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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과거시험: 『한양가』로 본 꿈과 좌절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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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화는 어째서 금은화가 되었는가?

  • 전쟁터를 방불케 한 과거 시험장의 생생한 풍경
  • ‘거벽’과 ‘사수’를 중심으로 한 기업형 부정행위의 실체
  • 능력주의 붕괴가 당대 사회에 미친 영향

서곡: 몰락의 시대에 울려 퍼진 서울의 노래

1844년(헌종 10년), 한산거사(漢山居士)가 쓴 장편 가사 **『한양가(漢陽歌)』**는 19세기 한양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와 같습니다. 이 작품은 활기찬 도시의 풍경을 노래하다, 당대 가장 극적인 구경거리이자 모순이 집약된 조선시대 과거시험 현장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한양가』는 과거를 미화하거나 비판하기보다, 그 아수라장을 있는 그대로 그려냅니다. 이 글은 『한양가』의 시선을 따라, 실력의 겨룸이 아닌 부와 권력의 대리전으로 변질된 과거의 실상과 그 속에서 피어난 기상천외한 부정행위, 그리고 이를 막으려 했던 국가의 처절한 사투를 재구성합니다.

1부: 전쟁터로 향하는 출정식, 과장으로 가는 길

『한양가』가 묘사하는 과거 시험장의 첫 풍경은 학문을 논하는 선비의 행렬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_전쟁터로 향하는 군대의 출정식_에 가까웠죠.

“집춘문(集春門) 월근문(月覲門)과 통화문(通化門) 홍화문(弘化門)에 / 부문(赴門)을 하는구나 건장(健壯)한 선접군(先接軍)이 / 자른 도포(道袍) 젖혀 매고 우산(雨傘)에 공석(空石) 쓰고 / 말뚝이며 말장이며 대로 만든 등(燈)을 들고 각색(各色) 글자 표(標)를 하여 등을 보고 찾아가네”

수만 명이 몰린 과거 시험장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선접꾼들의 몸싸움으로 아수라장이 되곤 했다.
수만 명이 몰린 과거 시험장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선접꾼들의 몸싸움으로 아수라장이 되곤 했다.

노래는 새벽의 어둠을 뚫고 궁궐 문으로 쇄도하는 ‘건장한 선접군’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이들은 응시생이 아니라 돈을 받고 시험장의 명당자리를 차지하는 고용된 자리잡이꾼이었습니다. 손에는 말뚝과 등불을 들고, 등불의 각기 다른 글자는 소속된 ‘팀’을 나타내는 표식이었습니다.

이 한 구절만으로도 조선 후기 과거 시험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시험의 성패를 가르는 첫 관문은 글재주가 아닌, 시관(試官, 채점관)의 눈에 잘 띄는 자리를 차지하는 물리적인 힘이었습니다. 수만에서 십만 명의 응시자가 몰리면, 채점관들은 관행적으로 가장 먼저 제출된 답안지 수백 장 중에서만 합격자를 가려냈기 때문입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몸싸움은 필연적이었습니다.

2부: 우산 아래 펼쳐진 ‘기업형 부정행위’

선접꾼이 피땀으로 쟁취한 자리에는 잘 조직된 ‘본진’이 들어섭니다. 혹시 여러분은 조선시대의 부정행위가 옷소매에 예상 답안을 숨기는 수준이라고 생각하셨나요? 『한양가』는 그것을 뛰어넘는, 마치 현대의 TF팀처럼 움직이는 조직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현제판(懸題板) 밑 설포장(雪圃場)에 말뚝 박고 우산 치고 / 휘장(揮帳) 치고 등을 꽂고 수종꾼이 늘어서서 / 접(接)마다 지키면서 엄포(嚴褒)가 사나울사 / 각각 제 접을 찾아가서 책행담(冊行擔) 열어놓고 / 해제(解題)를 생각하여 풍우(風雨)같이 지어내니 / 글하는 거벽(巨擘)들은 구구(句句)이 읊어내고 / 글씨 쓰는 사수(寫手)들은 시각(時刻)을 못 머문다”

우산과 휘장 아래, 분업화된 부정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산과 휘장 아래, 분업화된 부정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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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가 내걸리자, 거대한 우산과 휘장 아래 하나의 ‘부정행위 기지’가 세워집니다. 이곳에서는 완벽한 분업 체계가 작동했습니다.

  • 거벽(巨擘), 글 짓는 두뇌: 뛰어난 학식을 갖췄으나 가난한 양반들로, 돈을 받고 즉석에서 명문 답안을 창작하는 **‘대리 작가’**였습니다. 전설적 거벽 유광억은 의뢰인이 내는 돈에 따라 장원급, 합격권 답안을 ‘맞춤 제작’했다고 하니, 과거 시험이 재능을 사고파는 시장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 사수(寫手), 글씨 쓰는 손: 거벽이 지은 글을 시관의 눈을 사로잡을 명필로 옮겨 적는 **‘대리 필경사’**였습니다.
  • 선접꾼과 수종꾼, 지키는 주먹: 이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자리를 지키고 외부 위협을 막는 **‘경호원’**이었습니다.

이처럼 ‘접(接)‘이라 불리는 팀은 **자리 확보(선접꾼) → 내용 창작(거벽) → 서체 작성(사수)**으로 이어지는 완벽한 분업 체계를 갖춘 기업형 범죄 조직이었습니다. 처음 이 기록을 접했을 때, 저는 단순히 커닝 수준을 넘어선, 하나의 거대한 ‘부정입학 산업’이 조선 후기에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3부: “어사화냐, 금은화냐?” 국가의 무뎌진 칼날

국가가 이런 난장판을 수수방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법전에는 부정행위에 대한 엄격한 처벌 규정이 있었습니다.

죄목설명처벌 규정 (『경국대전』 등)
차술(借述) / 대술(代述)거벽이나 사수를 고용하는 대리 시험 행위곤장 100대, 3년의 징역, 영구 응시 자격 박탈
협서(挾書)커닝 페이퍼를 반입하는 행위2회 시험 응시 자격 정지 (6년간)
암표(暗標)시험관과 짜고 답안지에 비밀 표식을 하는 행위유배 등 중형
과장소란(科場騷亂)시험장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현장 체포 및 처벌, 응시 자격 박탈

대리 시험을 가장 무거운 범죄로 다스렸지만, 법의 칼날은 부패한 현실 앞에서 무뎌졌습니다.

급기야 도성에는 **“어사화(御賜花)냐, 금은화(金銀花)냐?”**라는 동요가 울려 퍼졌습니다. 임금이 내리는 영예의 꽃 ‘어사화’가, 실은 돈(金銀)으로 산 꽃이 아니냐는 조롱이었죠. 이는 『한양가』 시대보다 앞선 숙종 대에 이미 시험관과 응시자가 답안을 짜고 은을 주고받는 대규모 비리가 적발될 정도로 부패의 역사가 깊었음을 보여줍니다.

급제자에게 임금이 하사하는 어사화. 그 영예의 가치가 돈으로 매겨지기 시작했다.
급제자에게 임금이 하사하는 어사화. 그 영예의 가치가 돈으로 매겨지기 시작했다.

부정행위가 너무 광범위해지자, 국가는 시험 전체를 무효로 하는 **파방(罷榜)**이라는 극약 처방까지 내렸습니다. 이는 죄 없는 수많은 응시생까지 피해를 보는 조치로, 국가의 통제력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결론

『한양가』가 노래한 19세기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세도정치 아래 국가의 기둥인 능력주의가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현장이었습니다. 관직이 돈과 연줄로 거래되는 현실에서 과거의 공정성을 지키려는 노력은 공허한 외침이 되었습니다.

  • 핵심 요약

    1. 전쟁터가 된 시험장: 19세기 과거 시험은 실력 경쟁이 아닌,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물리적 다툼으로 시작되었습니다.
    2. 산업화된 부정행위: ‘선접꾼(경호)’, ‘거벽(내용)’, ‘사수(필체)‘로 이어진 분업화된 부정행위는 하나의 거대한 산업을 형성했습니다.
    3. 무너진 능력주의: 과거 제도의 붕괴는 실력 있는 인재의 좌절과 부유하고 무능한 자의 득세를 낳으며 조선 사회의 몰락을 가속했습니다.

결국 『한양가』는 번화한 도읍의 찬가인 동시에, 그 속에서 썩어 문드러지던 한 왕조의 만가(輓歌)였습니다. 그곳에서 더 이상 ‘어사화’는 피어날 수 없었고, 오직 ‘금은화’만이 욕망의 이름으로 만발할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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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또 다른 사회상이 궁금하다면 다음 글을 참고해 보세요.
관련 글: 조선 후기, 보부상들은 어떻게 시장 경제를 이끌었나

참고자료
#조선시대과거시험#한양가#과거부정행위#거벽#사수#조선시대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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