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을날의 총성, 분열된 나라
여러분,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 보세요. 2025년 9월 10일, 유타 밸리 대학교의 캠퍼스는 따스한 가을 햇살 아래 평화로웠습니다. 바로 그때, 모든 것을 뒤흔든 한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죠. 그 총알은 단순히 한 사람의 심장을 꿰뚫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두 동강 나 있던 아메리카 합중국이라는 나라의 영혼을 향해 발사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총에 맞은 사람은 찰리 커크, 도널드 트럼프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이자, 보수 진영의 가장 뜨거운 논쟁을 몰고 다니던 젊은 목소리였습니다. 그의 죽음은 끓어오르던 분노와 증오의 언어가 어떻게 실제 총탄이 되어 돌아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끔찍한 비극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이 단순히 의견이 다른 상태를 넘어, 어쩌면 다시는 하나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사실을 가장 잔인하게 드러냈습니다. 사람들은 이 비극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함께 슬퍼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그의 죽음마저도 양쪽 진영의 무기가 되어, 서로를 향한 미움의 불길에 기름을 붓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한 사람의 죽음이 어떻게 한 나라가 막대한 영향을 일으키는지, 그 안타까운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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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그는 어떻게 순교자가 되었나
1. 찰리 커크, 그는 누구였을까요?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찰리 커크라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서른한 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순한 보수 평론가가 아니었어요. 트럼프 시대가 만들어 낸 새로운 보수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죠.
겨우 열여덟 살에 ‘터닝 포인트 USA’라는 단체를 만든 그는, 대학 캠퍼스를 ‘문화 전쟁’의 가장 중요한 싸움터로 보았습니다. 그의 방식은 간단하고도 효과적이었습니다. 진보적인 학생이나 교수들과 일부러 부딪히고, 그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온라인에 퍼뜨리는 것이었죠. “미국을 위대하게(MAGA)” 모자를 쓴 젊은이들이 캠퍼스에서 외톨이가 되지 않도록, 그들의 편이 되어 목소리를 내주었습니다. 그의 팟캐스트는 하루에 50만 번 이상 다운로드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죠.
그의 말은 언제나 날이 서 있었습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의 희생자를 비난하고, 이민자들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보였으며, 2020년 대선이 부정선거였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열심히 퍼뜨렸습니다. 그는 마치 이렇게 외치는 것 같았어요. “우리의 미국이 진보주의자들에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제 싸워서 되찾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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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삶이 맞이한 마지막 순간은 너무나도 아이러니했습니다. 그는 평소 총기 소유 권리를 강력하게 옹호하며 “총기 사고로 인한 약간의 희생은 자유를 위해 치를 만한 대가"라고 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총기 폭력의 위험성에 대해 토론하던 중에 저격수의 총에 맞아 쓰러지고 만 것입니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범죄를 넘어, 총기 문제로 끝없이 고통받는 미국의 모든 모순을 담고 있는 한 편의 비극적인 단막극처럼 보였습니다.
2. 트럼프 대통령의 즉각적인 반은: ‘순교자’
찰리 커크의 비보가 전해지자마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그는 경찰의 수사 발표나 증거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즉시 선언했죠. 찰리 커크는 **“진실과 자유를 위한 순교자”**라고 말입니다.
‘순교자’라는 단어는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 하나로, 이 사건은 단순한 정치적 암살을 넘어 ‘선과 악의 영적 전쟁’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순교자에게는 흠이 있을 수 없고, 그의 죽음은 신성한 것이 됩니다. 이제 찰리 커크의 과거 발언을 비판하는 것은 신성모독이 되었고, 그의 죽음은 ‘급진 좌파’라는 악마를 응징해야 할 가장 확실한 이유가 되어버렸습니다.
트럼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관공서에 조기를 달도록 명령하고, 찰리 커크에게 미국 시민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 자유 훈장’을 주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찰리를 공격한 괴물은 우리 모두를 공격한 것"이라는 그의 말은 지지자들의 슬픔과 분노를 하나로 묶어, 다음 싸움을 위한 강력한 에너지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슬픔에 빠진 나라를 위로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전사들을 이끌고 다음 전투를 준비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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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같은 하늘 아래, 너무나 다른 두 개의 현실
1. 바이든의 호소: 허공에 맴도는 외침
트럼프가 ‘순교’라는 강력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동안,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을 포함한 민주당 지도자들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바이든은 “이런 폭력은 우리 사회에 설 자리가 없습니다"라며 모두에게 침착함과 단합을 호소했습니다. 다른 민주당 인사들도 비슷한 메시지를 내며 초당적인 애도를 표했죠.
이것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열을 막고 모두를 아우르려는 전통적인 지도자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전쟁을 선포한 트럼프의 감정적인 이야기 앞에서, 이런 이성적인 호소는 힘을 잃고 공허하게 들렸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민주당의 애도는 가식으로 보였고, 폭력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자신들의 책임을 피하려는 변명처럼 들렸습니다.
이 깊은 골을 가장 잘 보여준 장면은 국회에서 일어났습니다. 공화당 의원들이 찰리 커크를 위해 잠시 묵념하자고 했을 때,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그의 과거 발언을 문제 삼으며 참여를 거부했습니다. 곧이어 회의장은 고성과 비난이 오가는 싸움터로 변했죠. 나라 전체의 비극 앞에서도 잠시 멈출 수 없다는 것, 함께 슬퍼할 수조차 없다는 이 현실은 미국의 극단적인 분열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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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디지털 시대의 비극, 끝나지 않는 서사 전쟁
1. 모두가 목격자가 된 시대
과거 케네디 대통령이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했을 때, 사람들은 월터 크롱카이트와 같은 신뢰받는 앵커의 목소리를 통해 소식을 듣고 함께 슬픔을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찰리 커크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끔찍한 영상은 여러 각도에서 찍혀, 순식간에 모든 소셜 미디어로 퍼져나갔습니다. 언론사들이 윤리 규정에 따라 영상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동안, 온라인 세상에서는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폭력의 순간이 수백만 명의 스마트폰 화면에 그대로 노출되었습니다.
이 “디지털 시대의 재프루더 필름(케네디 암살 영상)“은 끔찍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첫째, 사람들은 뉴스를 듣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이성적인 생각 대신 극단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둘째,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약속이 무너졌습니다. 모든 것이 자극적인 콘텐츠로 소비될 뿐이었죠.
2. 소셜 미디어, 또 다른 전쟁터
영상이 퍼져나간 온라인 공간은 곧바로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 오른쪽에서는 “이것은 전쟁이다!“라는 외침과 함께 복수를 다짐하는 글들이 넘쳐났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용의자 정보와 음모론이 빛의 속도로 퍼져나갔죠.
- 왼쪽에서는 그의 죽음을 조롱하거나 “뿌린 대로 거둔 것"이라며 비웃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비록 소수였지만, 이런 반응은 곧바로 캡처되어 ‘좌파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증거로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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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폭풍의 시작일까, 열병의 끝일까?
찰리 커크의 암살은 미국 민주주의가 심각한 기로에 서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미국 앞에는 두 갈래 길이 놓여 있습니다.
- 첫 번째 길은 이 비극을 계기로 서로를 향한 날 선 말을 거두고, 우리 편이 저지른 폭력까지도 단호하게 비판하며, 어떻게든 다시 함께 살아갈 방법을 고통스럽게 찾아 나서는 길입니다.
- 두 번째 길은 이 비극을 이용하고, 상대를 더 미워하고 악마로 만들며, 더 큰 폭력을 정당화하는 길입니다.
사건 직후의 상황들은 미국이 두 번째 길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폭력의 장면을 목격하면서도, 그 아픔을 함께 나누고 이해할 공통의 언어는 완전히 잃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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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커크를 쏜 총알은 한 사람의 목숨만 앗아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성과 타협, 그리고 함께 공유하는 현실이라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둥을 관통했습니다. 이제 남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끔찍한 사건이 열병의 마지막 고비가 되어 치유의 길로 나아갈까요? 아니면 걷잡을 수 없는 더 큰 폭풍의 시작이 될까요?
지금으로서는 그 대답을 쉽게 낙관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두렵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