 뉴런의 연결
호기심은 뇌의 신경망을 활성화하는 최고의 운동입니다.

호기심을 가지고 무언가를 배우는 행위는 뇌에 새로운 길을 내는 것과 같습니다. 경험과 학습에 따라 뇌의 연결이 변하는 ‘뇌의 가소성(neuroplasticity)’ 덕분입니다. 즉, 호기심은 뇌를 위한 최고의 운동인 셈입니다. 이러한 기제는 어떤 열매가 안전하고 어디에 맹수가 있는지 탐색해야 했던 인류 조상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습니다.

호기심의 ‘어두운’ 이면: 뒷담화와 초정상 자극

하지만 앎에 대한 욕구가 항상 고상한 방향으로만 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타인의 약점에 대한 소문, 즉 **‘뒷담화’**에 끌리는 이유는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하고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는 본능 때문입니다.

문제는 현대의 인터넷 환경입니다. 스마트폰의 모든 알림과 소셜 미디어의 새 게시물은 우리 뇌에 저비용-고빈도의 도파민을 끊임없이 공급하는 **‘초정상 자극(superstimulus)’**으로 작용합니다. 생존을 위해 진화한 우리의 호기심 회로는 이제 의미 있는 지식의 ‘발견’이 아닌, 피상적인 자극의 ‘탐색’ 그 자체에 중독되도록 조종당하고 있습니다.


2. 두 개의 위대한 탐구: 바깥과 내면의 우주

앎을 향한 여정은 외부 세계를 이해하려는 탐구와 우리 내면을 들여다보는 탐구, 두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첫 번째 탐구: 내 바깥의 세계 이해하기

안정적인 공동체를 위해선 질서와 규칙, 즉 도덕이 필요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아는 것은 사회적 생존과 직결됩니다. 과학적 탐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는 감각의 불완전성을 깨닫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착시(optical illusion)’**입니다. 멀어지는 자동차가 작아지는 게 아니라 멀어지고 있다고 뇌가 ‘해석’하듯, 우리가 보는 세상은 뇌가 재구성한 결과물입니다. _내가 보는 세상이 객관적 실재가 아닐 수 있다는 깨달음_은 모든 과학적, 철학적 탐구의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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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커 그림자 착시 현상
A와 B 사각형의 실제 색은 같지만, 우리 뇌는 주변 정보를 바탕으로 다르게 해석합니다.

두 번째 탐구: 내면으로의 여정 - “너 자신을 알라”

위대한 내면 탐구의 문을 연 철학자는 소크라테스입니다. 그가 남긴 **“너 자신을 알라(γνῶθι σεαυτόν)”**는 말은 두 가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너 자신의 무지(無知)를 알라’**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만큼은 알고 있기에, 모르면서 안다고 착각하는 이들보다 지혜롭다고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지의 지(知)’, 즉 앎은 자신의 부족함을 자각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소크라테스는 앎의 출발점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둘째, 자신의 내면, 즉 **‘혼(魂)’**을 들여다보라는 요청입니다. 우리 안의 ‘이성’을 통해 자신의 감정, 욕망, 가치관을 성찰하는 **‘자기인식(self-awareness)’**은 행복한 삶의 필수 토대입니다.

흥미롭게도 현대의 검색 엔진은 이 과정을 정반대로 뒤집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지혜가 “나는 모른다"는 겸손한 고백에서 시작했다면, 현대인의 앎은 “나는 검색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시작합니다. 질문을 던지자마자 답을 얻으면서, 진정한 사유와 비판적 사고가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단계를 건너뛰게 되는 것입니다.


3. 앎의 미로: 정보에서 지혜에 이르기까지

‘안다’는 말은 복잡한 층위를 가집니다. 앎은 정보에서 지식으로, 그리고 지혜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 정보(Information):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데이터. ‘물의 끓는점은 100도이다’ 같은 사실.
  • 지식(Knowledge): 정보들이 맥락 속에서 체계적으로 정리된 상태. 왜 100도에서 끓는지 대기압과 연관 지어 설명하는 것.
  • 지혜(Wisdom): 지식에 경험과 가치 판단이 더해져 삶에 적용되는 능력. 끓는 물로 안전하게 물을 정수하면서도 산불 위험을 고려하는 것.

진정한 ‘앎’은 이론적 지식이 **‘경험’**이라는 담금질을 거칠 때 살아있는 지혜가 됩니다. 영화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이 물고기를 직접 관찰하며 책을 쓴 과정은 _지식이 경험과 만났을 때 비로소 살아있는 ‘앎’이 되는 과정_을 잘 보여줍니다.

앎의 단계별 과정

단계 (Level)설명 (Description)예시 (Example)
1. 정보 (Information)산발적인 사실, 데이터“소크라테스는 사약을 마셨다.”
2. 지식 (Knowledge)맥락과 관계 속에서 정리된 정보“소크라테스는 왜, 어떤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는지 이해한다.”
3. 지혜 (Wisdom)경험과 윤리적 판단을 더해 지식을 적용하는 능력“소크라테스의 죽음에서 ‘진리를 위한 저항’의 의미를 깨닫고, 내 삶의 불의에 어떻게 맞설지 성찰한다.”

4. 기계 속 유령: 구글과 AI 시대의 ‘앎’

정보의 풍요가 역설적으로 우리의 ‘앎’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깊이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더 얕게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닐까요?

‘구글 효과’와 디지털 건망증

**‘구글 효과’**는 정보를 언제든 다시 찾아볼 수 있기에 뇌가 굳이 저장하려 하지 않는 현상입니다. 인터넷이 거대한 ‘외부 기억장치’가 된 셈이죠. 더 심각한 문제는, 끊임없는 알림과 하이퍼링크가 우리 뇌를 주의산만 상태로 훈련시켜 깊이 있는 사고 능력을 저하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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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
정보 검색의 편리함은 기억력과 집중력 저하라는 대가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AI가 던지는 새로운 도전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등장은 이 문제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MIT 연구에 따르면, 챗GPT를 활용한 그룹은 자신의 두뇌만 쓴 그룹보다 신경 활동이 약했으며 자신이 쓴 글조차 잘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정보 검색을 넘어, _생각을 구조화하는 인지 과정 자체를 외부에 위탁하고 있음_을 보여줍니다.

인간과 AI의 상호작용
AI는 훌륭한 조수이지만, 우리의 생각하는 힘을 대체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결국 현대 사회에서 우리의 역할은 정보의 ‘발견자’에서 정보의 **‘검증자’**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비판적 검증 능력은 깊이 있는 사고 훈련을 통해 길러지는데, 우리가 의존하는 기술이 바로 그 능력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것이 거대한 딜레마입니다.


디지털 시대, 지혜롭게 앎을 추구하는 법

기술을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기술의 주인이 되어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1. ‘생산적인 무지’ 끌어안기: 소크라테스처럼, 답을 검색하기 전에 먼저 질문과 충분히 씨름하는 시간을 가지세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최고의 훈련입니다.
  2. 깊은 사유를 위한 시간 확보: 의도적으로 디지털 기기와의 연결을 끊고, 배운 것을 조용히 정리하고 성찰하는 ‘지적 여백’을 만드세요.
  3. 도구의 주인 되기: 구글과 AI를 당신의 생각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닌, ‘확장’하는 조수로 활용하세요. 최종 판단의 책임은 언제나 자신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합니다.

결론: 끝나지 않는 여정

앎을 향한 인간의 여정은 새로운 것을 알았을 때의 쾌감이라는 생물학적 본능에서 출발해, 외부 세계와 내면을 탐구하는 위대한 여정을 거쳐왔습니다. 이제 디지털 기술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새로운 항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핵심 요약:

  • 호기심은 본능이다: 우리의 뇌는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도파민을 분비하여 쾌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었다.
  • 진정한 앎은 내면에서 시작된다: 소크라테스가 가르쳐주었듯,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이 지혜의 출발점이다.
  • 기술은 도구일 뿐이다: 디지털 시대의 핵심 역량은 정보를 찾는 능력이 아니라, 정보의 진위를 가리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다.

진정한 앎은 우리를 더 온전한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끝없는 과정입니다. 그 여정은 지금도, 바로 당신의 손끝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당장, 궁금했던 주제 하나를 정해 검색에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30분간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참고자료 목록
  • 험담이 하고 싶어지는 이유 Naver Premium Contents
  • 10화 뇌과학을 알고 교육을 하면 학습력이 폭발한다 brunch
  • 인간의 호기심과 실존적 과학지능 brunch
  • 호기심의 뇌과학 크레마클럽
  • 인터넷이 뇌 구조를 바꾼다 사이언스타임즈
  • 인간은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레포트월드
  • [Opinion] 지식 탐구의 행위 brunch
  • [호기심 과학] 눈으로 보는 것이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뇌는 눈을 속일 수 있다! ‘착시의 세계’ Samsung Display News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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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가 당신의 기억력 떨어뜨린다 주간조선
  • Google 효과: 인터넷 검색이 뇌에 미치는 영향과 대처 전략 심리의 뇌
  • [한경에세이] ‘앎’에 대한 고찰 한국경제
  • 앎이란 무엇인가 : 인식론 따라잡기 아트앤스터디
  • [동향]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까지 바꾸고 있다 ScienceOn
  • AI가 두뇌에 미치는 영향, MIT 연구 결과 공개 “ChatGPT가 사고력 약화시킨다” Korean Herald
#앎#호기심#소크라테스#구글효과#인공지능#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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