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듯한 과열은 정상이다”: 시장은 원래 고장 나도록 설계되었다
- 안정과 평화가 오히려 금융 위기의 씨앗을 뿌리는 ‘산불의 역설’
- ‘민스키 모멘트’로 이어지는 금융 사이클의 예측 가능한 3단계
- 혼돈의 시장에서 생존하고 나아가 성장하는 ‘안티프래질’ 전략
평화는 어떻게 혼돈의 씨앗을 뿌리는가?
“시장이 미친듯이 과열되는 것은 고장이 났다는 의미가 아니다. 미친듯한 과열은 정상이다.” 이 문장은 시장 붕괴, 즉 민스키 모멘트가 시스템의 버그가 아닌 내장된 기능임을 암시합니다. 안정과 평화가 오히려 더 큰 불안정과 파국을 낳는다는 역설, 이것이 시장을 이해하는 첫걸음입니다.
이 역설을 가장 잘 보여주는 비유는 ‘산불의 역설(Paradox of the Forest Fire)‘입니다. 건강한 숲은 주기적인 작은 산불을 통해 바닥에 쌓인 마른 나뭇잎 같은 연료를 태워 없앱니다. 만약 인간이 모든 작은 불씨를 완벽하게 통제한다면, 당장은 평화로워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평화 속에서 수십 년간의 연료가 계속 쌓여, 언젠가 피할 수 없는 번개 한 번에 숲 전체를 집어삼키는 ‘초대형 산불’이 발생하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숲을 보호하려던 완벽한 통제가 재앙의 씨앗이 된 것입니다.
금융 시장도 똑같은 원리로 작동합니다.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Hyman Minsky)는 ‘금융 불안정성 가설(Financial Instability Hypothesis)‘을 통해 시장의 안정성이 필연적으로 불안정성을 잉태하는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민스키 모멘트: 예측 가능한 붕괴의 3단계
민스키는 시장 참여자들의 부채 상환 능력에 따라 금융 시스템의 상태를 세 단계로 나누었습니다. 이는 혼돈으로 가는 예측 가능한 여정입니다.
1. 헤지 금융 (Hedge Finance) - 평화의 시대
가장 건전하고 안정적인 단계입니다. 차입자(기업, 개인)는 자신이 벌어들이는 현금 흐름만으로 대출 원금과 이자를 모두 충분히 갚을 수 있습니다. 시장은 위기 이후의 교훈으로 조심스럽고, 리스크 관리가 철저합니다.
2. 투기적 금융 (Speculative Finance) - 낙관의 시대
평화가 길어지면 사람들은 리스크를 잊고 미래를 낙관하기 시작합니다. 이 단계의 차입자들은 현금 흐름으로 이자는 감당할 수 있지만, 원금 상환은 자산 가격 상승을 기대하며 만기를 연장(롤오버)하는 방식에 의존합니다. 숲 바닥에 마른 나뭇잎이 쌓이기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3. 폰지 금융 (Ponzi Finance) - 광기의 시대
마침내 시장은 광기에 휩싸입니다. 이 단계의 차입자들은 현금 흐름으로 원금은커녕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합니다. 유일한 생존 전략은 자산 가격이 ‘영원히’, ‘더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뿐입니다. 새로운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의 이자를 지급하는 폰지 사기(Ponzi Scheme)와 구조가 같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민스키 모멘트(Minsky Moment)**가 찾아옵니다. 금리 인상이나 규제 강화 같은 사소한 사건이 자산 가격 상승을 멈추게 합니다. 그러면 가장 취약한 폰지 금융 투자자들이 무너지며 자산을 던지기 시작하고, 이는 자산 가격 하락을 촉발합니다. 하락한 가격은 투기적 금융 투자자들마저 무너뜨리며, 작은 불씨가 시장 전체를 불태우는 금융위기라는 ‘초대형 산불’로 번집니다.
버블을 만드는 인간 심리: 왜 역사는 반복되는가?
민스키 사이클이 반복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예측 가능할 정도로 비합리적인 인간의 심리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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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증 편향 (Confirmation Bias):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뇌
자신의 기존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만 찾고, 반대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입니다. 1990년대 닷컴 버블 당시 투자자들은 ‘신경제’라는 서사에 매료되어 인터넷 기업의 수익성 악화 같은 명백한 위험 신호는 애써 외면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성장에 대한 장밋빛 전망만 찾아다녔죠. 이는 현재 인공지능(AI) 버블 논쟁에서도 똑같이 반복되는 패턴입니다.
손실 회피와 FOMO: 공포가 부르는 탐욕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인간은 이익의 기쁨보다 손실의 고통을 약 2배 더 크게 느낍니다(손실 회피). 이 심리의 이면에는 ‘나만 소외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기회비용의 손실’이라는 고통을 유발합니다. 저 또한 2021년 암호화폐 시장의 광기를 보며, ‘지금이라도 올라타야 하나’ 하는 FOMO를 강하게 느꼈던 경험이 있습니다.
게임스톱(GameStop) 같은 ‘밈 주식’ 광풍, 암호화폐 열풍과 붕괴, NFT 버블 등은 모두 기업 가치와 무관하게 오직 ‘소외되고 싶지 않다’는 FOMO가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표 1: 역사적 버블의 해부학 - 반복되는 인간 심리의 패턴
버블 | 새로운 패러다임 서사 | 주요 심리적 동인 |
---|---|---|
튤립 파동 (1630s) | “튤립, 새로운 형태의 화폐” | 탐욕, 군중심리 |
남해 거품 (1720) | “신대륙 무역 독점을 통한 무한한 부” | 탐욕, FOMO |
닷컴 버블 (1990s) | “인터넷이 모든 것을 바꾼다” | 확증 편향, FOMO |
미국 주택 버블 (2000s) | “주택 가격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 탐욕, 재귀성 |
암호화폐/NFT 광풍 (2020s) | “탈중앙화 금융이 미래다” | FOMO, 확증 편향 |
재귀성 이론 (Soros’s Theory of Reflexivity):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
전설적인 투자자 조지 소로스는 시장 참여자들의 ‘인식’이 오히려 객관적인 ‘현실’을 만들어나간다고 보았습니다. ‘가격이 오른다’는 인식이 더 많은 매수를 불러 가격을 올리고, 올라간 가격은 처음의 인식을 강화하는 **긍정적 피드백 고리(positive feedback loop)**가 형성되며 버블이 만들어집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한 주택 버블 당시 ‘미국 집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바로 이러한 재귀적 순환의 완벽한 예시입니다.
역사 속의 민스키 모멘트: 금융부터 지정학까지
안정이 혼돈의 씨앗을 뿌리는 패턴은 역사, 기업 경영 등 사회 모든 영역에서 반복됩니다.
- 역사적 비극 (벨 에포크):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의 유례없는 평화와 번영(‘벨 에포크’)은 제국주의 경쟁과 경직된 동맹 체제가 곪아 터지도록 방치했고, 결국 사라예보의 총성 하나가 대륙 전체를 전쟁으로 몰아넣었습니다.
- 금융적 비극 (그린스펀 풋): 시장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연준이 금리 인하로 구원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금융기관들의 극단적인 도덕적 해이를 낳았고,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 기업적 비극 (혁신가의 딜레마): 코닥, 노키아, 블록버스터 등 시장을 지배하던 1등 기업들은 현재의 성공(평화)을 지키려는 합리적 의사결정 때문에, 미래의 ‘파괴적 혁신’을 외면하다가 몰락했습니다.
- 지정학적 비극 (투키디데스의 함정): 신흥 강국(중국)이 기존 패권 국가(미국)의 지위를 위협할 때, 양측 모두 원치 않음에도 구조적 긴장으로 인해 전쟁 가능성이 높아지는 현상 역시 같은 원리입니다.
혼돈 속 생존 전략: ‘안티프래질’하게 생각하기
평화가 혼돈을 잉태하는 것이 피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상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안티프래질(Antifragile)‘이라는 개념에서 그 해답을 찾습니다. 안티프래질이란 충격, 변동성, 스트레스로부터 오히려 이익을 얻고 더 강해지는 성질을 의미합니다. “바람은 촛불을 끄지만, 모닥불은 더욱 거세게 타오르게 한다"는 그의 말처럼, 우리의 목표는 변화의 바람 앞에 꺼지는 촛불이 아니라, 그 바람을 연료 삼는 모닥불이 되는 것입니다.
바벨 전략: 안티프래질의 실천법
탈레브는 어중간한 중간을 피하고 양극단을 결합하는 ‘바벨 전략(Barbell Strategy)‘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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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적 안전 (자산/노력의 85~90%): 국채나 현금처럼 극도로 안전한 곳에 대부분을 배분하여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합니다.
- 극단적 위험 (자산/노력의 10~15%): 벤처 투자처럼 실패 확률은 높지만 성공 시 기대수익이 비대칭적으로 큰 ‘옵션’에 소량을 배분합니다.
이 전략의 핵심은 손실은 10~15%로 제한되지만, 이익의 상한선은 무한대로 열려있다는 점입니다. 예측 불가능한 충격(블랙 스완)이 발생했을 때 파멸하는 대신 엄청난 이익을 얻는 구조입니다.
‘민스키 모멘트’에 대비하는 개인 투자자 체크리스트
다가오는 위기, 당신은 얼마나 준비되어 있나요? 다음 질문들을 통해 스스로를 점검해 보세요.
- 내 포트폴리오의 부채 수준은 어떠한가? (안전한 ‘헤지’인가, 위험한 ‘투기’ 또는 ‘폰지’인가?)
- 나는 확증 편향에 빠져 있는가? (매수한 자산의 부정적인 정보를 애써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 지금 나의 투자는 FOMO 때문인가? (남들이 돈을 번다는 소식에 휩쓸려 추격 매수하지는 않았는가?)
- 바벨 전략을 적용하고 있는가? (전 재산을 ‘중간 위험’ 자산에 몰빵하지는 않았는가?)
-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대비하는가? (스토아 철학의 ‘부정의 시각화’처럼, 자산 가격이 폭락했을 때의 계획이 있는가?)
결론: 혼돈의 파도를 타는 법
우리는 안정이 어떻게 불안정을 잉태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어떻게 민스키 모멘트로 귀결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 핵심 요약 1: 오랜 평화와 안정은 리스크에 대한 경계심을 무너뜨려 부채와 투기를 키우고, 이는 필연적으로 금융 시스템 전체를 취약하게 만듭니다.
- 핵심 요약 2: 확증 편향, FOMO, 재귀성 같은 인간의 비합리적 심리는 이러한 붕괴의 사이클을 반복시키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합니다.
- 핵심 요약 3: 위기를 예측하려는 노력보다, 위기가 닥쳤을 때 오히려 더 강해지는 ‘안티프래질’ 전략(예: 바벨 전략)을 구축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과열과 붕괴를 막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닥쳤을 때 파괴되지 않고 오히려 그 힘을 이용해 더 강해지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혼돈을 두려워하기보다 존중하고, 안티프래질의 원리를 삶과 투자에 적용해야 합니다.
이제 당신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안티프래질’의 관점에서 다시 한번 점검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