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법에서 현재의 정의를 묻다.
- 조선 시대의 엄격한 성범죄 처벌 기준이었던 강상죄의 개념
- 현대 사법 시스템의 높은 집행유예 비율과 2차 가해 문제점
- 과거와 현재의 비교를 통한 구체적인 사법 개혁 방안
조선 시대 저잣거리에 내걸린 잘린 머리는 국가가 강제하는 도덕의 상징이었습니다. 오늘날 성범죄 처벌이 집행유예로 끝났다는 뉴스는 그 야만적 이미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한쪽은 국가 폭력의 극단, 다른 한쪽은 국민 법감정과의 괴리입니다. 이 글은 잔혹해 보이는 과거의 법을 통해 현대 사법 시스템의 문제를 해부하고, 더 나은 정의를 위한 길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제1부: 용서 없는 법: 조선시대의 성범죄 처벌
질서와 위계, 그리고 강상죄
조선은 고유 법전인 경국대전과 함께 명나라의 형법 대명률을 사용했습니다. 이 법전들은 단순한 규칙을 넘어, 엄격한 위계질서를 유지하려는 신유학적 세계관의 표현이었습니다.
핵심은 **강상죄(綱常罪)**라는 개념입니다. 이는 삼강오륜이라는 사회 근간을 흔드는 범죄를 의미하며, 특정 성범죄(특히 신분 질서를 어긴 경우)는 단순 개인에 대한 침해를 넘어 국가와 자연 질서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노비가 주인의 아내를 겁탈하는 행위가 대표적입니다.
이는 _개인 보호보다 위계질서 보호가 우선_이라는 원칙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처벌의 강도는 범죄가 기존 질서에 얼마나 도전했는지에 정비례했으며, 법의 최우선 기능은 개인이 아닌 계급 구조를 수호하는 것이었습니다.
죄의 연대기: 실록 속 사례 연구
실제 사례는 당시의 법 감정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사례 1: 노비 실구지 (1404년) 양반가 여식을 집단 겁탈한 노비 실구지와 공범들은 ‘하늘의 이치를 거스른 강상죄’로 능지처참에 처해졌습니다. 이는 단순 사형이 아닌,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겠다는 국가 의지의 표명이었습니다.
사례 2: 아동 성폭행 (태조 & 세종 시대) 11세, 8세 여아를 강간한 범인들은 신속하고 단호하게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특히 세종은 “강간은 사면령을 내릴 때도 용서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며, 가장 약한 존재를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공감대가 작동했음을 보여줍니다.
사례 3: 정절의 멍에와 열녀문 여성에 대한 ‘보호’는 양날의 검이었습니다. 강간을 당해도 스스로 증명해야 했고, 증명하더라도 가문의 명예는 더럽혀졌습니다. 저항하다 죽으면 국가가 열녀문을 세워주었는데, 이는 여성의 비극을 가부장적 미덕의 상징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처벌을 피하고자 합의된 관계임에도 “힘이 약해 거부 못했다"고 거짓 진술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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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4: 부패한 관리 (1472년) 뇌물을 받고 강간 사건을 은폐한 상주 목사와 판관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장형 100대와 90대라는 중형을 받았습니다. 이는 법 집행의 태만 자체가 국가에 대한 심각한 범죄로 간주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제2부: 현대의 딜레마: 관용, 괴리, 그리고 피해자의 시련
법의 전환: 사회 질서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현대 대한민국 법(형법
, 성폭력처벌법
, 아청법
등)은 가부장적 ‘정절’이 아닌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를 최우선 목표로 삼습니다. 이는 조선 시대와 근본적으로 다른 철학적 기반 위에 서 있습니다.
저는 이 철학적 대전환이 인류의 진보임은 분명하지만, 역설적으로 ‘피해자의 고통’이라는 본질을 때로는 절차적 정당성이나 교화 가능성 뒤로 밀어내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양형의 간극과 ‘진지한 반성’
문제는 법전의 엄격함과 실제 판결 사이의 간극입니다. 성범죄 1심 재판의 집행유예 비율(35.7%)은 실형(29.3%)보다 높습니다. 특히 아동·청소년 대상 강간죄조차 집행유예 비율이 40%를 넘나들었던 통계는 충격적입니다.
주된 감경 사유인 **‘진지한 반성’**은 반성문 제출이나 공탁금 납부 등으로 쉽게 인정되어, 가해자의 경제적 능력이 감형에 영향을 미치는 사실상의 불평등을 낳기도 합니다. 계급을 철폐한 시스템이 경제력이라는 또 다른 위계를 재생산하는 셈입니다.
피해자의 두 번째 재판: 2차 가해
2차 가해는 피해자가 정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겪는 추가적인 고통입니다. 무신경한 수사 과정, 법정에서의 인격 모독, 온라인상의 악성 댓글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는 자신의 ‘정절’을 증명해야 했던 조선 시대 여성의 멍에와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오늘날 피해자 역시 술에 취하지 않았고, ‘충분히’ 저항했음을 증명하라는 사회적 압박에 시달립니다. 법의 기준은 ‘정절’에서 ‘동의’로 바뀌었지만, 피해자가 스스로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해야 하는 이 아이러니,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비교: 조선과 현대의 성범죄 처벌
두 시대의 접근 방식은 명확한 차이를 보이며, 이는 현대 사법 시스템의 실패 지점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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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개념 | 조선 왕조 | 현대 대한민국 |
---|---|---|
법의 목표 | 강상(綱常), 즉 유교적 사회/도덕 질서와 위계 유지 |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및 인권 보호 |
아동 강간 | 교수형 또는 참형. 신속하고 절대적인 처벌 | 법정형은 무기 또는 10년 이상 징역이나, 실제로는 집행유예가 문제됨 |
일반 강간 | 교수형 | 법정형은 3년 이상 유기징역이나, 높은 집행유예 비율과 감경 사유가 문제됨 |
불평등 | 명시적/법제화된 신분 기반 불평등 | 암묵적/경제적 불평등 (합의 및 변호 능력 차이) |
피해자 부담 | ‘정절’ 증명의 부담. 가부장적 명예와 결부됨 | ‘신뢰성’ 증명의 부담. 2차 가해와 인격 공격에 노출됨 |
체크리스트: 정의의 저울을 바로잡기 위한 제언
과거로 회귀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원칙을 바로 세우기 위해 다음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 양형 기준 개혁: 폭력적 성범죄의 집행유예 기준을 대폭 강화해야 합니다. ‘진지한 반성’은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 참여 등 실질적 노력으로 입증되도록 재정의해야 합니다.
- 피해자 권리 강화: 피해자의 정보 접근권을 법제화하고, 재판 중 인격 공격을 제한하는 엄격한 증거 규칙을 도입해 2차 가해를 방지해야 합니다.
- 사법부 공감 교육: 법관과 법 집행 인력을 대상으로 피해자 중심 관점, 트라우마 이해 등 지속적인 교육을 의무화하여 국민 법감정과의 괴리를 줄여야 합니다.
결론
과거의 법과 현재의 정의를 비교하며 우리는 세 가지 핵심을 발견했습니다.
- 조선 시대는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성범죄, 특히 강상죄를 무관용 원칙으로 다스렸습니다.
- 현대 사법 시스템은 개인의 권리 보호를 목표로 하지만, 높은 집행유예 비율과 2차 가해 문제로 그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진정한 정의는 과거의 잔혹함이 아닌, 성범죄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피해자를 온전히 보호하려는 현재의 원칙을 일관되게 실천할 때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이 글이 우리 사회의 성범죄 처벌 기준과 사법 시스템의 역할을 다시 한번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참고자료
- 강상죄 - 나무위키 링크
- 강상죄(綱常罪) - sillokwiki 링크
- [한컷탐험대] 무려 ‘반역죄’에 버금가는 공포? <역적> 속 ‘강상죄’란? - iMBC 연예 링크
- 범간(犯奸) - sillokwiki 링크
- 간통·성폭행에 대한 처벌 - 우리역사넷 링크
- 시공 가리지 않는 성범죄…조선시대에는? - SBS 뉴스 링크
- [숨은 역사 2cm] 조선 시대 아동 성폭행범은 목매달거나 베어 죽였다 - 연합뉴스 링크
- 강간은 사면령을 내릴 때도 용서하지 않았다 - 오마이뉴스 링크
- 성범죄자의 ‘진지한 반성’ 누가 확인한단 말인가 - 시사IN 링크
-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 40% 이상이 집행유예 - 정책브리핑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