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눈송이가 눈사태가 될 때
여러분, 혹시 SNS에서 특정 인물이나 브랜드에 대한 비난이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광경을 본 적 있나요? 처음에는 한두 사람의 작은 불평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느새 그 이야기는 수많은 사람에게 공유되고, 해시태그라는 날개를 달고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리죠. 마치 작은 눈송이가 거대한 눈사태로 변하는 것처럼요. 오늘 우리는 바로 이 현상, ‘쉿스톰(Shitstorm)‘이라 불리는 디지털 세상의 거센 혐오 폭풍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해시태그, 폭풍을 증폭시키는 마법
본래는 친절한 안내자, 해시태그의 탄생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 기호, 즉 해시태그의 탄생 비화를 잠시 들여다볼까요? 2007년, 트위터의 한 사용자였던 크리스 메시나는 수많은 정보가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트위터에서 원하는 주제의 글들만 모아볼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는 특정 주제 앞에 ‘#(해시)’ 기호를 붙여 분류하자는 아이디어를 냈죠. 예를 들어 ‘#독서’라고 검색하면 책에 관한 이야기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말이에요.
이처럼 해시태그는 원래 광활한 정보의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친절한 안내자’이자,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이 편리한 도구가 ‘쉿스톰’을 만나면서, 때로는 혐오를 실어 나르고 분노를 증폭시키는 무서운 확성기로 돌변하게 됩니다.
혐오가 확대 재생산되는 5단계 과정
그렇다면 평범한 비판이 어떻게 해시태그를 타고 거대한 ‘쉿스톰’으로 변해가는 걸까요? 그 과정을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5단계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 1단계: 작은 불씨의 시작 (The Spark) 모든 것은 아주 사소한 게시물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한 소비자가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의 음료에서 이물질을 발견하고 불쾌한 경험을 담은 사진과 글을 SNS에 올립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개인적인 불만 표출에 가깝습니다.
- 2단계: 꼬리표 달기와 공감대 형성 (The Tag)
이 게시물을 본 다른 사용자가 분노에 공감하며,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직관적인 해시태그를 만들어 덧붙입니다.
#OO카페_위생상태
처럼 말이죠. 이 ‘꼬리표’가 달리는 순간, 게시물은 개인의 경험을 넘어 공적인 이슈가 될 준비를 마칩니다. - 3단계: 분노의 집결 (The Gathering) 이제 마법이 시작됩니다. 이전에 같은 카페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기업의 위생 문제에 민감했던 사람들이 해시태그를 통해 이 게시물을 발견하고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나도 이런 적 있다’, ‘이 지점도 문제다’와 같은 댓글과 공유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해시태그는 분노한 목소리들의 집결지가 됩니다.
- 4단계: 알고리즘의 확성기 (The Amplification)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은 ‘인기 있는’ 콘텐츠를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좋아요’, 댓글, 공유가 집중된 이 해시태그를 알고리즘이 포착합니다. 그리고는 원래 이 주제에 관심 없던 사람들의 피드에까지 해당 게시물들을 노출시키죠. 이제 혐오 폭풍은 일부 관심층을 넘어 대중에게로 확산됩니다.
- 5단계: 정보의 왜곡과 여론 재판 (The Mutation) 폭풍이 최고조에 이르면, 처음의 ‘이물질 발견’이라는 핵심 사실은 희미해집니다. 그 자리를 확인되지 않은 소문(‘그 카페 아르바이트생이 일부러 넣었다더라’), 과거의 다른 논란, 심지어 해당 기업 대표의 사생활에 대한 억측까지 파고들어 본질을 흐립니다. 해시태그 아래 모인 익명의 대중은 사실관계 확인 없이 목표물을 향해 돌을 던지는 ‘여론 재판’을 시작하고, 대상은 해명할 기회조차 잃고 맙니다.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
‘쉿스톰’은 단순히 온라인상의 소란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거센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깊은 상처와 심각한 문제들이 남게 되죠.
사라진 진실, 남겨진 낙인
‘쉿스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실’보다 ‘감정’이 앞선다는 것입니다. 분노라는 강력한 감정은 사람들의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만듭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 악의적으로 편집된 사실들이 해시태그를 타고 진실인 양 퍼져나가죠. 폭풍이 지난 후에 사실이 아니었다고 밝혀져도, 이미 찍혀버린 ‘나쁜 존재’라는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는 개인과 기업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명백한 디지털 폭력입니다.
누구든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공포
오늘날 우리는 누구나 ‘쉿스톰’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내가 무심코 단 악성 댓글 하나가, 사실 확인 없이 공유한 게시물 하나가 거대한 혐오 폭풍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 전체에 불신과 갈등을 조장하고, 자유로운 의견 교환마저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Advertisement
폭풍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
디지털 세상의 ‘쉿스톰’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폭풍에 휩쓸려가지 않을 힘을 길러야 합니다. 자극적인 해시태그와 분노 섞인 목소리를 마주했을 때, 한 걸음 물러서서 ‘이것이 과연 사실일까?‘라고 질문하는 작은 습관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손가락이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위로를, 다른 누군가에게는 날카로운 칼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디지털 광장에서 더 건강한 소통의 바람이 불기를 기대하며, 오늘 이야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