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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가 가져온 아주 특별한 혁명: 왜 다시 부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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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식사를 넘어 놀이, 치유, 관계의 혁명을 이끄는 ‘요리’의 가치를 재발견합니다.

  • 팬데믹 이후 요리가 어떻게 즐거운 놀이 문화가 되었는지 살펴봅니다.
  • 요리를 통해 변화하는 사회적 관계와 세대별 트렌드를 알아봅니다.
  • 일상의 작은 요리가 당신의 삶에 가져올 긍정적인 변화를 제안합니다.

오늘 저녁, 무엇을 드셨나요? 아마 많은 분들이 배달 앱을 켜거나, 가정간편식(HMR)을 데웠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편리하게 식사를 해결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편리함 속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요리 기술의 전수가 줄어드는 가운데, 흥미로운 반격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요리’라는 행위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삶과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탐색하는 여정입니다.

요리,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놀이가 되다

어느 순간부터 요리는 ‘일’이 아닌 ‘놀이’가 되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에게 집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그중에서도 부엌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했습니다.

팬데믹이 낳은 글로벌 키친: 달고나 커피와 사워도우

2020년 봄, 한국에서 시작된 ‘달고나 커피’ 열풍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커피, 설탕, 물을 400번 이상 저어 만드는 이 단순한 레시피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지친 사람들에게 완벽한 ‘킬링 타임’용 놀이였습니다. 사람들은 SNS에 자신의 성공과 실패를 공유하며 고립된 상황 속에서도 유대감을 나눴습니다.

비슷한 시기 서구권에서는 ‘사워도우’ 베이킹이 유행했습니다. 효모 품귀 현상에 사람들이 밀가루와 물만으로 발효종을 직접 키워 빵을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빵을 굽는 행위를 넘어, _살아있는 생명체(발효종)를 돌보고, 인내하며, 예측 불가능한 결과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_이었습니다. 불확실한 시대에 작은 성취감과 통제감을 안겨주는 치유의 경험이었죠.

팬데믹 기간 동안 유행한 달고나 커피와 사워도우는 요리가 즐거운 놀이이자 치유의 과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유행한 달고나 커피와 사워도우는 요리가 즐거운 놀이이자 치유의 과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두 현상은 요리가 생존을 위한 노동을 넘어, 창의적인 즐거움과 정서적 안정, 사회적 연결을 위한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쿡방의 진화: ‘셰프의 요리’에서 ‘나의 요리’로

미디어 속 요리의 모습도 바뀌었습니다. 과거 요리 프로그램이 전문가의 화려한 기술을 ‘전시’했다면, 이제는 시청자가 직접 따라 할 수 있는 ‘생활 밀착형’ 콘텐츠가 대세입니다.

그 중심에는 ‘집밥 백선생’ 신드롬을 일으킨 백종원이 있습니다. 그는 “요리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철학으로 요리의 문턱을 낮추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는 영국의 스타 셰프 제이미 올리버가 펼쳤던 ‘푸드 레볼루션(Food Revolution)’ 캠페인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백종원이 쉬운 레시피로 한국의 ‘요알못’들에게 자신감을 주었다면, 제이미 올리버는 건강한 식생활이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통해 요리 교육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는 점에서 접근 방식의 차이를 보이지만, 두 사람 모두 요리가 개인과 사회를 바꾸는 힘을 가졌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부엌의 풍경을 바꾸는 사람들

요리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부엌의 주인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요리는 특정 성별이나 세대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요섹남’을 넘어 ‘집요남’의 시대로

과거 남성의 요리가 특별한 날을 위한 ‘이벤트’였다면, 이제는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를 뜻하는 ‘요섹남’을 넘어, **집에서 요리를 즐기는 남자, ‘집요남’**이 새로운 트렌드입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남성들의 온라인 식료품 구매와 밀키트 이용률이 크게 증가한 것은 이를 뒷받침합니다. 이는 가사 분담을 넘어, 남성들이 요리를 통해 새로운 즐거움과 성취감을 발견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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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의 ‘힙’한 요리법

“요즘 애들은 요리 안 해"라는 말은 편견일지 모릅니다. MZ세대는 유튜브와 틱톡으로 레시피를 배우고, 단순히 먹기 위해 요리하기보다는 SNS에 공유하는 등 _‘자기표현’의 수단_으로 요리를 활용합니다. 이는 자신의 일상을 콘텐츠로 만드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시대의 특징을 반영합니다. MZ세대에게 요리는 생존 기술이 아니라, 자신의 개성과 감각을 드러내는 가장 ‘힙’한 콘텐츠 중 하나인 셈입니다. ‘오이 토스트’, ‘라이스페이퍼 불닭쌈’처럼 기성세대는 상상하지 못했던 창의적인 레시피를 유행시키는 것도 바로 이들입니다.

요리, 관계를 만들고 사회를 비추다

요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 사회의 관계와 구조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명절 음식’ 준비는 오랫동안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함께 준비하고 함께 치우는 것”**이 새로운 명절 문화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아들과 며느리가 함께 전을 부치는 풍경은 요리를 통해 가족 내 성 역할 인식이 변화하고, 더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_작은 혁명_입니다.

요리는 더 이상 특정 성별의 몫이 아닙니다. 함께하는 요리는 관계를 평등하게 만들고 가족을 하나로 묶어줍니다.
요리는 더 이상 특정 성별의 몫이 아닙니다. 함께하는 요리는 관계를 평등하게 만들고 가족을 하나로 묶어줍니다.

이처럼 요리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가족, 친구와 소통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사회적 활동입니다.

결론

우리는 왜 다시 요리를 해야 할까요? 그 이유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완벽한 셰프가 될 필요도 없습니다. 요리는 우리에게 빼앗겼던 많은 것을 되찾아주는 행위입니다.

  • 핵심 요약

    1. 놀이로서의 요리: 요리는 더 이상 노동이 아닌, 달고나 커피처럼 즐거운 놀이이자 사워도우처럼 치유의 과정이 되었습니다.
    2. 관계 형성의 도구: 요리는 성별과 세대의 경계를 넘어 소통을 촉진하고, 명절 문화의 변화처럼 평등한 관계를 만드는 사회적 활동입니다.
    3. 삶의 통제권 회복: 직접 요리하는 것은 초가공식품에서 벗어나 내가 먹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미각의 즐거움을 되찾는 작은 혁명입니다.

오늘 저녁, 아주 간단한 요리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냉장고 속 재료로 끓인 된장찌개 한 그릇이 당신의 삶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시작점이 될지도 모릅니다.

참고자료
  • Low Self-Perceived Cooking Skills Are Linked to Greater Ultra-Processed Food Consumption… 링크
  • Continuity in the kitchen: How younger and older women compare… 링크
  • Culinary Confessions: Cooking Habits of Gen Z & Millennials 링크
  • 식품·외식 소비 동반 감소…이례적 현상 2년 넘게 지속 - 뉴스핌 링크
  • 식당도 마트도 안 간다…식품·외식 소비 이례적 동반 감소 - 연합뉴스 링크
  • 코로나19가 쏘아올린 작은 공, ‘달고나 커피’로 달달하게 물든 대한민국 - 소비자평가 링크
  • Pandemic baking - Wikipedia 링크
  • 코로나19로 인한 ‘집콕 시대’ … ‘달고나 커피’ 등 디저트 만들기 인기 - 100세시대 링크
  • Why Is Everyone Suddenly Obsessed With Sourdough? - Electric Literature 링크
  • The sourdough craze is back - Bake Magazine 링크
  • 이쯤 되면 신드롬, 백종원 열풍 꺼지지 않는 이유 - 미디어스 링크
  • ‘집밥 백선생’ 백종원 둘러싼 정체성 논란 “언제까지쥬” - 스포츠Q(큐) 링크
  • 제이미 올리버, 징가 ‘쉐프빌’에 음식혁명 일으킨다 - 게임메카 링크
  • Jamie Olivers Food Revolution Channel - YouTube 링크
  • [디트렌드] 식음료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하던 그들이 요리를 시작하다 - 매드타임스 링크
  • [라이프 트렌드&] 손질된 식재료와 소스로 간편하게~ 중장년 남성도 국물·탕류 요리 척척 - 중앙일보 링크
  • 2021년 알아야 할 MZ세대 식생활 트렌드 세 가지 - 대학내일20대연구소 링크
  • 맛잘알 Z세대의 조금 특별한 식문화 - S-OIL 공식 블로그 링크
  • “왜 여자만 주방에”…남녀 모두 꼽은 명절 성차별 1위 / 연합뉴스TV 링크
  • 명절 음식준비, 운전 함께.. ‘서울시 성평등 명절사전’ 발표 - Daum 링크
  • 에어프라이어 보유율 70%…3년 새 두 배 - 데이터솜 링크
#요리#집밥#홈쿡#달고나커피#사워도우#요리혁명#mz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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