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에 걸친 결정과 역사적 사건, 그리고 달러의 특권이 빚어낸 거대한 부채의 연대기
- 미국이 건국 초기부터 빚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온 역사적 배경
- 지출은 늘고 수입은 줄어드는 미국 재정의 구조적 불일치
- 21세기 이후 국가 부채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킨 세 번의 결정적 위기
- 미국만이 막대한 빚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달러’라는 비밀 병기
우리 돈으로 5경 원, 달러로는 37조 달러.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이 숫자가 바로 오늘날 미국 정부가 짊어진 미국 국가부채 총액입니다. 이는 단순한 회계장부의 기록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수많은 결정과 역사적 사건, 그리고 미국만이 가진 독특한 특권이 빚어낸 거대한 이야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글은 단순한 회계 감사가 아니라, 한 편의 추리 소설처럼 “왜 이렇게 되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역사, 정치, 경제의 층을 한 겹씩 벗겨내며 그 진짜 이유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1. 빚의 시작: 건국의 원칙에서 현대의 습관으로
미국 부채의 이야기는 실수가 아닌, 의도적인 국가 건설 전략에서 시작됩니다. 1791년,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은 독립 전쟁으로 인한 7,540만 달러의 빚을 없애는 대신, 이를 통합하여 신생 국가의 신용도를 확립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은 국가 부채를 신용 구축의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이 도박은 눈부시게 성공했고, 부채는 악이 아니라 _국가를 위한 유용한 도구_라는 인식이 미국의 DNA에 각인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전쟁 같은 위기 시에 빚을 내고 평화 시에 갚는 리듬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평화 시기임에도 부채가 급증하며 이 역사적 리듬이 깨졌습니다. 문제는 빚을 졌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영구 부채라는 새로운 현상의 등장이었습니다.
2. 구조적 균열: 더 많이 쓰고 덜 걷는 재정
미국 국가부채의 중심에는 정부가 쓰기로 약속한 돈과 세금으로 걷는 돈 사이의 구조적 불일치라는 핵심 갈등이 있습니다.
멈출 수 없는 지출 열차: 의무 지출
미 연방 예산의 핵심 문제는 법에 따라 자동으로 지출되는 ‘의무 지출’, 특히 **사회보장제도(Social Security)와 메디케어(Medicare)**입니다. 인구 고령화와 의료비 급등으로 이 두 프로그램은 연방 지출의 가장 큰 동인이 되었으며, 정치적 ‘성역’으로 여겨져 지출에 강력한 상승 압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정부 지출(파란색 선)은 수입(빨간색 선)을 지속적으로 초과하며 구조적인 재정 적자를 만들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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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드는 수입 기반: 감세의 시대
지출이 자동으로 늘어나는 동안, 수입 기반은 의도적으로 축소되었습니다. 1980년대부터 기업과 부유층의 세율을 낮추면 경제 성장을 촉진해 세수가 늘어날 것이라는 ‘공급측 경제학’이 힘을 얻었습니다. 이로 인해 부시 행정부(2001, 2003년)와 트럼프 행정부(2017년)에서 대규모 감세가 단행되었습니다.
하지만 ‘감세가 스스로 비용을 충당한다’는 주장은 현실화되지 않았고, 오히려 재무부 수입의 상당한 감소를 초래하며 구조적 재정 적자를 낳았습니다.
미국 연방 예산 요약 (2024 회계연도)
항목 | 금액 (단위: 조 달러) |
---|---|
총수입 | $4.9 |
총지출 | $6.8 |
재정 적자 | $1.8 |
3. 부채 급증의 촉매제: 세 번의 거대한 위기
서서히 타오르던 구조적 적자라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것은 21세기에 닥친 세 번의 거대한 위기였습니다.
첫 번째 지진: ‘테러와의 전쟁’
9/11 테러 이후 시작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비용은 정규 예산이 아닌 ‘긴급 추가 예산’으로 처리되어 실제 비용이 감춰지는 ‘유령 예산’ 현상을 낳았습니다. 총비용은 참전 용사들의 미래 의료비까지 포함해 최대 6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두 번째 지진: 2008년 금융 붕괴
금융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한 구제 금융과 경기 부양책으로 인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국가 부채는 6조 1,000억 달러나 폭증했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미국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수직에 가깝게 상승했습니다.
세 번째 지진: 코로나19 팬데믹
팬데믹 대응을 위해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인 총 5조 달러에 가까운 자금이 풀렸고, 이로 인해 2020년 2분기, GDP 대비 부채 비율은 132.8%라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위기들은 위기가 지나간 후에도 부채 수준을 영구적으로 높여놓는 ‘톱니바퀴 효과’를 만들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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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대가: 21세기 주요 사건의 부채 영향
사건 | 추정 비용/부채 증가액 |
---|---|
포스트 9/11 전쟁 | $4조 ~ $6조 |
2008년 금융 위기 | $6.1조 (FY08-12 증가분) |
코로나19 팬데믹 | $5.7조 (FY19-21 증가분) |
4. 비밀 병기: 달러는 어떻게 부채를 감당하게 했나?
다른 나라였다면 벌써 초인플레이션이나 채무 불이행에 직면했을 텐데, 미국은 어떻게 이 막대한 빚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은 바로 미국 달러가 세계의 기축 통화라는 ‘터무니없는 특권’에 있습니다. 전 세계가 무역과 외환보유고를 위해 달러를 필요로 하기에,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는 마르지 않습니다. 이 덕분에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낮은 이자율로 돈을 빌릴 수 있으며, 이는 사실상 전 세계가 미국의 적자 지출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과 같습니다.
일본 역시 GDP 대비 부채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국채의 대부분을 자국민이 소유하고 있어 안정적인 반면, 미국의 부채는 전 세계가 떠받치고 있는 독특한 구조입니다. 이 특권이 없었다면 지난 40년간의 재정 정책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전 세계 기축 통화로서의 달러의 지위는 미국이 막대한 부채를 감당할 수 있게 하는 핵심 요인입니다.
5. 끝나지 않는 게임: 정치는 왜 빚을 키우는가
숫자들이 이렇게 명백한데, 왜 정치인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까요? 이는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정치적 의지의 부재와 단기적 이익을 우선하는 유인 구조 때문입니다.
공화당은 감세를, 민주당은 사회 프로그램 확대를 위해 적자 지출을 활용해왔습니다. 정치인들은 유권자에게 감세나 새로운 복지 같은 즉각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그 비용(부채 증가)은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는 ‘재정 착시’를 이용합니다. 저 역시 정치인들이 장기적인 재정 건전성보다 눈앞의 선거 승리를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결국 미국 국가부채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안정성보다 단기적인 정치적 이득을 우선하는 시스템의 누적된 결과물인 셈입니다.
결론
5경 원에 달하는 미국 국가부채의 ‘진짜 이유’는 단일한 원인이 아닌 여러 요인들의 합작품입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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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적 결함: 사회보장제도 같은 의무 지출은 급증하는데, 반복적인 감세로 수입은 줄어드는 근본적인 불일치가 존재합니다.
- 세 번의 위기: 21세기 ‘테러와의 전쟁’, 금융 위기, 팬데믹은 부채 수준을 영구적으로 상승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 독보적 특권: 달러가 세계 기축 통화라는 지위 덕분에 미국은 낮은 비용으로 무한정 빚을 낼 수 있었고, 이는 문제 해결을 미루게 만들었습니다.
의회예산처(CBO)는 현재 GDP의 약 100% 수준인 공공 부채가 2055년에는 156%까지 치솟을 것으로 경고합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 장은 아직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 결말은 미국이 더 늦기 전에 과거 선택의 결과에 직면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참고자료
- Understanding the National Debt U.S. Treasury Fiscal Data
- Federal Debt: Total Public Debt (GFDEBTN) FRED | St. Louis Fed
- History of the Debt TreasuryDirect
- U.S. National Debt by Year Investopedia
- National debt of the United States Wikipedia
- National Debt Clock: What Is the National Debt Right Now? Peterson Foundation
- Graphics Congressional Budget Office
- Federal Budget Econlib
- Supply-Side Economics: What You Need to Know Investopedia
- Federal Tax Cuts in the Bush, Obama, and Trump Years ITEP.org
- Key facts about the U.S. national debt Pew Research Center
- The Financial Legacy of Iraq and Afghanistan Harvard Kennedy School
- Troubled Asset Relief Program: Lifetime Cost U.S. GAO
- COVID Relief Spending USAspending
- The Dollar: The World’s Reserve Currency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 Fiscal Illusion and Deficit Spending Cato at Liberty Blog
- The Long-Term Budget Outlook: 2025 to 2055 Congressional Budget Off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