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 인문

타인의 상처: 그 사람의 '까칠함' 속에 숨겨진 이야기

phoue

7 min read --

우리 모두가 지닌 보이지 않는 흉터에 대하여

섣부른 판단을 멈추게 하는 질문: 타인의 상처

사소한 실수에 버럭 화를 내는 직장 동료, 별일 아닌데도 서비스직 직원에게 날카롭게 구는 손님. 우리는 이런 장면을 마주할 때 타인의 상처를 헤아리기보다 너무나 쉽게 상대를 판단하곤 합니다. ‘성격이 왜 저래?’, ‘참을성이 없네.’ 하지만 잠시 멈춰서 이런 질문을 던져본 적 있으신가요?

“그 사람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무엇을 경험했기에 저런 견해를 갖게 됐을까? 만일 내가 그와 같은 경험을 했다면, 나도 저렇게 생각하게 될까?”

이 두 가지 질문은 우리를 판단의 늪에서 건져내 공감의 길로 안내하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들은 우리 삶의 한 가지 중요한 진실, 즉 **“상처는 아물지만 흉터는 남는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죠. 사건이라는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기억, 그로 인해 바뀐 생각, 세상을 대하는 새로운 감각이라는 ‘흉터’는 우리 몸과 마음에 영원히 남아 삶의 방식을 바꿉니다.

이 진실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김홍신 작가의 시 ‘겪어보면 안다’입니다. “굶어보면 안다, 밥이 하늘인 걸. 아파보면 안다, 건강이 엄청 큰 재산인 걸. 잃은 뒤에 안다, 그것이 참 소중한 걸.”

추상적인 지식은 값싸지만, 경험적 지식은 고통과 상실을 통해 얻어집니다. 이 시는 왜 우리가 타인의 ‘흉터’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의 관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지를 완벽하게 설명합니다. 경험이야말로 가치를 가르치는 유일한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과 상실의 경험은 타인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자산과 같습니다. 헬렌 켈러가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이라는 글을 통해 시각을 갖지 못한 자신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것의 소중함을 상상했듯, 우리는 타인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알’ 수는 없습니다. 단지 ‘안다’고 생각할 뿐이죠.

결국 우리 각자는 고유한 ‘흉터’를 통해 얻은, 양도 불가능한 지혜의 포트폴리오를 지니고 살아가는 셈입니다. 누군가를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그 사람이 고통으로 얻은 그만의 귀한 포트폴리오를 무시하는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상대의 ‘까칠함’이나 ‘예민함’을 성격적 결함이 아닌, 그가 가진 고유한 경험 데이터에 기반한 합리적 반응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경험 부족의 흉터: “그게 왜 그렇게 어려워?”

우리가 저지르는 가장 흔한 판단의 오류는, 나에게는 쉬운 일이 남에게는 왜 그토록 어려운지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그것은 상대방이 가진 ‘흉터 조직’이 아주 간단한 과제조차 거대한 산처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공황의 흉터 – 물에 대한 공포

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수영장 물을 무서워하는 성인은 이해하기 힘든 존재일 수 있습니다. “그냥 몸에 힘 빼고 누우면 떠!“라는 조언은,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기억의 흉터를 지닌 사람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물 공포증을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 흉터가 얼마나 깊고 강력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공황에 빠지는 느낌, 그리고 이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아주 기초적인 호흡법부터 차근차근 배우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투쟁입니다.

Advertisement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물놀이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과거의 상처를 떠올리게 하는 공포의 대상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물놀이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과거의 상처를 떠올리게 하는 공포의 대상일 수 있습니다.

물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는 과정은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 자신과의 화해에 가깝습니다.

이 과정은 단순히 수영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물과 화해하고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여정과도 같습니다. 이 흉터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의 시선은 “왜 저렇게 겁이 많아?“에서 “저 두려움을 안고 깊은 물 앞에 설 때마다 어떤 기분일까?“로 바뀌게 됩니다.

좌절의 흉터 – 침묵하는 악기

멋진 연주를 보며 “나도 한번 해볼까?” 생각하지만, 막상 악기를 잡아보면 머릿속 멜로디와 손가락이 만들어내는 소음 사이의 간극에 좌절합니다. 이것이 바로 겸손이라는 흉터가 새겨지는 순간입니다.

악기 독학은 ‘무엇이 틀렸는지’ 스스로 진단하기 어렵고, 지루한 기초 연습을 건너뛰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넘어간 기초의 부재는 ‘업보’처럼 반드시 나중에 발목을 잡습니다.

아름다운 연주 뒤에는 수많은 시간의 좌절과 반복, 보이지 않는 흉터가 숨어있습니다.
아름다운 연주 뒤에는 수많은 시간의 좌절과 반복, 보이지 않는 흉터가 숨어있습니다.

이 경험이 남기는 흉터는 ‘숙련’에 대한 깊은 경외심입니다. 악기를 배우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해 본 사람은 다시는 전문 연주가를 보며 “재능이네"라는 한마디로 쉽게 결론 내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 유려한 연주 뒤에 숨겨진 수천 시간의 좌절과 반복, 즉 보이지 않는 흉터 조직을 이해하게 됩니다.

비틀거림의 흉터 – 겸손한 자전거

성인이 되어 자전거를 배우는 것은 두려움과 창피함을 극복해야 하는 고된 훈련입니다. “페달을 힘껏 밟으면 돼!“라는 조언은, 넘어질 것 같은 공포와 남들의 시선에 대한 부끄러움이 온몸을 지배하는 초심자에게는 들리지 않습니다.

비틀거림과 넘어짐, 까진 무릎은 작은 흉터들이지만, 이것들은 자신감이란 불안정함을 정복한 경험 위에 세워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가르쳐주죠. 이처럼 신체 기술을 배우는 과정은 인내심, 겸손함, 그리고 좋은 길잡이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숨겨진 교육과정’입니다.


부서진 믿음의 흉터: “그게 아니었구나”

이제 신체적 기술을 넘어, 지적이고 감정적인 믿음의 세계로 나아가 봅시다. 여기서의 ‘흉터’는 우리가 가졌던 편견과 선입견이 산산조각 나면서 남는 흔적입니다.

Advertisement

현실의 흉터 – 엽서 뒤편의 진실

우리는 반짝이는 사진과 낭만적인 환상을 품고 여행을 떠납니다. 하지만 여행은 결코 하이라이트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죠. 그 속에는 불편함, 고됨, 그리고 문화 충격이 함께합니다.

엽서 속 풍경과 실제 여행의 경험 사이에는 종종 큰 간극이 존재합니다.
엽서 속 풍경과 실제 여행의 경험 사이에는 종종 큰 간극이 존재합니다.

동남아 여행에서 아름다운 사원 뒤에 숨은 교통체증을 경험하고, 유럽 여행에서 자유로움과 동시에 유료 화장실 같은 문화 충격에 당황하기도 합니다. 이때 ‘상처’는 기대와 현실의 충돌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남는 ‘흉터’는 단순한 서사를 향한 영구적인 회의감입니다. 진짜 여행을 경험한 사람은 더 이상 세상을 흑백으로 보지 않습니다.

감정노동의 흉터 – 결코 쉽지 않은 ‘쉬운 일’

“하루 종일 전화나 받는 일이 뭐가 그렇게 힘들어?” 서비스직에 대한 이런 무심한 생각 뒤에는 엄청난 감정적 소모가 숨어 있습니다. 고객센터 상담원들은 회사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립니다.

미소 띤 얼굴 뒤에는 수많은 감정적 소모가 숨겨져 있을 수 있습니다.
미소 띤 얼굴 뒤에는 수많은 감정적 소모가 숨겨져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직업을 경험해 본 사람은 서비스직 노동자를 향한 영구적인 공감 능력을 갖게 됩니다. 그들은 직원의 강요된 미소가 진심이 아닌, 끊임없는 감정적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전문적인 방패라는 것을 압니다. 이러한 지속적인 감정적 압박은 현대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번아웃 증후군으로 이어지기 쉬우며, 이는 개인의 정신 건강에 깊은 흉터를 남깁니다.

유쾌한 흉터 – JPEG 파일의 배신

온라인 쇼핑 실패담은 우리 모두에게 익숙합니다. 화면에서는 분명 민트색이었던 모자가 받아보니 ‘녹조라떼’ 색일 때의 그 황당함. 이 유쾌한 실패담 역시 작지만 중요한 흉터를 남깁니다. 바로 **‘건강한 회의주의’**입니다. 이 경험은 우리에게 겉모습만 믿지 말고, 상세 치수나 구매 후기 같은 추가 정보를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화면 속 이미지와 실제 배송된 상품의 차이는 때로 유쾌한 ‘흉터’를 남깁니다.
화면 속 이미지와 실제 배송된 상품의 차이는 때로 유쾌한 '흉터'를 남깁니다.

한번 흉터가 생기면 우리의 관점은 영구적으로 바뀝니다. 누군가의 ‘냉소적’이거나 ‘비판적인’ 태도는 부정적인 성격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흉터가 남긴 학습된 방어기제일 수 있습니다.


심장을 다시 빚는 흉터들

이제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넘어 우리 자신을 바꾸는 가장 깊은 흉터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Advertisement

영원한 메아리 – 첫사랑의 유령

사람들은 첫사랑을 절대 잊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아름다운 추억이든 뼈아픈 상처든, 그 경험은 우리 마음에 영원한 메아리를 남기고 미래의 관계를 빚어내는 ‘흉터’가 됩니다.

첫사랑의 흉터는 하나의 **‘기준점’**이 됩니다. 친밀감, 취약함, 그리고 실연의 고통에 대한 우리의 기대치를 설정하죠. 우리가 사랑에 대해 경계심이 많거나 냉소적인 사람을 만났을 때, “그의 첫사랑은 어땠을까?“라고 질문하는 것은 그를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짐 – 아이의 눈으로 다시 배우는 세상

부모가 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혁명적인 경험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자유, 잠, 그리고 정체성이라는 과거의 ‘나’에게 가해지는 깊은 상처입니다. 하지만 그 상처가 남긴 흉터는 사랑과 인내를 위한 새롭고 무한한 공간입니다.

육아는 세상을 다시 배우게 하는, 한 사람을 재정의하는 궁극적인 ‘흉터’입니다.
육아는 세상을 다시 배우게 하는, 한 사람을 재정의하는 궁극적인 '흉터'입니다.

육아는 부모가 오히려 아이에게서 배우는 여정입니다. 아이를 키우며 우리는 “욱하는 것"이 훈육의 도구가 아니라 자기 통제의 실패임을 깨닫고, 아이가 내 뜻대로 만들어야 할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이해받아야 할 온전한 인격체임을 배웁니다.

이것이야말로 한 사람을 재정의하는 궁극적인 흉터일 것입니다. 여기서 ‘상처’는 자기중심적이었던 개인의 죽음입니다. 그리고 남는 ‘흉터’는 ‘부모’라는 새로운 정체성이죠. 우리가 지나치게 조심스럽거나 지쳐 보이는 부모를 볼 때, 우리는 그들이 짊어진 사랑과 책임감의 무게를 상상하지 않고서는 그들의 선택을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결론

우리는 작은 상처에서부터 심장을 바꾸는 깊은 흉터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관점이 고유한 경험들의 모자이크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헬렌 켈러가 시각과 청각 없이도 세상의 본질을 ‘보았던’ 것처럼, 우리는 타인의 경험을 직접 겪지 않고도 그들의 흉터를 ‘느끼려는’ 노력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정서적 지능(EQ)**의 핵심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은 무엇을 경험했을까?“라고 묻는 연습은 마음으로 보는 새로운 시력을 개발하려는 시도입니다.

  • 핵심 요점 1: 모든 사람의 ‘까칠함’이나 독특한 관점 뒤에는 보이지 않는 경험의 흉터가 있습니다.
  • 핵심 요점 2: 신체적 기술 습득부터 감정 노동, 깊은 관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험은 우리를 영구적으로 변화시킵니다.
  • 핵심 요점 3: “그 사람은 무엇을 경험했을까?“라는 질문은 섣부른 판단을 멈추고 공감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입니다.

오늘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난다면, 잠시 멈춰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흉터를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당신의 작은 질문 하나가 관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타인의상처#공감능력#인간관계#개인적경험#섣부른판단#심리이해

Recommended for You

자율성 프리미엄: 돈으로 시간을 사는 법, 당신도 진짜 부자가 될 수 있다

자율성 프리미엄: 돈으로 시간을 사는 법, 당신도 진짜 부자가 될 수 있다

13 min read --
아마존과 구글은 어떻게 실패를 설계해 성공했는가?

아마존과 구글은 어떻게 실패를 설계해 성공했는가?

9 min read --
월급은 오르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시간 부자'가 되는 비밀

월급은 오르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시간 부자'가 되는 비밀

6 min read --

Advertisemen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