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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걸음은 멈춤이 아닙니다

phoue

4 min read --

끝나지 않는 경주

우리 주변은 마치 거대한 러닝머신 같아요.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빅데이터’… 스피커에서는 연일 속도를 높이라는 구령이 터져 나옵니다. 뒤처지면 끝이라는 불안감에 우리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달리고 또 달립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나요?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 거지?’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만 제자리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것 같은 기분. 마치 끝없는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것처럼 막막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 제자리걸음이 멈춤이나 후퇴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순간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면 어떨까요?

어두운 배경에 홀로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사람의 지친 뒷모습
어두운 배경에 홀로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사람의 지친 뒷모습

1. 옆 사람의 속도에 불안해질 때

디자이너 ‘수진’ 씨의 이야기로 문을 열어볼까 합니다. 그녀는 10년 차 베테랑이었지만, 요즘 들어 자신의 자리가 위태롭다고 느꼈죠. 주변 동료들은 너도나도 코딩을 배우고, 데이터 분석 스터디에 참여하며 ‘미래 인재’가 되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회의실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기술 용어들이 난무했고, 수진 씨는 점점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이러다 정말 도태되는 거 아닐까?”

초조해진 그녀는 새벽까지 이어지는 온라인 강의를 결제하고, 주말에는 각종 세미나를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머릿속에 구겨 넣은 지식들은 겉돌기만 할 뿐, 마음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달리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던 셈이죠.

수많은 책과 노트북 화면에 둘러싸여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 여성의 모습
수많은 책과 노트북 화면에 둘러싸여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 여성의 모습

2. 오래된 공방에서 찾은 지혜

그러던 어느 날, 수진 씨는 복잡한 머리를 식힐 겸, 도시 외곽의 작은 목공방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수십 년간 나무를 만져온 한 노인을 만났죠. 노인은 최신 전동 공구가 아닌, 손때 묻은 대패와 끌을 이용해 느릿하지만 정교하게 가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어르신, 요즘은 버튼 하나면 다 되는 세상인데, 힘들게 왜 손으로 작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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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 씨의 물음에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아가씨, 저기 뱅글뱅글 돌아가는 팽이 보이지? 팽이가 힘차게 돌려면 중심축이 단단해야 하는 법이야. 잠시 멈춰서 축을 가다듬는 시간 없이 계속 채찍질만 하면, 팽이는 금세 쓰러지고 말지.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야.”

노인은 덧붙였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나무의 결을 느끼고, 그 결에 맞는 길을 내주는 건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손이야. 잠시 멈춰서 나무의 이야기를 듣는 이 시간이 없다면, 좋은 가구는 절대 나올 수 없어.”

그 순간 수진 씨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을 몰아붙였던 ‘속도’가 아니라, 잠시 멈춰서 자신의 ‘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녀의 제자리걸음은 길을 잃은 방황이 아니라, 단단한 중심축을 만들기 위한 숨 고르기의 시간이었습니다.

햇살이 들어오는 고즈넉한 목공방에서 장인이 나무의 결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는 모습]
햇살이 들어오는 고즈넉한 목공방에서 장인이 나무의 결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는 모습\]

3. ‘혁명’의 진짜 의미를 마주하다

생각의 전환을 맞이한 수진 씨는 기술 서적 대신 역사책을 펼쳤습니다. 과거의 ‘혁명’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죠. 증기기관이 등장했던 산업혁명, 전기가 밤을 밝혔던 2차 산업혁명. 그 눈부신 발전의 이면에는 일자리를 잃고 삶의 터전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눈물이 있었습니다.

기술의 발전이 언제나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았다는 사실. 오히려 부와 기회를 가진 소수에게 더 많은 것을 가져다주는 도구가 되기도 했다는 것을 그녀는 알게 되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파도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파도의 속도에 무작정 몸을 싣는 것이 아니라, 파도의 방향을 읽고, 그 안에서 내가 설 자리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흑백 사진 속 산업혁명 시기 공장 노동자들의 모습과 현대적인 데이터 센터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이미지
흑백 사진 속 산업혁명 시기 공장 노동자들의 모습과 현대적인 데이터 센터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이미지

4. 나만의 ‘쓰임’을 발견하다

그 후, 수진 씨는 더 이상 코딩 강의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녀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 즉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새로운 기술과 연결할 방법을 고민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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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노인들을 위한 스마트 기기 사용 설명서를 디자인했습니다. 복잡한 기술 용어 대신, 따뜻한 그림과 쉬운 이야기로 채워진 그녀의 디자인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기술 전문가와 실제 사용자 사이의 ‘번역가’가 되어, 기술이 외면하기 쉬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 것입니다.

수진 씨는 여전히 코딩을 할 줄 모르고, 빅데이터를 분석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누구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녀의 ‘제자리걸음’은 결국,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신만의 길을 찾아내는 소중한 탐색의 시간이었습니다.

젊은 디자이너(수진)가 할머니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주며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젊은 디자이너\(수진\)가 할머니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주며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당신의 제자리걸음을 응원하며

혹시 지금, 거대한 변화의 물결 앞에서 길을 잃고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한가요? 괜찮습니다. 당신의 그 걸음은 멈춤이 아닙니다.

그것은 흙탕물을 가라앉히고 맑은 샘물을 길어 올리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며, 주변의 소음에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중심을 잡기 위한 성찰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이 정해놓은 길이 아닌, 나다운 길을 발견하기 위한 가장 용기 있는 탐색의 시간일 것입니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마세요. 당신의 리듬에 맞춰, 당신의 결을 따라 나아가세요. 당신의 그 소중한 제자리걸음이 머지않아 세상을 향한 가장 힘찬 도약을 만들어낼 테니까요.

고요한 호숫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잔잔하게 들여다보는 한 사람의 이미지
고요한 호숫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잔잔하게 들여다보는 한 사람의 이미지

#4차 산업혁명#번아웃#자기계발#성장#쉼#성찰#인간다움#제자리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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