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에게 ‘맘스터치’는 어떤 기억인가요? 아마 많은 분들이 두툼한 치킨 패티가 빵 밖으로 한참이나 튀어나온 ‘싸이버거’의 푸근한 모습을 떠올릴 거예요. 한입에 다 넣기 힘들어 ‘입찢버거’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가성비 최고의 그 버거 말이죠.
하지만 이 따뜻한 ‘엄마의 손길’ 같던 브랜드가 어쩌다 차가운 ‘계모의 손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을까요? 여기에는 한 남자의 담대한 도전에서 시작해, 대한민국을 사로잡은 성공 신화, 그리고 정점에서 벌어진 배신과 반란에 대한 한 편의 드라마가 숨어 있답니다.
1. 미운 오리 새끼, 세상에 나오다
이야기는 1990년대 후반, 맥도날드와 롯데리아 같은 거인들이 격돌하던 패스트푸드 전쟁터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치킨 브랜드 ‘파파이스’의 그늘 아래, 1997년 ‘맘스터치’라는 작은 브랜드가 조용히 태어났어요.
하지만 시작은 초라했습니다. 본사의 지원도, 사람들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연간 5억 원의 적자만 쌓아가는 ‘애물단지’ 신세였죠. 모두가 외면하던 그때, 이 미운 오리 새끼의 가능성을 알아본 한 남자가 나타납니다. 바로 평범한 월급쟁이 임원이었던 정현식 씨였어요.
2004년, 회사가 맘스터치 사업을 정리하려 하자 그는 놀라운 제안을 합니다. “그 사업, 제가 인수하겠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돈을 주고 사는 대신, 브랜드가 진 빚 3억 원을 떠안는 조건으로 맘스터치를 넘겨받았습니다. 안정적인 자리를 박차고 나와, 실패한 프로젝트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 한 남자의 위대한 도박이 시작된 순간이었습니다.
2. ‘입찢버거’의 가성비 혁명
정현식 회장의 도전은 험난했습니다. 무려 7년간 단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하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했죠. 하지만 이 인고의 시간 속에서 맘스터치는 시장을 뒤흔들 강력한 무기들을 벼려내고 있었습니다.
# 싸이버거의 기적
2005년, 맘스터치의 운명을 바꿀 ‘싸이버거’가 탄생합니다. 닭 넓적다리살(Thigh)을 통째로 튀겨낸 두툼한 패티는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소비자들은 자발적으로 “입이 찢어질 만큼 크다"며 ‘입찢버거’, “가격이 양심적이다"라며 **‘개념버거’**라는 애정 어린 별명을 붙여주었죠.
# 느림의 미학, ‘슬로우 푸드’
패스트푸드점이지만 맘스터치는 주문을 받은 후에야 조리를 시작하는 ‘느린’ 전략을 택했습니다. 이 기다림은 ‘엄마가 해준 집밥처럼 따뜻하고 신선한 음식을 대접하겠다’는 약속이었고, 다른 브랜드와는 비교할 수 없는 품질의 차이를 만들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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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을 지배하다
비싼 중심 상가 대신, 대학가와 주택가 골목을 파고든 전략은 신의 한 수였습니다. 초기 창업 비용과 임대료 부담을 낮춰 가맹점주들이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주었죠. 이 전략 덕분에 맘스터치는 면적당 매출에서 버거킹과 롯데리아를 압도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가맹점이 돈을 벌어야 본사도 산다"는 정현식 회장의 ‘상생(相生)’ 철학이 있었습니다. 이 진심은 점주들의 깊은 신뢰를 얻었고, 맘스터치 제국을 세우는 단단한 반석이 되었습니다.
3. 정상에서의 배신, 2000억짜리 질문
2019년, 1200개가 넘는 가맹점을 거느리며 최전성기를 누리던 맘스터치. 모두가 이 성공이 계속될 거라 믿던 순간,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집니다. 창업주 정현식 회장이 자신의 지분 대부분을 사모펀드에 약 2000억 원에 팔아넘긴 것입니다.
정 회장은 “더 큰 도약을 위한 결단"이라며 “자식에게 물려주기보다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는 게 옳다"고 말했습니다. 겉보기엔 아름다운 퇴장이었죠.
하지만 내부는 공포와 배신감으로 들끓었습니다. 이익 극대화를 위해 구조조정도 서슴지 않는 사모펀드의 등장은 직원들에게 고용 불안을, 함께 제국을 일군 점주들에게는 ‘상생’ 철학의 종말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끈끈했던 ‘맘스터치 패밀리’가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4. 엄마는 가고, 계모가 왔다
새 주인을 맞은 맘스터치는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되었습니다. ‘상생’과 ‘가성비’의 자리는 ‘수익 극대화’와 ‘효율성’이 차지했죠.
특징 | 창업주 시대 (엄마터치) | 사모펀드 시대 (계모터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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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철학 | 가맹점과 함께 성장하는 ‘상생’ | 이익을 내고 되팔기 위한 ‘수익 극대화’ |
가격 전략 | 가성비를 지키기 위한 ‘가격 동결’ | 수익을 높이기 위한 ‘잦은 가격 인상’ |
가맹점 관계 | 이익을 나누는 ‘파트너’ | 비용을 떠넘기는 ‘수직적 관계’ |
인기 메뉴들이 효율성이 낮다는 이유로 단종되었고, ‘가성비의 상징’이던 싸이버거 가격은 불과 3년 만에 35%나 치솟았습니다. 소비자들의 애정 어린 별명 ‘엄마터치’는 싸늘한 조소가 담긴 **‘계모터치’**로 바뀌어 갔습니다. 회사의 이익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그것은 소비자의 신뢰와 애정을 팔아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5. 한 점주의 외로운 싸움
본사의 이익 추구는 가맹점주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로 돌아왔습니다. 본사가 점주들과의 상의 없이 핵심 재료인 싸이버거 패티 공급가를 일방적으로 올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부당함에 맞서, 서울 상도역점 점주였던 황성구 씨가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는 흩어진 점주들을 모아 ‘전국맘스터치가맹점주협의회’를 만들고 본사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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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의 반응은 대화가 아닌 탄압이었습니다. 황 점주를 고소하고, 협박했으며, 끝내는 그의 가게에 물품 공급을 끊어버리는 ‘가맹 계약 해지’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습니다.
하지만 황 점주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끈질긴 투쟁 끝에 2024년, 공정거래위원회는 마침내 점주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본사의 ‘갑질’이 명백한 위법 행위라 판단하고 과징금 3억 원을 부과한 것입니다. 이는 창업주의 ‘상생’ 정신과 사모펀드의 ‘이익’ 논리가 정면으로 충돌한 비극 속에서, 한 개인의 저항이 이뤄낸 값진 승리였습니다.
6. 두 얼굴의 제국, 남겨진 질문들
국내에서 ‘갑질 논란’으로 상처 입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맘스터치는 해외에서 눈부신 성공을 거둡니다. 특히 2023년 일본 도쿄 시부야에 연 팝업스토어는 연일 긴 줄을 세우며 ‘대박’을 터뜨렸죠. 일본 언론은 맘스터치를 ‘한국에서 온 흑선(黒船)‘이라 부르며 그 위력에 주목했습니다.
현재 맘스터치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K-푸드의 위상을 떨치는 성공의 아이콘이지만, 국내에서는 과거의 상처를 딛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분투하는 복잡한 내면을 가진 브랜드로 존재합니다.
‘엄마의 손길’에서 ‘혜자버거’로, 그리고 ‘계모터치’까지. 맘스터치의 역사는 그 이름이 불려온 방식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 기업의 성공과 실패를 넘어, 소중한 가치가 자본의 논리 앞에서 어떻게 변질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우화(寓話)일지 모릅니다.
이제 맘스터치 앞에는 마지막 질문이 남아있습니다. 과연 ‘계모’는 다시 따뜻한 ‘엄마’의 손길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한 세대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그 특별한 마법은, 이제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일까요? 그 답은 앞으로 맘스터치가 걸어갈 길에 달려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