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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호갱'이 되고, 기업은 어떻게 우리 마음을 얻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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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어떤 가격은 ‘공정하다’고 느끼게 하고, 다른 가격은 ‘착취적’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걸까요? 가격과 인간 심리 사이의 흥미로운 춤을 꿰뚫어 봅니다.

공항에서 6달러짜리 물을 사며 속이 쓰렸던 경험, 혹은 잔뜩 부풀려진 과자 봉지를 열었을 때 90%가 공기였던 허탈감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가격은 단순히 숫자의 나열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감정을 건드리고, 때로는 우리를 분노하게 만들며, 어떤 때는 현명한 소비를 했다는 만족감을 안겨주는 복잡한 심리 게임입니다.

이 글의 중심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무엇이 어떤 가격은 ‘공정하다‘고 느끼게 하고, 다른 가격은 ‘착취적‘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걸까요? 왜 해변에서 파는 똑같은 맥주 한 병이, 고급 리조트 호텔에서 가져왔다고 하면 7.25달러를 낼 의향이 생기고, 허름한 식료품점에서 가져왔다고 하면 4.10달러도 비싸다고 느끼는 걸까요? 이 현상은 가격이 객관적인 가치만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그 배경에 깔린 맥락과 심리가 훨씬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보고서는 가격 뒤에 숨겨진 인간의 심리를 깊이 파헤쳐 봅니다. 먼저, 우리 머릿속의 ‘이상한 계산기’를 지배하는 행동경제학의 세 가지 근본적인 법칙을 탐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법칙들을 실제 세계의 다양한 사례에 적용하여, 왜 어떤 기업들은 소비자의 분노를 사며 실패의 쓴맛을 보았고, 다른 기업들은 어떻게 소비자의 마음을 얻어 성공 가도를 달렸는지 분석해 보겠습니다. 이 여정을 통해 우리는 더 이상 수동적인 ‘호갱’이 아닌, 가격과 인간 심리 사이의 흥미로운 춤을 꿰뚫어 보는 현명한 관찰자가 될 것입니다.


1부: 우리 머릿속의 이상한 계산기: 가격을 결정하는 3가지 심리 법칙

우리가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표를 볼 때, 우리의 뇌는 단순한 덧셈, 뺄셈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는 소유욕, 손실에 대한 두려움, 공정함에 대한 갈망 등 복잡한 감정과 편향이 뒤섞인 비합리적인 계산이 이루어집니다. 이 계산기를 움직이는 세 가지 핵심적인 심리 법칙을 이해하는 것은 현대 소비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수적인 교양입니다.

1.1 ‘내 것’은 더 비싸다: 소유 효과 (Endowment Effect)

혹시 중고 거래 앱에 아끼던 물건을 내놓으며 ‘이 가격에는 도저히 못 팔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으신가요? 반면 구매자들은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제시해 실망했던 경험은 없으신가요? 이 흔한 갈등의 중심에는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라는 강력한 인지 편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소유 효과란, 어떤 물건이든 일단 자신의 소유가 되면 그저 ‘내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객관적인 가치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심리적 경향을 말합니다.

일단 내 손에 들어온 머그컵은 그냥 머그컵이 아닙니다. ‘나의’ 머그컵이기에 더 높은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소유 효과의 시작입니다
일단 내 손에 들어온 머그컵은 그냥 머그컵이 아닙니다. '나의' 머그컵이기에 더 높은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소유 효과의 시작입니다

이 효과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 것은 1990년 행동경제학의 거장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잭 네치(Jack Knetsch), 그리고 리처드 탈러(Richard Thaler)가 수행한 고전적인 머그컵 실험입니다. 연구진은 대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게는 학교 로고가 새겨진 머그컵을 공짜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컵을 얼마에 팔 의향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다른 그룹에게는 컵을 주지 않고, 만약 이 컵을 산다면 얼마를 지불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전통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두 그룹이 매기는 컵의 가치는 비슷해야 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컵을 소유한 학생들(판매자)이 컵의 가격으로 요구한 금액의 중간값은 약 7달러였던 반면, 컵을 소유하지 않은 학생들(구매자)이 지불하겠다고 한 금액의 중간값은 약 3달러에 불과했습니다. 판매자들은 구매자들이 생각하는 가치의 두 배 이상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 판매 의향 가격(WTA, Willingness to Accept)과 구매 의향 가격(WTP, Willingness to Pay) 사이의 현격한 차이가 바로 소유 효과의 강력한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비합리적인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그 근본적인 원인은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가 제시한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의 핵심 개념인 ‘손실 회피(Loss Aversion)‘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손실 회피란, 사람이 같은 크기의 이익에서 얻는 기쁨보다 손실에서 느끼는 고통을 심리적으로 약 2배에서 2.5배 더 크게 느끼는 경향을 말합니다. 20달러를 주웠을 때의 기쁨보다, 20달러를 잃어버렸을 때의 슬픔이 두 배 이상 크다는 의미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컵을 소유한 판매자에게 ‘컵을 파는 행위’는 자신의 소유물을 잃어버리는 ‘손실’로 인식됩니다. 반면, 구매자에게 ‘컵을 사는 행위’는 새로운 물건을 얻는 ‘이익’으로 인식됩니다. 손실의 고통이 이익의 기쁨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판매자는 그 고통을 상쇄하기 위해 훨씬 더 높은 가격을 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소유 효과는 단순히 법적인 소유권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심리적 소유감(psychological ownership)‘만으로도 이 효과는 충분히 발동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시승하거나, 소프트웨어의 무료 평가판을 사용하거나, 안경점에서 여러 안경테를 집에 가져와 써보는 경험(Warby Parker의 사례처럼)은 우리에게 일종의 ‘준소유(quasi-ownership)’ 상태를 만들어냅니다. 일단 ‘내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면, 그 물건과 나 자신 사이에 정서적 연결고리가 생기고,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더욱 고통스러운 손실로 다가옵니다. 이처럼 소유 효과는 우리의 경제적 결정이 얼마나 깊이 우리의 자아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소유한 물건은 단순히 기능적 도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일부가 되며, 그것을 파는 행위는 마치 우리 자신의 작은 조각을 떼어내는 듯한 감정적 마찰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전통 경제학이 상정하는 ‘합리적 인간’이라는 가정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1.2 ‘본전’보다 중요한 ‘이득’의 느낌: 거래 효용 (Transactional Utility)

앞서 언급했던 ‘해변의 맥주’ 실험을 다시 떠올려 봅시다. 똑같은 맥주, 똑같은 해변, 똑같은 갈증인데도 왜 우리는 고급 리조트에서 온 맥주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을까요? 이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는 201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탈러가 제시한 ‘거래 효용(Transactional Utility)‘이라는 개념에 있습니다. 탈러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물건을 구매할 때 느끼는 총체적인 만족감은 두 가지 요소로 나뉩니다. 하나는 그 물건 자체를 소비함으로써 얻는 순수한 가치, 즉 ‘획득 효용(Acquisition Utility)‘입니다. 다른 하나는 바로 그 거래 자체가 얼마나 ‘괜찮은 딜(deal)‘이었는지에 대한 주관적인 만족감, 즉 ‘거래 효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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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맥주 사례에서 ‘획득 효용’은 두 경우 모두 동일합니다. 시원한 맥주 한 병을 마시는 즐거움이죠. 하지만 ‘거래 효용’에서 극적인 차이가 발생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기준 가격(reference price)‘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특정 상황에서 특정 물건이 얼마 정도의 가격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대를 형성합니다. 고급 리조트 바에서 맥주 한 병에 7달러를 내는 것은 비싸긴 하지만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 있습니다. 따라서 거래 효용이 크게 훼손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허름한 동네 가게에서 온 맥주에 7달러를 내는 것은 우리의 기준 가격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엄청난 ‘부정적 거래 효용‘을 유발하며, 우리는 ‘바가지를 썼다’는 불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불쾌감은 너무나 강력해서, 심지어 맥주를 마시고 싶은 욕구(획득 효용)를 압도하고 구매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거래 효용의 원리는 우리 일상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예상치 못했던 20% 할인 쿠폰을 발견했을 때의 짜릿함은 긍정적 거래 효용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반대로, 35달러짜리 라디오를 10달러 할인받기 위해 20분을 운전해 갈 수는 있지만, 640달러짜리 TV를 10달러 할인받기 위해 똑같이 20분을 운전하지는 않는 것도 거래 효용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절대적인 할인 금액은 10달러로 동일하지만, 라디오의 경우 거의 30%에 달하는 할인율이 주는 긍정적 거래 효용이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은 이 거래 효용의 심리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가구점이나 의류 매장에서 일 년 내내 ‘세일‘을 진행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소비자들은 ‘정가’라는 높은 기준 가격을 보고 ‘할인가’와 비교하면서 큰 이득을 얻는다는 느낌, 즉 높은 긍정적 거래 효용을 느끼고 지갑을 열게 됩니다. 이는 소비자가 단순히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현명한 거래‘를 사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결국, 거래의 공정성에 대한 우리의 주관적인 인식이 제품의 객관적인 가치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우리의 구매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1.3 이익보다 ‘공정함’이 먼저다: 이익 추구를 제한하는 공정성 (Fairness Before Profit)

시장에 눈보라가 몰아닥쳤습니다. 제설용 삽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자, 한 철물점 주인이 평소 15달러에 팔던 삽의 가격을 20달러로 올렸습니다. 경제학 원론에 따르면 이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 철물점 주인의 행동이 ‘공정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대니얼 카너먼, 잭 네치, 리처드 탈러는 전화 설문조사를 통해 이와 같은 질문을 사람들에게 던졌습니다. 그리고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수요 급증을 이용해 가격을 인상하는 행위를 ‘불공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만약 도매상에서 삽의 가격을 올려서 철물점 주인의 비용이 15달러에서 20달러로 증가했고, 그 비용 증가분을 반영해 소매가격을 20달러에서 25달러로 올렸다면, 그 행동은 ‘공정하다‘고 받아들였습니다.

이 연구는 시장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강력한 규칙, 즉 ‘공정성‘의 존재를 드러냈습니다. 연구진은 이를 ‘이중 권리 원칙(principle of dual entitlement)‘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사회적 통념 속에서 소비자와 기업은 각자에게 주어진 권리를 가집니다. 소비자는 기존에 형성된 ‘기준 거래(reference transaction)‘의 조건(예: 평소의 가격)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동시에, 기업은 기존에 얻고 있던 ‘기준 이익(reference profit)‘을 유지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 원칙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 허용되는 행위: 기업이 외부적인 요인(예: 원가 상승)으로 인해 자신의 ‘기준 이익’을 위협받을 때, 그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가격을 인상하는 것은 공정하다고 받아들여집니다. 이는 기업의 생존권과 관련된 문제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 허용되지 않는 행위: 하지만 기업이 단순히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즉 소비자의 ‘기준 거래’를 침해하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늘리는 행위는 불공정하다고 간주됩니다. 특히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을 이용하는 것은 소비자의 절박함을 착취하는 행위로 비칩니다.

이 ‘공정성이라는 제약‘은 왜 인기 콘서트 티켓이 암표 시장에서는 수십 배의 가격에 팔리는데도 주최 측은 정가를 고수하는지, 왜 인기 신차 모델을 사려면 몇 달을 기다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회사가 가격을 대폭 올리지 않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단기적으로는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들은 ‘불공정하다’는 낙인이 찍혔을 때 감수해야 할 장기적인 평판 손상과 고객 이탈을 더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시장은 차가운 수식으로만 움직이는 공간이 아닙니다. 그곳은 ‘공정함‘이라는 강력한 사회적 규범이 작동하는 인간적인 공간입니다. 이 보이지 않는 사회적 계약을 이해하는 것은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며, 가격 인상의 ‘이유’가 가격 인상의 ‘폭’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2부: 소비자의 분노를 산 기업들: ‘불공정’의 덫에 빠지다

행동경제학의 세 가지 법칙—소유 효과, 거래 효용, 그리고 공정성—은 기업이 소비자와 맺는 관계의 근간을 이룹니다. 이 법칙들을 무시하거나 악용할 때, 기업은 단기적인 이익을 얻을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소비자의 신뢰를 잃고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 ‘불공정’의 덫에 빠져 소비자의 거센 분노에 직면했던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그 교훈을 생생하게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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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탐욕은 벌을 받는다: 마틴 슈크렐리의 다라프림 사태와 코로나19 마스크 대란

인간의 생명과 건강이 걸린 문제에서 ‘공정성‘의 원칙은 그 어떤 때보다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취약한 환자들의 절박함을 이용해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단순한 비즈니스를 넘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됩니다. 2015년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다라프림(Daraprim) 사태와 2020년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마스크 대란은 이 원칙을 위반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2015년, 전직 헤지펀드 매니저였던 **마틴 슈크렐리(Martin Shkreli)**가 설립한 튜링 제약(Turing Pharmaceuticals)은 62년 된 약물인 다라프림의 미국 내 판매권을 인수했습니다. 이 약은 톡소플라스마증 치료에 필수적이며, 특히 AIDS 환자나 암 환자 등 면역 체계가 약한 사람들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약물이었습니다. 권리를 인수한 직후, 슈크렐리는 다라프림 한 알의 가격을 13.50달러에서 750달러로 하룻밤 사이에 5,000% 이상 인상했습니다. 이로 인해 일부 환자들의 연간 치료비는 수십만 달러로 치솟았습니다.

이 결정은 즉각적인 사회적 분노를 촉발했습니다. 미국 감염병 학회 등 의료계는 “의학적으로 취약한 환자들에게 정당화될 수 없는 조치"라며 맹비난했고, 언론은 그를 ‘미국에서 가장 미움받는 남자’로 묘사했습니다. 슈크렐리는 자신을 “현대판 로빈 후드"에 비유하며, 폭리를 통해 얻은 수익을 희귀병 치료를 위한 신약 개발(R&D)에 사용하겠다고 항변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정당화 서사는 대중을 설득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다라프림은 이미 수십 년간 효과가 입증된 오래된 약이었고, 신약 개발이 시급한 분야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대중은 그의 주장을 탐욕을 가리기 위한 얄팍한 변명으로 받아들였고, 결국 그는 다른 금융 사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되었습니다. 다라프림 가격 인상 자체는 합법이었을지 몰라도, 그것은 공정성이라는 사회적 규범을 완전히 무시한 행위로 영원히 기록되었습니다.

이와 유사한 분노는 5년 뒤, 대한민국에서도 터져 나왔습니다.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되면서 마스크 수요가 폭증하자 일부 온라인 판매업체들이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39,800원에 팔리던 마스크 한 상자가 130,000원에 다시 올라오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한 업체는 아버지에게서 300원에 받은 마스크를 4,500원에 팔아 15배의 폭리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소비자들은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장사한다"며 분통을 터뜨렸고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보건·위생용품 관련 불만 상담은 2020년 1월 한 달 만에 전월 대비 **1153.7%**나 폭증했습니다. 마스크 가격 폭리 논란에 대한 소비자 상담은 1월 29일 하루에만 급증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마스크 및 손소독제 매점매석 행위 금지 등에 관한 고시’를 시행하고 공적 마스크 5부제를 도입하는 등 시장에 직접 개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다라프림 사태와 마스크 대란의 공통점은 명확합니다. 두 경우 모두 판매자들은 ‘수요 급증’이라는 상황을 이용해 소비자의 ‘기준 거래‘를 심각하게 침해하며 막대한 이익을 추구했습니다. 그들의 정당화 서사(신약 개발, 공급 불확실성)는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했고, 결국 ‘탐욕‘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이는 공정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얼마나 강력한 제약 조건으로 작용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무시되었을 때 사회적 분노를 넘어 정부의 규제라는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2.2 교묘한 꼼수, ‘슈링크플레이션’: 해태 고향만두와 과자 뗏목 이야기

가격을 직접 올리는 것이 소비자 저항에 부딪힐 때, 기업들은 종종 더 교묘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가격표의 숫자는 그대로 둔 채 제품의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 바로 그것입니다. ‘줄어들다(shrink)‘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인 이 용어는, 소비자가 눈치채기 어렵게 실질적인 가격 인상 효과를 노리는 ‘꼼수‘로 인식됩니다. 이는 소비자의 ‘기준 거래’를 정면이 아닌 측면에서 공격하는 기만적인 행위입니다.

가격은 그대로지만 양이 줄었습니다. ‘질소과자’ 논란은 소비자의 눈을 속이려는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한 불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가격은 그대로지만 양이 줄었습니다. '질소과자' 논란은 소비자의 눈을 속이려는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한 불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2023년, 한국소비자원과 공정거래위원회는 실태 조사를 통해 국내 다수 제품에서 슈링크플레이션이 발생했음을 확인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바로 해태제과의 ‘고향만두‘였습니다. 해태는 ‘고향김치만두’의 중량을 기존 450g에서 378g으로 16% 줄였고, ‘고향만두’는 415g에서 378g으로 8.9% 줄였습니다. 이 외에도 CJ제일제당의 비엔나 소시지, 서울우유의 체다치즈, 오비맥주의 카스 캔맥주 등 소비자들이 즐겨 찾는 37개 상품에서 용량 감소가 확인되었습니다. 해태 측은 “경쟁사 대비 높은 중량을 유지하다 원부자재값 부담으로 경쟁사 수준에 맞춘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소비자들은 이를 가격 인상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행위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가격 인상’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은 오래전부터 누적되어 왔습니다. 특히 제과업계의 과대포장, 이른바 ‘질소과자’ 논란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창의적이고 통쾌한 저항은 2014년 9월 한강에서 펼쳐졌습니다. 세 명의 대학생이 국산 과자 봉지 150여 개를 테이프로 이어 붙여 뗏목을 만들고, 그 위에 올라타 30분 만에 성공적으로 한강을 횡단한 것입니다. 이 퍼포먼스는 “질소 반, 과자 반"인 국산 과자의 내용물은 보잘것없지만, 포장 속 질소만으로도 사람을 태울 수 있다는 현실을 풍자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한강을 산책하던 시민들은 이 ‘과자 뗏목‘에 환호를 보냈고,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지며 과대포장 문제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크게 불러일으켰습니다.

슈링크플레이션과 과대포장이 소비자에게 특히 더 큰 불쾌감을 주는 이유는 그 ‘기만성‘에 있습니다. 정직하게 “원가 상승으로 인해 가격을 올립니다"라고 알리는 것과 달리, 이 방법들은 소비자의 눈을 속여 이익을 취하려는 시도로 비치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업과 소비자 간의 신뢰 관계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과자 뗏목’ 퍼포먼스가 그토록 큰 호응을 얻었던 이유는, 기업들이 감추려 했던 보이지 않는 ‘꼼수’를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가시적인 형태로 극화하여 폭로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소비자들이 더 이상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니며, 창의적인 방식으로 기업의 불공정함에 맞설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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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충성 고객에게 상처를 주다: NC 다이노스의 ‘싯가 정책’과 우버의 ‘서지 프라이싱’

기술의 발전은 기업에게 소비자의 수요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가격을 유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 즉 ‘동적 가격제(Dynamic Pricing)‘를 선물했습니다. 하지만 이 강력한 도구는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투명하고 공정한 논리 없이 사용될 경우, 이는 충성스러운 고객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브랜드에 대한 배신감을 안겨주는 최악의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프로야구 구단 NC 다이노스의 ‘싯가 정책’과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Uber)**의 ‘서지 프라이싱’은 그 대표적인 실패 사례입니다.

2022년, 프로야구 구단 NC 다이노스는 KBO 리그 최초로 동적 가격제를 도입했습니다. 구단은 상대팀, 순위, 날씨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티켓 가격을 실시간으로 변동시키는 시스템이라고 홍보했습니다. 하지만 팬들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팬들은 마치 횟집의 가격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티켓 가격에 빗대어 구단에 ‘싯가 다이노스‘라는 조롱 섞인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격 산정 기준이 팬들에게 전혀 공개되지 않은 ‘블랙박스‘라는 점이었습니다. 팬들은 왜 오늘 티켓 가격이 어제와 다른지, 내일은 얼마가 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2022년 주중에 8,000원이었던 외야석 가격이 57,500원까지 치솟는 등 비합리적인 가격 폭등 사례가 발생하며 팬들의 부담은 가중되었습니다. 이는 팀에 대한 애정이 깊어 어떤 경기든 보러 올 ‘충성 고객’일수록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구조였고, 팬들은 자신들의 충성심이 오히려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는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가장 필요할 때 치솟는 요금. 우버의 ‘서지 프라이싱’은 효율적인 메커니즘일 수 있지만, 소비자에게는 불공정한 ‘가격 후려치기’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가장 필요할 때 치솟는 요금. 우버의 '서지 프라이싱'은 효율적인 메커니즘일 수 있지만, 소비자에게는 불공정한 '가격 후려치기'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동적 가격제의 대명사가 된 우버의 ‘서지 프라이싱(Surge Pricing)‘이 겪는 비판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우버의 시스템은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때(예: 퇴근 시간, 악천후, 대형 콘서트 종료 후) 자동으로 요금을 인상합니다. 경제학적으로는 더 많은 운전자(공급)를 거리로 유도하여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효율적인 메커니즘으로 설명됩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이는 가장 절박한 순간에 ‘가격을 후려치는(price gouging)’ 행위로 인식됩니다. 특히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과 요금 결정 과정의 불투명성은 소비자를 무력하게 만들고, 마치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 한몫 챙기려는” 비열한 상술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심지어 조지 워싱턴 대학의 연구에서는 우버와 리프트의 가격 결정 알고리즘이 시카고의 비백인 및 저소득 지역에서 더 높은 요금을 부과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알고리즘의 공정성 문제까지 제기되었습니다.

NC 다이노스와 우버 사례의 핵심 실패 요인은 ‘결과적 공정성(outcome fairness)‘뿐만 아니라 ‘절차적 공정성(procedural fairness)‘을 간과했다는 점입니다. 소비자들은 최종 가격뿐만 아니라, 그 가격이 결정되는 ‘과정‘이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며, 공정한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측 불가능한 블랙박스 알고리즘은 소비자에게서 통제감을 빼앗고, 이는 그 자체로 불공정하게 인식됩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시대에 ‘알고리즘이 그렇게 결정했습니다’라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절차적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한 동적 가격제는 결국 소비자의 신뢰를 잃고 브랜드에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길 뿐입니다.


3부: 소비자의 마음을 얻은 기업들: ‘가치’와 ‘신뢰’를 팔다

모든 가격 정책이 소비자의 분노를 사는 것은 아닙니다. 행동경제학의 원리를 깊이 이해하고 이를 고객과의 소통에 현명하게 적용하는 기업들은, 가격이라는 도구를 통해 오히려 고객의 신뢰를 얻고 강력한 브랜드 자산을 구축합니다. 이들은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제안하고 ‘신뢰‘를 팝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가격 인상이라는 민감한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넷플릭스, 동적 가격제를 공정하게 구현한 디즈니, 그리고 고객의 불편함을 가치로 전환시킨 이케아와 위기 속에서 신뢰를 쌓은 시몬스의 사례를 통해 성공의 비결을 탐구해 보겠습니다.

3.1 가격 인상의 정석: 넷플릭스는 어떻게 구독료를 올렸나?

구독 서비스의 가격 인상은 고객 이탈로 이어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결정입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주기적으로 구독료를 인상하면서도 소비자의 거센 반발을 최소화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그 비결은 가격 인상을 발표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단순히 ‘가격을 올린다’고 통보하는 대신, 왜 가격을 올려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가치 기반 서사(value-based narrative)‘를 구축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줍니다.

넷플릭스는 가격 인상을 ‘더 좋은 콘텐츠를 위한 공동의 투자’로 포장하며 소비자를 설득합니다.
넷플릭스는 가격 인상을 '더 좋은 콘텐츠를 위한 공동의 투자'로 포장하며 소비자를 설득합니다.

넷플릭스의 전략은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전술로 이루어집니다.

  • 가치와 명확하게 연결하기: 넷플릭스는 가격 인상을 발표할 때마다, 그 이유를 자신들의 핵심 가치인 ‘고품질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막대한 투자와 연결합니다. “여러분이 더 많은 요금을 내주시는 덕분에, 우리는 ‘기묘한 이야기’, ‘더 크라운’과 같은 훌륭한 작품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는 가격 인상을 소비자의 ‘손실’이 아니라,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한 ‘공동의 투자‘로 재구성하는 효과를 낳습니다. 이 접근법은 ‘비용 증가’를 이유로 한 가격 인상은 공정하다고 여기는 대중의 심리와 정확히 부합합니다.
  • 전략적인 타이밍 선택: 넷플릭스는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구독자 수가 크게 늘고 ‘오징어 게임’과 같은 초대형 히트작이 나온 직후처럼 가장 성공적인 시점에 가격 인상을 발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가격 인상이 재정적 압박 때문이 아니라, 성공적인 성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인식을 심어줍니다. 이는 브랜드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내러티브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 투명성과 선택권 제공: 넷플릭스는 가격 인상을 갑작스럽게 통보하지 않고, 고객에게 충분한 시간을 두고 미리 공지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고객에게 선택권을 준다는 점입니다. 베이식, 스탠더드, 프리미엄 등 다양한 등급의 요금제를 제공함으로써, 가격에 민감한 고객들이 서비스를 완전히 해지하는 대신 낮은 등급의 요금제로 변경할 수 있는 퇴로를 열어줍니다. 최근에는 더 저렴한 광고 기반 요금제를 도입하여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층을 새롭게 포섭하고 수익원을 다각화하는 유연성까지 보여주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넷플릭스는 가격 인상이라는 잠재적으로 부정적인 이벤트를, 오히려 자신들의 브랜드 약속(끊임없이 새롭고 흥미로운 콘텐츠를 제공하겠다)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는 기회로 전환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가격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기꺼이 지불할 만한 ‘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하고 소통함으로써, 가격 인상에 대한 심리적 저항을 성공적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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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공정한’ 변동 가격제는 가능한가?: 디즈니랜드의 투명한 가격 전략

앞서 살펴본 NC 다이노스와 우버의 사례는 동적 가격제가 얼마나 쉽게 소비자의 불만을 살 수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공정한’ 동적 가격제는 불가능한 것일까요? 세계적인 테마파크 디즈니랜드의 사례는 그렇지 않다고 답합니다. 디즈니 역시 수요에 따라 가격을 변동시키는 정책을 사용하지만, 그 방식은 NC 다이노스나 우버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디즈니의 성공 비결은 바로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통해 소비자에게 ‘통제감‘을 돌려준다는 데 있습니다.

디즈니의 가격 전략은 NC 다이노스의 ‘블랙박스’와 정반대입니다. 디즈니는 방문객이 몰리는 주말이나 휴가철에는 높은 가격을, 비교적 한산한 평일 비수기에는 낮은 가격을 책정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가격 정보가 일 년 치 달력에 미리 투명하게 공개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디즈니랜드는 티켓을 수요에 따라 ‘Tier 0‘부터 ‘Tier 6‘까지 등급을 매겨두고, 고객은 웹사이트에서 각 날짜가 어떤 등급에 속하는지, 가격은 얼마인지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은 소비자에게 놀라운 심리적 효과를 가져옵니다.

  • 첫째, 예측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고객은 몇 달, 심지어 일 년 전에 자신의 휴가 계획에 맞춰 티켓 가격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싯가’처럼 당일 아침에 가격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불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 둘째, 통제감을 부여합니다. 고객은 더 이상 가격 변동의 수동적인 희생자가 아닙니다. 예산을 절약하고 싶다면, 의도적으로 저렴한 ‘Tier 1’이나 ‘Tier 2’에 해당하는 날짜를 선택해 방문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는 가격 시스템이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는 인식을 줍니다.
  • 셋째, 명확한 정당성을 확보합니다. 디즈니의 가격 차등 정책은 ‘더 붐비는 날은 더 비싸다’는 직관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갖습니다. 이는 단순히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공원의 혼잡도를 관리하고 방문객 경험의 질을 유지하려는 합리적인 노력으로 비칩니다.

표 1: 불공정한 동적 가격제 vs. 공정한 동적 가격제

특징불공정한 모델 (우버/NC 다이노스)공정한 모델 (디즈니)
투명성낮음; ‘블랙박스’ 알고리즘높음; 사전에 공개된 등급 및 달력
예측 가능성낮음; 예고 없이 가격 변동높음; 몇 달 전부터 계획 가능
소비자의 통제감낮음; 가격 급등의 희생자처럼 느낌높음; 비용 통제 가능
가격 책정의 명분절박한 수요를 이용한 이익 추구공원 혼잡도 및 수용 인원 관리
소비자 반응분노, 바가지 썼다는 느낌수용, 전략적 계획

디즈니의 사례는 동적 가격제 자체가 본질적으로 나쁜 것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핵심은 ‘어떻게’ 실행하느냐에 있습니다. 절차적 공정성, 즉 투명성, 예측 가능성, 그리고 소비자 선택권을 중심으로 설계될 때, 동적 가격제는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이로운 합리적인 비즈니스 관행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디즈니는 잠재적으로 부정적인 도구를 소비자에게 통제권을 부여함으로써 긍정적인 도구로 전환시킨 것입니다.

3.3 고객의 ‘시간’을 돈으로 바꿔주다: 이케아의 ‘시간 화폐’ 캠페인

고객이 겪는 불편함(pain point)은 모든 비즈니스의 숙제입니다. 대부분의 기업은 이 불편함을 줄이거나 없애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스웨덴의 가구 공룡 **이케아(IKEA)**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고객의 불편함을 오히려 새로운 ‘가치‘로 전환시키는 놀라운 창의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두바이에서 진행된 ‘시간으로 구매하세요(Buy With Your Time)’ 캠페인입니다.

이케아 매장은 넓은 부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보통 도심 외곽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고객들이 매장을 방문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케아 두바이는 이 ‘긴 이동 시간‘이라는 고객의 명백한 불편함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그것을 보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캠페인의 내용은 단순하면서도 기발했습니다. 고객들은 계산대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에 있는 구글 맵스 타임라인을 보여주기만 하면 됐습니다. 그러면 계산원은 고객이 이케아 매장까지 오는 데 걸린 이동 시간을 확인하고, 그 시간을 두바이의 평균 시급에 맞춰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시간 화폐‘로 전환해 주었습니다. 고객들은 이렇게 ‘번’ 시간으로 가구를 구매하거나 구매 금액을 할인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캠페인의 심리적 효과는 엄청났습니다. 이는 ‘거래 효용’ 이론의 천재적인 적용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 첫째, 이 캠페인은 ‘긴 운전’이라는 부정적인 경험을 ‘돈을 버는’ 긍정적인 경험으로 완전히 재구성했습니다. 이동 시간은 더 이상 버려지는 비용이 아니라, 보상을 받는 투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쇼핑 여정 전체에 대해 엄청난 ‘긍정적 거래 효용‘을 창출했습니다.
  • 둘째, 이케아가 고객의 노력과 시간을 인정하고 소중히 여긴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할인 프로모션을 넘어, 고객에 대한 깊은 공감과 존중을 보여주는 행위로 받아들여졌고,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와 긍정적인 입소문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습니다.

이케아는 매장을 옮기거나 제품 가격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단지 고객이 매장에 오기까지의 ‘비용’을 ‘혜택’으로 관점을 전환했을 뿐입니다. 이처럼 고객 여정에 대한 깊고 공감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창의적인 발상은, 전통적인 마케팅의 한계를 뛰어넘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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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위기 속에서 빛난 ‘고통 분담’: 시몬스 침대의 가격 동결 선언

인플레이션으로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경제 위기 상황은 기업의 진정한 가치를 시험하는 무대입니다.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을 이유로 대부분의 기업이 가격을 올릴 때, 소비자와의 ‘고통 분담‘을 선택하는 기업은 깊은 신뢰를 얻게 됩니다. 대한민국 침대 브랜드 **시몬스(Simmons)**의 가격 동결 선언은 바로 이러한 ‘공정성’ 원칙을 위기 상황에서 가장 빛나게 활용한 사례입니다.

2022년과 2023년, 고물가 현상이 지속되면서 가구업계 1, 2위인 한샘과 현대리바트를 포함한 많은 기업들이 제품 가격을 인상했습니다. 하지만 시몬스는 이와 반대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2년 연속으로 제품 가격을 동결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안정호 시몬스 대표는 “힘들 때일수록 다 함께 가는 것, 오랫동안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가격 동결의 이유를 명확히 밝혔습니다.

이 결정은 단순한 가격 유지를 넘어, ‘고통 분담‘이라는 강력한 서사를 만들어냈습니다.

  • 첫째, 시몬스는 소비자에게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켰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소비자들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시몬스의 모습은, 단기적 이익보다 소비자와의 장기적인 관계를 중시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는 브랜드에 대한 강력한 신뢰와 충성도로 이어졌습니다.
  • 둘째, 이 ‘고통 분담’ 메시지는 내부적으로도 진정성을 확보했습니다. 시몬스는 가격 동결과 함께 비상경영 체제를 선포하며 임원진의 연봉을 20% 자진 삭감했습니다. 동시에 직원들의 연봉은 인상하며, 위기 속에서도 내부 구성원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고통 분담’이 단순한 마케팅 구호가 아니라, 회사 전체가 함께 실천하는 경영 철학임을 입증한 것입니다.

시몬스의 사례는 ‘공정성’ 원칙을 방어적인 제약 조건이 아니라, 적극적인 경쟁 우위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경제가 불안정할수록 소비자들은 가격의 공정성에 더욱 민감해집니다. 이때 원가 상승의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대신, 기업이 이를 감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 어떤 마케팅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시몬스는 단기적인 이익을 포기하는 대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비자의 신뢰‘라는 가장 귀한 자산을 얻었습니다.


결론: 가격은 숫자가 아니라 ‘관계’다

우리는 이 긴 여정을 통해 가격표 뒤에 숨겨진 복잡하고도 흥미로운 인간 심리의 세계를 탐험했다. 마틴 슈크렐리의 탐욕적인 가격 인상에서부터 시몬스 침대의 이타적인 가격 동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들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가리킨다. 바로 가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기업과 소비자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소통 수단이라는 것이다.

마틴 슈크렐리, 코로나19 시기 마스크 폭리 판매업자, ‘꼼수’를 부린 슈링크플레이션 기업들, 그리고 ‘싯가 정책’으로 팬심을 잃은 NC 다이노스의 실패는 단순히 경제적 계산의 착오가 아니었다. 그것은 소비자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공정성‘이라는 사회적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신뢰라는 관계의 기반을 무너뜨린 결과였다. 그들은 소비자의 ‘기준 거래’를 존중하지 않았고(공정성 위반), 거래 과정에서 투명성을 제공하지 않았으며(절차적 공정성 위반), 심지어 소비자의 불편함과 절박함을 착취의 기회로 삼았다. 그 결과는 사회적 지탄과 분노, 그리고 때로는 정부의 규제라는 혹독한 대가였다.

반면, 넷플릭스, 디즈니, 이케아, 시몬스의 성공은 정반대의 교훈을 준다. 이들은 가격을 결정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투명성, 가치 기반의 서사, 그리고 공감이라는 원칙을 지켰다. 넷플릭스는 가격 인상을 더 나은 콘텐츠를 위한 ‘공동의 투자’로 재구성했고, 디즈니는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해 동적 가격제를 소비자가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 만들었다. 이케아는 고객의 불편함이라는 ‘비용’을 보상받는 ‘혜택’으로 전환했으며, 시몬스는 위기 속에서 이익을 포기하고 ‘고통 분담’을 선택함으로써 깊은 신뢰를 얻었다. 이 모든 성공 사례의 중심에는 소비자를 단순한 이익 창출의 대상이 아닌, 장기적인 관계를 맺어야 할 파트너로 존중하는 태도가 깔려 있었다.

결국, 기업이 매기는 가격은 그 기업의 가치관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그 가격이 공정하다고 느껴질 때, 소비자는 기꺼이 지갑을 열고 그 브랜드의 충성스러운 지지자가 된다. 그러나 그 가격이 불공정하고 착취적이라고 느껴지는 순간, 그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이 무너진다.

이제 당신이 마트에서, 온라인 쇼핑몰에서, 혹은 야구장에서 가격표를 마주할 때, 그 숫자가 당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지 귀 기울여 보라. 바가지를 썼다는 불쾌감이나 횡재했다는 짜릿함을 느낄 때, 당신은 더 이상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다. 당신은 가격과 인간 심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흥미진진한 춤의 의미를 꿰뚫어 보는, 한층 더 현명해진 관찰자인 것이다.

#가격#심리학#행동경제학#마케팅#비즈니스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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