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선주의’가 다극화 시대를 연 브릭스를 겨누며 시작된 경제 전쟁의 지정학적 파장
-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브릭스(BRICS)의 부상 배경
- 주요 브릭스 국가별 관세 전쟁 사례와 그 영향
- 관세 전쟁이 탈달러화와 세계 경제에 미친 의도치 않은 결과
브릭스의 부상: 낡은 질서에 대한 도전
도널드 트럼프 시대의 관세 전쟁을 이해하려면, 그가 등장하기 이전의 세계 질서를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신흥 경제국 연합체인 브릭스(BRICS)는 이미 세계 무대의 중요한 행위자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투자 용어에서 정치 블록으로
브릭스(BRICS)는 본래 2001년 골드만삭스에서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성장 잠재력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투자 용어였습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계기로 이들 국가는 서방 중심 금융 시스템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정치적 실체로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첫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이들은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유엔(UN),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등의 거버넌스를 개혁하고 달러 중심의 기축통화 시스템에 도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2010년 남아공, 2024년 이란, UAE 등이 합류하며 브릭스는 전 세계 인구의 약 45%, 세계 GDP(PPP 기준)의 35%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 블록으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2014년 설립한 **신개발은행(NDB)**과 **위기대응기금(CRA)**은 기존 서방 중심 금융 질서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을 구축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안전한 피난처’를 향한 열망
브릭스의 부상은 미국 중심의 단극 체제에 대한 반작용이었습니다. 서방의 경제 제재에 시달리던 국가들에게 달러 중심 금융 시스템은 미국의 외교 정책을 강제하는 ‘무기’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브릭스는 미국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safe harbor)’**로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브릭스가 추진한 탈달러화(de-dollarization)는 자국의 경제 주권을 확보하려는 현실적이고 방어적인 조치였습니다.
트럼프 독트린: ‘미국 우선주의’와 관세 전쟁의 서막
“100% 관세를 부과할 것”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브릭스가 미국 달러 패권에 도전할 경우 위와 같이 위협하며, 브릭스를 “빠르게 사라져가는 작은 그룹"이라 폄하했습니다. 이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철학에 기반한 선전포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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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전쟁의 설계자, 피터 나바로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무역 정책 뒤에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이 있었습니다. 그의 논리는 간단명료했습니다.
- 중국은 적이다: 중국은 불공정 수단으로 미국의 산업 기반을 파괴하는 ‘경제 침략자’다.
- 무역 적자는 국부 유출이다: 무역 적자는 GDP에서 빠져나가는 순손실이다.
- 관세는 해롭지 않다: 관세는 외국 수출업자를 압박하는 효과적인 협상 도구다.
- 안보와 경제는 하나다: 경제적 자립이 곧 국가 안보다.
개인적으로 저는 나바로의 논리를 ‘국가 대차대조표’를 가계부처럼 단순화하는 접근법으로 봅니다.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과 자본 흐름을 무시하고, ‘수출은 수입, 수입은 지출’이라는 직관적이지만 위험한 논리로 유권자들에게 어필한 셈이죠. 이러한 단순함이 바로 그의 주장이 가진 정치적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관세의 숨겨진 목적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경제 전략이라기보다는 포퓰리즘 정치의 핵심 도구였습니다. 관세 부과는 ‘외부의 적’에 맞서 미국인을 보호한다는 강력한 정치적 서사를 만들었고, 이는 ‘러스트 벨트’와 같은 핵심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즉, 관세의 진짜 목표는 무역수지 개선이 아니라 정치적 동력 확보였습니다.
사례 분석: 트럼프의 관세는 브릭스를 어떻게 겨눴나?
트럼프 행정부의 공세는 각 브릭스 국가의 약점을 정밀하게 겨냥한 경제 전쟁으로 나타났습니다.
십자포화 속의 용: 중국과의 전면전
전쟁의 가장 큰 목표는 단연 중국이었습니다. 명분은 무역 적자 해소였지만, 본질은 중국의 첨단산업 육성책인 **‘중국제조 2025’**를 겨냥한 기술 패권 전쟁이었습니다.
2018년 시작된 미중 무역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수출통제 명단(Entity List)‘이었습니다. 2019년, 미국은 중국의 통신 거인 **화웨이(Huawei)**를 이 명단에 올려 미국 기술과 부품 공급을 차단했습니다. 이는 화웨이의 글로벌 공급망에 치명타를 입혔지만, 역설적으로 중국이 반도체 국산화 등 기술 자립에 총력을 기울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치적 관세: 보우소나루를 위한 브라질 압박
브라질 사례는 트럼프가 무역 정책을 얼마나 노골적으로 정치적 도구로 사용했는지를 보여줍니다. 트럼프는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에 대한 브라질 사법부의 수사를 ‘마녀사냥’으로 규정하고, 이를 중단하지 않으면 브라질산 수입품 전체에 5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주권 침해"라며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이 사건은 브라질이 미국 일변도 외교에서 벗어나 브릭스와의 연대를 강화하는 역효과를 낳았습니다.
시장 접근 압박: 인도를 길들이다
트럼프는 인도를 “관세 왕(tariff king)“이라 부르며, 인도의 보호주의 시장을 강제로 열려 했습니다. 핵심 무기는 ‘일반특혜관세제도(GSP)’ 지위 박탈이었습니다. GSP는 미국이 개발도상국에 제공하는 무관세 혜택인데, 2019년 미국은 인도가 미국 기업에 공정한 시장 접근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GSP 지위를 중단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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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치로 연간 60억 달러가 넘는 인도산 수출품이 타격을 입었고, 인도는 최대 교역 상대국과의 관계 파탄을 피하면서도 미국의 압박에 맞서야 하는 힘의 불균형을 절감해야 했습니다.
충성심 테스트: 남아공 ‘응징’
남아공에 대한 압박은 토지 개혁, 친러·친중 외교 노선 등 정치적 불만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아프리카 국가들을 지원하는 ‘아프리카 성장 기회법(AGOA)’ 혜택을 무력화하는 3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이 사건은 남아공에게 미국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게 했고, 유럽, 아시아 등 다른 시장으로 수출을 다변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눈에 보는 브릭스 국가별 관세 전쟁
국가 | 주요 조치 및 명분 | 핵심 영향 및 결과 |
---|---|---|
중국 | 불공정 무역, 기술 패권 도전을 명분으로 301조 관세 부과 및 화웨이 등 기술 기업 제재 | 공급망 혼란과 기술 자립 가속화. 미중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전략적 경쟁 구도로 전환됨 |
브라질 | 동맹(보우소나루)에 대한 정치적 박해를 명분으로 50% 전면 관세 위협 및 사법부 인사 제재 | 주권 침해에 대한 강력한 반발과 반미 감정 고조. 브릭스 내 결속 강화의 계기가 됨 |
인도 | 높은 관세 장벽과 시장 접근 제한을 이유로 일반특혜관세제도(GSP) 수혜국 지위 박탈 | 섬유·제조업 등 수출 타격. 미국과의 파트너십에 긴장이 조성되었으나 힘의 불균형 속 협상 모색 |
남아공 | 토지개혁, 반미 외교 노선을 문제 삼아 아프리카성장기회법(AGOA) 혜택을 무력화하는 30% 관세 위협 | 핵심 산업 위기와 대미 의존도에 대한 경각심 고조. 수출 시장 다변화 및 브릭스 연대 강화 필요성 대두 |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 및 서방 제재망 와해 시도를 명분으로 기존 제재 강화 및 추가 관세 위협 | 금융 시스템 고립 심화. 반서방 노선 강화 및 중국과의 밀착, 브릭스를 통한 제재 우회로 모색 |
분열된 브릭스를 하나로 묶은 역설
본래 브릭스는 내부에 이질성과 갈등 요소를 안고 있는 집단입니다. 하지만 트럼프의 무차별적인 공세는 역설적으로 이들에게 **‘외부의 적’**이라는 강력한 통일 서사를 제공했습니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압박이 없었다면 브릭스는 지금처럼 결속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어려웠을 겁니다. 이는 마치 서로 다른 성향의 학생들이 ‘엄격한 선생님’이라는 공동의 외부 요인 때문에 잠시 단결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트럼프의 정책은 브릭스 내부의 근본적인 갈등(예: 중-인도 국경 분쟁)을 덮어버리고 ‘반패권’이라는 임시 공동 목표를 부여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 셈입니다.
의도치 않은 결과: 관세 전쟁이 탈달러화를 가속하다
트럼프 정책의 가장 큰 역설은 달러 패권을 지키려던 그의 위협이 오히려 브릭스의 **탈달러화(de-dollarization)**를 가속하는 촉매제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의 위협은 미국이 자국 통화를 언제든 지정학적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졌고, 달러 의존의 위험성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 이에 브릭스 국가들은 자국 통화 결제 비중을 늘리고,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를 우회할 대안 시스템(브릭스 페이
등) 구축 논의를 본격화했습니다.
트럼프의 정책은 글로벌 기축통화의 3대 기둥인 신뢰, 안정성, 예측 가능성을 모두 흔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현 시스템은 신뢰할 수 없으니 우리만의 시스템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중국과 러시아에 가장 강력한 설득 논거를 제공한 셈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패자: 관세 전쟁의 경제적 상흔
트럼프의 관세 전쟁은 브릭스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와 다자무역체제 전체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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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충격과 다자무역체제의 훼손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등은 관세 전쟁이 관련된 모든 국가의 GDP를 감소시키는 ‘패자만 있는 게임’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실제로 미중 무역 전쟁은 양국 모두에 실질 소득 손실을 초래했습니다.
더 큰 피해자는 **세계무역기구(WTO)**로 대표되는 다자무역체제였습니다. 트럼프는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WTO 규범을 우회하고 분쟁 해결 기능을 마비시켜,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글로벌 무역 환경의 근간을 흔들었습니다.
미국 내 소비자와 기업의 부담
트럼프는 관세를 외국이 내는 세금이라고 주장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관세 비용의 거의 전부는 미국 수입업자를 거쳐 미국 소비자에게 전가되었습니다. 결국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한 관세는 평범한 미국 시민과 기업들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결론: 관세 전쟁이 남긴 유산과 미래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공세는 더 분열되고 다극화된 세계의 출현을 가속하는 역설을 낳았습니다. 관세 전쟁이 남긴 유산은 명확하며, 우리의 미래에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핵심 요약
- 미중 관계의 재정립: 트럼프의 공세는 미중 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전략적 경쟁 구도로 만들었습니다.
- 다자무역체제의 약화: WTO의 권위를 훼손하고 글로벌 무역 환경에 예측 불가능성을 심었습니다.
- 브릭스의 의도치 않은 결속: 외부의 적을 만들어주며 브릭스의 탈달러화와 대안 시스템 구축 논의에 강력한 추진력을 제공했습니다.
트럼프 2기가 현실화될 경우, 그는 모든 수입품에 10%, 중국산 제품에 60% 관세를 부과하는 등 더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무역 전쟁의 확전을 의미합니다.
이 글이 트럼프 시대의 관세 전쟁과 지정학적 변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다가올지 모를 새로운 무역 갈등이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의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참고자료
-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보고서
- 세계은행(World Bank) 무역 보고서
- 국제통화기금(IMF) 세계 경제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