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 나오는 시원함, 작은 음료캔 하나에는 200년의 혁신이 담겨 있습니다.
- 군사적 필요가 어떻게 통조림을 탄생시켰는지 알아봅니다.
- 무거운 강철 캔이 가벼운 알루미늄 캔으로 진화한 과정을 살펴봅니다.
- 일상의 불편함이 ‘풀탭’과 같은 위대한 발명을 이끈 이야기를 확인합니다.
1. 전쟁이 낳은 발명: ‘깡통’의 서막
“치익-“하는 소리. 냉장고에서 막 꺼낸 시원한 음료수 캔을 딸 때 들리는 이 소리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만족스러운 순간을 선사합니다. 이 작은 음료캔이 우리 손에 들어오기까지, 나폴레옹의 고민에서 시작해 북극 탐험대의 비극, 그리고 한 아버지의 불편함을 거쳐 완성된 200년의 혁신적인 여정을 따라가 봅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19세기 초 유럽을 호령하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군대는 잘 먹어야 행군한다"는 말을 신봉하며, 유럽 전역으로 뻗어나가는 자신의 군대를 먹일 방법을 절실히 찾고 있었습니다. 장기간 원정에서 식량을 신선하게 보존하는 것은 대포만큼이나 중요한 전략 과제였습니다. 결국 1804년, 나폴레옹은 식품을 장기간 보존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에 12,000프랑이라는 거액의 상금을 내걸었습니다.
10년 가까운 연구 끝에 이 상금을 거머쥔 사람은 프랑스의 요리사 니콜라 아페르였습니다. 그의 방법은 음식을 두꺼운 유리병에 넣고 코르크로 밀봉한 뒤 끓는 물에 넣어 가열하는 것이었죠. 이것이 바로 통조림, 정확히는 **‘병조림’**의 시작이었습니다. 혁명적인 발상이었지만, 무겁고 깨지기 쉬운 유리는 전쟁터에서 사용하기엔 너무나 비현실적인 재료였습니다.
해결책은 바다 건너 경쟁국 영국에서 나왔습니다. 1810년, 영국의 상인 피터 듀란트는 유리 대신 주석을 도금한 철로 만든 용기에 대한 특허를 냅니다. 그는 이 용기를 **‘틴 캐니스터(Tin canister)’**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바로 현대 캔의 직계 조상입니다. 튼튼하고, 가벼우며, 빛을 완벽히 차단하는 이 철제 용기는 곧 영국 해군의 공식 보급품이 되었습니다.
이름의 유래 또한 흥미롭습니다. 영국에서는 여전히 캔을 ‘틴(Tin)‘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듀란트의 명칭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반면, 이 기술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미국인들은 ‘캐니스터(Canister)‘의 앞 세 글자를 따 **‘캔(Can)’**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깡통’이라는 단어 역시 네덜란드어 ‘kan’이 일본을 거쳐 들어온 외래어이니, 그 뿌리는 모두 하나로 통하는 셈입니다.
사례 연구: 완벽한 보존이 부른 비극
초기 캔은 너무나 튼튼했습니다. 내용물을 보호하는 데만 집중한 나머지, 비어있는 캔 하나의 무게가 거의 500g에 달했고, 이것을 열려면 망치와 정이 동원되어야 했습니다. 깡통따개가 발명되기까지는 무려 50년이 더 걸렸죠.
이처럼 완벽한 보존을 향한 집착은 때로 끔찍한 비극을 낳기도 했습니다. 1845년, 북서항로를 찾아 떠났던 존 프랭클린 탐험대의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식량으로 수많은 통조림을 싣고 떠났지만, 항해 도중 실종되어 전원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훗날 이들의 유해를 분석한 과학자들은 치명적인 수준의 납 성분을 발견했습니다. 원인은 바로 통조림이었습니다. 당시 통조림은 납으로 땜질하여 밀봉했는데, 이 납 성분이 음식물에 서서히 녹아들어 탐험대원들을 중독시킨 것이었죠. 그들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보존 용기가 역설적으로 그들의 목숨을 앗아간 것입니다. 이 사건은 포장 기술의 역사에서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내용물을 완벽하게 담아내는 ‘보존성’과 그것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꺼내 먹을 수 있게 하는 ‘접근성’ 사이의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입니다.
2. 강철의 도전: 캔에 탄산을 담다
식품 보존이라는 과제를 해결한 캔 기술은 곧 새로운 도전에 직면합니다. 바로 탄산이 들어있는 음료, 특히 맥주를 담는 것이었습니다. 맥주 속 탄산가스가 만들어내는 내부 압력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습니다. ‘아메리칸 캔’과 같은 당시의 선도 기업들조차 맥주를 캔에 담으려다 연이어 폭발하는 실패를 맛봐야 했습니다.
사례 연구: 금주법 해제가 낳은 크루거의 대박
이 난제를 해결하는 결정적 계기는 기술이 아닌 사회적 변화에서 찾아왔습니다. 1933년, 미국에서 13년간 이어졌던 금주법이 폐지되자 거대한 맥주 소비 시장이 하룻밤 사이에 열렸습니다. 주류 회사와 금속 공학자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캔맥주 개발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마침내 1935년, 뉴저지의 **크루거 맥주 회사(Krueger Brewing Company)**가 세계 최초의 캔맥주를 시장에 선보이는 데 성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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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첫 캔맥주는 **강철(Steel)**로 만들어졌습니다. 주로 세 부분으로 구성된 ‘3피스(three-piece)‘캔이었죠. 원통형 몸체, 바닥, 그리고 뚜껑을 각각 만들어 결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강철은 탄산의 압력을 견딜 만큼 충분히 튼튼했고, 맥주의 가장 큰 적인 빛을 완벽하게 차단했습니다. 빛 속의 자외선은 맥주 속 홉 성분과 반응해 ‘광분해취’라는 불쾌한 냄새를 만드는데, 흔히 맥주가 ‘상했다’고 표현하는 ‘스컹크 냄새’가 바로 이것입니다. 강철 캔은 갈색 병보다도 빛 차단 효과가 월등했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명확했습니다. 여전히 무거웠고, 간혹 쇠 맛이 맥주에 배어든다는 평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캔을 따기 위해서는 **‘처치 키(church key)’**라 불리는 뾰족한 오프너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휴대성, 그리고 마신 뒤 무거운 유리병을 가게에 다시 가져가 보증금을 환불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졌다는 점에 열광했습니다.
3. 한 아버지의 불편함이 세상을 바꾸다
캔맥주가 대중화되었지만, 여전히 ‘오프너가 없으면 말짱 꽝’이라는 결정적인 불편함이 남아있었습니다. 이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문제를 해결한 영웅은 뜻밖의 장소에서 탄생합니다. 1959년, 오하이오주 데이턴의 기계 공구 회사를 운영하던 엔지니어, **에멀 프레이즈(Ermal “Ernie” Fraze)**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가족과 함께 피크닉을 즐기던 중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려는데, 아뿔싸, 오프너를 집에 두고 온 것을 깨달았죠. 그는 결국 자동차 범퍼에 캔을 대고 억지로 구멍을 뚫어야 했습니다. 음료수는 쏟아지고 손은 엉망이 되었죠. 바로 그 순간, 프레이즈는 생각했습니다. “반드시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거야!”
혁신 1: 잡아당기는 뚜껑, ‘풀탭’의 등장
피크닉에서 돌아온 프레이즈는 곧장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간단했습니다. 캔 뚜껑에 미리 칼집을 내놓고, 그 위에 고리 모양의 손잡이를 리벳으로 고정하는 것이었죠. 이 고리를 지렛대 삼아 당기면 칼집을 낸 부분이 뜯겨나가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풀탭(Pull-Tab)’, 인류 최초로 도구 없이 맨손으로 딸 수 있는 캔이었습니다. 저도 어릴 적 이 풀탭 고리를 떼어내 손가락에 끼고 놀았던 기억이 나는데, 이 작은 발명품이 엄청난 혁신이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혁신 2: 문제를 해결한 또 다른 혁신, ‘스테이온탭’
하지만 이 위대한 발명은 새로운 문제를 낳았습니다. 사람들이 캔을 따고 나서 떼어낸 고리를 아무 데나 버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해변과 공원은 날카로운 금속 쓰레기로 뒤덮였고, 아이들이 다치거나 야생동물이 삼키는 등 안전 문제까지 불거졌습니다. 프레이즈는 자신의 발명이 낳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한번 머리를 싸맸습니다. 그리고 1975년, 그는 더욱 우아하고 완벽한 해결책을 내놓습니다. 바로 ‘스테이온탭(Stay-on-Tab)’, 즉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팝탑(Pop-top)’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고리가 뚜껑에서 떨어져 나가는 대신, 뚜껑의 일부를 캔 안으로 밀어 넣는 구조입니다. 쓰레기와 안전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 ‘혁신을 완성한 혁신’이었습니다.
4. 알루미늄 혁명: 더 가볍게, 더 차갑게
에멀 프레이즈가 캔을 여는 방식을 혁신하는 동안, 캔의 재료 자체에도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무거운 강철의 시대가 저물고, 가벼운 알루미늄의 시대가 열렸죠. 그 중심에는 콜로라도의 맥주 회사, **아돌프 쿠어스(Adolph Coors Company)**가 있었습니다. 1950년대, 경영자였던 빌 쿠어스는 강철 캔이 맥주 본연의 맛을 해치고, 버려진 캔이 녹슬어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음새가 없고, 가벼우며, 완벽하게 재활용이 가능한 캔을 꿈꿨습니다. 수백만 달러를 투자한 연구 끝에, 마침내 1959년, 세계 최초의 이음새 없는 ‘2피스(two-piece)’ 재활용 알루미늄 캔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3피스에서 2피스로: 제조 공정의 도약
알루미늄의 등장은 캔 제조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 3피스 강철 캔: 몸통, 뚜껑, 바닥의 세 조각을 용접해 만들었습니다. 이음새는 잠재적인 누수 지점이자 녹이 스는 약점이었습니다.
- 2피스 알루미늄 캔: 한 장의 알루미늄 판을 프레스로 눌러 몸통과 바닥이 하나로 이어진 컵 모양으로 만든 뒤, 뚜껑만 덮는 방식(
DWI
공법)입니다. 이음새가 없어 훨씬 튼튼하고 완벽하게 밀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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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국의 음료캔: 자판기에서 편의점까지
서구에서 수십 년에 걸쳐 발전해 온 음료캔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1980년대의 일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자판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급속한 도시화와 함께 길거리 곳곳에 등장한 음료 자판기는 튼튼하고 규격화된 알루미늄 캔에 완벽한 파트너였습니다.
이러한 시장 성장에 발맞춰 한일제관, 롯데알미늄과 같은 국내 기업들이 캔 제조 산업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특히 롯데칠성의 캔커피 **‘레쓰비(Let’s be)’**는 자판기와 편의점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며, 단순한 음료 용기를 넘어 한국인의 일상과 문화 속에 깊숙이 스며들었습니다. 여러분이 가장 즐겨 마시는 캔 음료는 무엇인가요?
6. 마지막 한 모금 후: 캔의 끝나지 않는 여정
음료캔의 진정한 슈퍼파워는 우리가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신 뒤에 발휘됩니다. 바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재활용성입니다. 분리 배출한 알루미늄 캔은 수거된 후 단 60일 만에 다시 새로운 캔으로 만들어져 상점 진열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재활용 알루미늄으로 캔을 만드는 에너지는 원석에서 새로 생산하는 에너지의 **단 5%**에 불과하며, 품질 저하 없이 무한정 재활용이 가능합니다.
사례 연구: 한국 재활용의 역설
하지만 완벽해 보이는 이 시스템에도 그늘은 있습니다. 한국의 알루미늄 캔 분리수거율은 **96%**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이 중 다시 캔으로 재활용되는 비율은 **37%**에 불과합니다. 캔 안에 남은 내용물이나 담배꽁초 같은 이물질로 인한 오염, 그리고 경제 논리 때문에 고품질 캔이 아닌 저품질 주물 제품 등으로 **다운사이클링(Downcycling)**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는 올바른 분리배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줍니다.
비교/대안
강철 캔 vs. 알루미늄 캔: 세기의 대결
알루미늄 캔은 거의 모든 면에서 강철 캔을 압도했습니다. 이 변화가 왜 필연적이었는지는 아래 표를 통해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특징 | 강철 캔 | 알루미늄 캔 |
---|---|---|
무게 | 무겁고 밀도가 높음. 운송비가 많이 들고 휴대가 불편. | 강철의 약 1/3 무게로 매우 가벼움. 운송비를 획기적으로 절감. |
제조 방식 | 3피스(몸통, 뚜껑, 바닥). 이음새가 있어 누수 및 부식에 취약. | 2피스(몸통/바닥 일체형 + 뚜껑). 구조적으로 튼튼하고 탄산 보존력이 뛰어남. |
부식 및 맛 | 녹이 슬기 쉬워 주석 도금 필요. ‘쇠 맛’이 날 수 있다는 인식 존재. | 자연 산화막으로 녹에 강함. 내용물 본연의 맛을 잘 보존. |
열전도율 | 상대적으로 낮음. | 높아 훨씬 빨리 차가워짐. 소비자에게 강력한 장점으로 작용. |
재활용성 | 가능하지만 고철 가치가 낮음. | 경제적 가치가 높아 수거 동기가 강력하며, 품질 저하 없이 무한 재활용 가능. |
결론
망치와 정으로 열어야 했던 무거운 철 상자에서 시작된 음료캔. 그 200년의 여정은 인간의 창의성, 기술의 진보, 그리고 환경을 향한 책임감이 어우러진 혁신의 역사였습니다.
- 핵심 요점 1: 캔은 군대의 식량 보존이라는 군사적 필요에서 탄생했습니다.
- 핵심 요점 2: 소비자의 불편함을 해결하려는 노력(풀탭)과 소재의 혁신(알루미늄)이 현대 캔의 모습을 완성했습니다.
- 핵심 요점 3: 알루미늄 캔은 무한 재활용이 가능한 지속가능한 순환 경제의 상징입니다.
캔의 진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재밀봉 캔, 자체 냉각 캔, 스마트 캔까지 미래는 이미 캔 안에 있습니다. 다음에 음료수 캔을 딸 때, 그 “치익-” 소리에 담긴 200년의 혁신을 기억하며 내용물을 깨끗이 비워 올바르게 분리배출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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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10 Hours of Opening a Can of Soda 링크
-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과학적 입증 - 미주 한국일보 링크
- ‘CAN’ 하나에 특허가 몇 개? 지식재산의 복합체 - WIPNEWS 링크
- 나폴레옹 전쟁이 만든 통조림 / 통조림의 역사 - 스티비 링크
- About Aluminum Cans | GCM 링크
- How Are Tin and Aluminum Cans Made? - YouTube 링크
- The History of the Can - Can Manufacturers Institute 링크
- 깡통 - 나무위키 링크
- 금속캔 -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링크
- Steel and tin cans - Wikipedia 링크
- 캔 맥주는 언제 만들어 졌을까 - 한겨레 링크
- 병맥주와 캔맥주 무엇이 더 맛있을까? - 마시즘 링크
- 커피 캔과 콜라 캔이 다른데, 왜 그런 거예요? - 포스코그룹 뉴스룸 링크
- Happy 60th birthday to the recyclable aluminum can | Molson Coors 링크
- 음료수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가들 - 마시즘 링크
- 캔 속에 가득 담긴 공학 한 모금 - 공대상상 링크
- Aluminum can - Wikipedia 링크
- 음료 배달의 역사 - 브런치 링크
- 한일제관 - 나무위키 링크
- 롯데알미늄 - 위키원 링크
- 레쓰비 - 나무위키 링크
- 국내 알루미늄 캔 수거율 96%인데, 왜 수입 폐캔 쓸까 | 한국일보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