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냉동고를 열면
어린 시절, 찌는 듯한 여름날의 기억 속으로 잠시 여행을 떠나볼까요? 할머니 댁 낡은 냉동고 문이 ‘끼익’하고 열리면, 서늘한 냉기와 함께 우리 눈을 반짝이게 하던 보물. 바로 황금빛 종이 상자에 담긴 ‘엑설런트’였습니다.
상자를 열면 마치 보석처럼 나란히 누워있는 두 가지 색깔의 아이스크림. 차분한 파란색과 따스한 노란색 포장지 앞에서, 우리는 인생 최초의 진지한 고민에 빠지곤 했죠. “오늘은 뭘 먹지?” 형제자매가 있다면, 보이지 않는 치열한 눈치싸움이 시작되기도 했습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이 달콤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어요. “근본은 파란색이지!“라는 주장과 “진한 노란색이 진짜!“라는 목소리가 팽팽하게 맞서죠. 도대체 이 두 아이스크림은 무엇이 다른 걸까요? 이 오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우리의 추억이 담긴 황금 상자를 함께 열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두 바닐라의 정체
가장 먼저, 오랜 논쟁의 핵심부터 알려드릴게요. 많은 분이 어렴풋이 느끼셨겠지만, 파란색과 노란색 엑설런트는 맛이 다른 아이스크림이 맞습니다. 파란 포장지를 열면 순수한 ‘바닐라’ 맛이, 노란 포장지를 열면 한층 더 깊은 풍미의 ‘프렌치 바닐라’ 맛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파란색의 노래: 클래식 바닐라
파란색 포장지 속 뽀얀 아이스크림은 ‘바닐라’ 하면 떠오르는 가장 클래식한 맛이에요. 한 입 베어 물면 입안 가득 ‘산뜻하고 깔끔한’ 느낌이 퍼져나가죠. 우유 본연의 고소함과 은은한 바닐라 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마치 잘 연주된 교향곡처럼 군더더기 없이 순수한 맛이랍니다.
노란색의 노래: 프렌치 바닐라
햇살 같은 노란 포장지는 그 색만큼이나 화려하고 풍성한 맛을 선물해요. ‘프렌치 바닐라’는 클래식 바닐라보다 훨씬 ‘진하고 깊은’ 맛을 자랑합니다. 혀를 감싸는 묵직하고 크리미한 질감, 농축된 듯한 달콤함이 특징이죠. 특별한 날을 위한 디저트처럼, 조금 더 사치스러운 맛을 원할 때 저절로 손이 가는 맛이랍니다.
특징 | 파란색 포장 (바닐라) | 노란색 포장 (프렌치 바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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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명칭 | 바닐라 | 프렌치 바닐라 |
핵심 풍미 | 신선하고 산뜻하며 깔끔한 맛 | 진하고 깊으며 풍부한 맛 |
단맛의 정도 | 상대적으로 연한 단맛 | 상대적으로 강한 단맛 |
색상 | 뽀얀 아이보리색 | 확연히 더 노란빛 |
핵심 원료 | 크림 베이스 | 커스터드 베이스 |
추억 속 이미지 | 믿음직한 클래식, 근본의 맛 | 특별한 날의 사치, 고급스러운 맛 |
두 번째 이야기: ‘프렌치’의 비밀
‘프렌치 바닐라’는 왜 ‘프렌치’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요? 그 비밀의 열쇠는 바로 ‘달걀노른자’ 친구에게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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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바닐라는 전통적으로 우유와 크림에 ‘달걀노른자’를 넣어 끓여 만든 ‘커스터드’를 기본으로 해요. 반면, 일반 바닐라는 달걀노른자 없이 크림과 우유만으로 만들죠. 바로 이 ‘달걀노른자’ 하나가 맛과 질감, 색의 모든 차이를 만들어내는 마법사였던 거예요.
- 풍부한 맛의 마법: 달걀노른자 속 지방과 레시틴 성분이 아이스크림을 훨씬 부드럽고 묵직하게 만들어줘요. 우리가 노란색 엑설런트에서 느꼈던 ‘진하고 깊은 맛’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죠.
- 색깔의 마법: 노란색이 더 진한 이유는 인공 색소 때문이 아니라, 커스터드를 만드는 데 사용된 달걀노른자의 자연스러운 색깔이 그대로 담겼기 때문이랍니다.
결국, 노란색 엑설런트가 주는 ‘고급스러운’ 느낌은 기분 탓이 아니었어요. 달걀노른자를 더하는 정성스러운 요리 과정이 만들어낸, 과학적인 결과였던 셈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 1988년, 아이콘의 탄생
엑설런트가 우리에게 이토록 특별한 이유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태어난 시대의 아이콘이기 때문이에요. 세계를 향한 도약의 꿈으로 가득했던 그 시절, ‘Excellent’라는 이름처럼 처음부터 ‘고급 아이스크림’을 목표로 만들어졌죠.
그 증거는 바로 ‘가격’이었습니다. 1990년, 엑설런트 한 상자는 무려 2,500원! 당시 최저 시급이 690원 정도였으니, 거의 네 시간을 꼬박 일해야 맛볼 수 있는 귀한 몸이었어요. 쭈쭈바가 100원 하던 시절, 엑설런트는 그야말로 ‘부의 상징’이었답니다.
그래서 엑설런트는 시험을 잘 봤을 때 받는 특별한 상이었고, 귀한 손님이 오셨을 때 내놓는 최고의 디저트였습니다. 단순히 비싸기만 한 게 아니었어요. 국산 원유에 유지방 함량이 무려 $14\%$에 달하는, 이름값을 하는 진짜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이었죠. (일반적으로 유지방 $6\%$ 이상이면 아이스크림으로 분류된답니다!)
네 번째 이야기: 빨리 녹는 것의 비밀
엑설런트를 먹어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사실! 바로 ‘무섭게 빨리 녹는다’는 점이죠. 잠시 한눈팔면 금세 흐물흐물해져서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기 일쑤였어요.
하지만 이 성가신 특징에 바로 엑설런트의 품질을 증명하는 비밀이 숨어있답니다. 엑설런트가 빨리 녹는 이유는, 앞서 말한 높은 유지방 함량($14\%$) 때문이에요. 유지방 함량이 높으면 어는점이 낮아져 상온에서 더 빨리 녹게 되거든요. 반대로 저가형 아이스크림은 안정제를 넣어 형태를 오래 유지하지만, 맛의 깊이는 떨어지죠.
즉, 엑설런트가 빨리 녹는다는 건, 오히려 풍부한 맛을 위한 고품질의 증거인 셈이에요. 최고의 맛을 위해 약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는 ‘품질의 역설’이라고나 할까요? 녹기 전에 서둘러 먹어야 했던 그 짧은 순간의 스릴마저, 이제는 우리 모두의 즐거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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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이야기: 추억에서 레시피로
세월이 흘러도 엑설런트는 우리 곁을 지키며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엑설런트를 그냥 먹는 것을 넘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창의적인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 엑설런트 아포가토: 엑설런트 한 조각에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붓기만 하면, 카페 부럽지 않은 근사한 디저트가 완성되죠.
- 과자에 빠진 엑설런트: 에이스 같은 담백한 과자 사이에 끼워 먹는 ‘과자 샌드’는 ‘이 조합을 만든 사람에게 상을 줘야 한다’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답니다.
이처럼 엑설런트가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어떤 재료와도 잘 어울리는 순수한 맛 덕분이에요. 마치 깨끗한 캔버스처럼, 우리가 직접 새로운 이야기를 그려나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기 때문이죠.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요?
자, 이제 우리는 황금빛 상자 속 비밀을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파란색과 노란색의 선택은 단순한 취향을 넘어, 요리의 과학과 시대의 자부심, 그리고 품질의 역설까지 담고 있는 깊은 이야기였어요.
어린 시절 냉동고 앞에서 망설이던 아이는, 이제 커피 위에 엑설런트를 띄워 마시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알고 난 지금, 당신의 ‘최애’는 여전히 파란색인가요, 아니면 노란색인가요?
어쩌면 오늘만큼은 늘 먹던 색이 아닌 다른 색에 손을 뻗어보고 싶을지도 모르겠네요. 여러분의 ‘엑설런트’에는 어떤 추억이 담겨 있나요? 댓글로 여러분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