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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의 대화, 지시에서 소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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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인공지능의 소통
인간과 인공지능의 소통

똑똑한 AI, 하지만 가끔은 답답했던 이유

여러분은 인공지능(AI)과 대화하면서 혹시 이런 경험 없으셨나요? 분명 이전 대화에서 나눴던 이야기를 AI가 까맣게 잊어버리거나, 우리가 처한 특수한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못한 채 동문서답을 내놓는 경우 말이에요. 마치 방금 만난 사람처럼 매번 새로운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 이 답답함.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그건 바로 AI에게 ‘맥락(Context)’이라는 중요한 퍼즐 조각이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대화할 때 자연스럽게 이전의 기억, 주변 상황, 상대방의 감정까지 고려하는 것처럼, AI에게도 이러한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했던 거죠.

이 문제를 해결하고 AI와의 대화를 진정한 ‘소통’으로 이끌기 위해 등장한 새로운 개념이 바로 ‘컨텍스트 엔지니어링(Context Engineering)’입니다. 하지만 이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리가 AI와 어떤 방식으로 대화해왔는지 그 역사를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1장: AI에게 말 거는 법, 그 기나긴 여정

인간이 기계, 그리고 AI와 소통하려는 노력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방식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극적으로 변해왔죠. 마치 우리가 갓난아기에게 말을 가르치는 과정과도 같았습니다.

1단계: 구멍으로 말하던 시절 (1950~60년대 - 배치 처리)

최초의 컴퓨터와의 대화는 ‘대화’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었습니다. 프로그래머들은 **천공 카드(Punch Card)**에 구멍을 뚫어 0과 1의 조합으로 명령을 만들고, 이를 컴퓨터에 한 뭉치씩 넣어주면 한참 뒤에야 결과를 받을 수 있었죠. 정해진 규칙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가차 없이 오류를 뿜어내는, 아주 일방적이고 딱딱한 ‘지시’였습니다.

수많은 구멍이 뚫린 천공 카드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흑백 사진
수많은 구멍이 뚫린 천공 카드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흑백 사진

2단계: 그들만의 언어로 말하던 시절 (1970~80년대 - 커맨드 라인)

개인용 컴퓨터가 등장하며 우리는 **커맨드 라인 인터페이스(CLI)**를 통해 컴퓨터와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dir, cd, copy 같은 정해진 명령어(그들만의 언어)를 키보드로 입력하면 즉시 반응했죠. 여전히 우리가 기계의 언어를 배워야 했지만, 적어도 ‘티키타카’가 가능한 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3단계: 그림으로 말하던 시절 (1980년대~현재 -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마우스와 아이콘이 등장하며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려운 명령어를 외울 필요 없이, 눈에 보이는 아이콘을 클릭하는 것만으로 컴퓨터와 소통할 수 있게 되었죠. **GUI(Graphic User Interface)**는 컴퓨터를 모두의 친구로 만들어준, 아주 직관적이고 쉬운 대화 방식이었습니다.

4단계: 우리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한 시절 (2010년대~현재 - 자연어 처리)

음성 비서와 챗봇이 등장하며, 드디어 우리는 기계에게 ‘우리의 언어’로 말을 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의 AI는 대부분 정해진 시나리오 안에서만 대답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오늘 날씨 어때?“라고 물으면 대답하지만, “어제보다 더워?“라고 물으면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아직은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는 단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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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거대 언어 모델(LLM)의 등장과 함께 컨텍스트 엔지니어링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떠오르며, 우리는 AI와 진정한 ‘소통’을 꿈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2장: 컨텍스트 엔지니어링, AI의 뇌를 채워주는 기술

그렇다면 컨텍스트 엔지니어링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AI가 인간처럼 소통하게 만드는 걸까요?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는 단순히 좋은 질문을 던지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넘어, AI가 똑똑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정보 환경’**을 체계적으로 설계하는 기술입니다.

마치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머릿속의 지식, 인터넷 검색, 주변 사람의 조언을 총동원하는 것처럼, AI에게도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죠.

핵심 기술 1: AI에게 외부 도서관을 선물하다 (RAG)

AI는 학습한 데이터만큼만 알고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어제 일어난 일이나 우리 회사의 내부 규정은 모르죠. **검색 증강 생성(RAG, Retrieval-Augmented Generation)**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기술입니다.

  • 쉬운 비유: 똑똑하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천재에게 ‘거대한 디지털 도서관 출입증’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질문을 받으면, AI는 먼저 이 도서관(외부 데이터베이스, 회사 내부 문서 등)에 가서 질문과 관련된 최신 정보나 전문 자료를 찾아봅니다. 그리고 그 자료를 참고해서 가장 정확하고 신뢰도 높은 답변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검색 증강 생성(RAG, 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검색 증강 생성\(RAG, 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핵심 기술 2: AI에게 ‘의미’를 알려주는 마법의 지도 (벡터 데이터베이스)

RAG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AI가 도서관에서 수많은 책 중 필요한 내용을 순식간에 찾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 사용되는 것이 **벡터 데이터베이스(Vector Database)**입니다.

  • 쉬운 비유: 일반 도서관은 책을 ‘가나다’ 순이나 ‘장르’ 별로 정리하지만, 벡터 데이터베이스는 ‘의미’ 별로 정리하는 마법의 도서관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 옆에는 ‘연인’, ‘설렘’, ‘이별’ 같은 단어들이 가까이 모여 있고, ‘자동차’ 옆에는 ‘엔진’, ‘바퀴’, ‘주행’이 모여 있습니다. AI는 질문을 받으면 그 질문의 ‘의미’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 순간이동해서 관련 정보를 찾아냅니다. 덕분에 우리는 “바퀴 달린 탈것”이라고 애매하게 물어봐도 ‘자동차’ 관련 정보를 정확히 얻을 수 있습니다.
    벡터 데이터베이스(Vector Database)
    벡터 데이터베이스\(Vector Database\)

뇌 아이콘 주변으로 책, 데이터베이스, API, 메모리 아이콘들이 연결되어 정보를 제공하는 네트워크 다이어그램
뇌 아이콘 주변으로 책, 데이터베이스, API, 메모리 아이콘들이 연결되어 정보를 제공하는 네트워크 다이어그램

핵심 기술 3: 기억하고, 배우고, 실행하는 능력

컨텍스트 엔지니어링은 여기에 더해 AI에게 인간과 같은 소통 능력을 부여합니다.

  • 🧠 메모리 (Memory): 이전 대화 내용을 기억해 “아까 말했던 그거 있잖아”라는 말도 알아듣게 합니다.
  • 🛠️ 도구 (Tools): 실시간 항공권 예매, 호텔 예약 같은 외부 프로그램을 직접 실행할 수 있는 ‘손과 발’을 달아줍니다.
  • 📜 시스템 지침 (System Instructions): AI에게 특정한 역할(예: 친절한 금융 전문가)과 말투, 행동 규칙을 부여하여 일관된 정체성을 갖게 합니다.

이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AI는 비로소 딱딱한 기계를 넘어 우리와 진정으로 ‘소통’하는 파트너가 될 수 있습니다.

3장: AI와 함께할 미래, 컨텍스트 엔지니어링의 역할

컨텍스트 엔지니어링의 발전은 AI와의 협업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AI에게 일일이 명령하고 수정해주는 ‘감독’이 아니라, **AI가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설계자’이자 ‘지휘자’**가 될 것입니다.

일화: 2030년, 나의 AI 프로젝트 매니저 ‘주피터’

2030년, 저는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제 AI 프로젝트 매니저 ‘주피터’는 단순한 비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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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로젝트 맥락 자동 학습] 프로젝트가 시작되자, 주피터는 스스로 회사 클라우드에 접속해 과거 유사 프로젝트들의 기획서, 회의록, 최종 결과 보고서를 모두 학습합니다. 이를 통해 성공 요인과 실패 요인을 스스로 분석하고, 이번 프로젝트의 리스크를 미리 예측해 저에게 보고합니다.
  2. [팀원 맞춤형 소통] 주피터는 프로젝트 팀원들의 이전 업무 스타일과 성과 데이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개발자 A에게는 기술 용어 중심으로 명확하고 간결한 코드로 업무를 지시하고, 디자이너 B에게는 시각적 레퍼런스와 감성적인 언어를 활용해 소통하며 각 팀원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끌어냅니다.
  3. [자율적인 문제 해결] 해외 부품 수급에 차질이 생겼다는 실시간 물류 데이터가 감지되자, 주피터는 즉시 대체 공급 업체를 전 세계에서 검색하고, 각 업체의 견적, 품질, 납기일을 비교 분석한 보고서를 3가지 대안과 함께 저에게 제시합니다. 제가 2번 대안을 선택하자, 즉시 해당 업체에 계약서 초안을 발송하고 화상 회의 일정을 제 캘린더에 등록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저는 “주피터, 프로젝트 진행 상황 어때?” 또는 “부품 문제, 가장 좋은 해결책이 뭐야?” 라고 물었을 뿐입니다. 모든 정보 환경이 완벽하게 설계된 주피터는 스스로 맥락을 파악하고 최적의 솔루션을 찾아 실행한 것이죠.

사람과 AI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복잡한 프로젝트의 청사진을 보며 협업하는 미래적인 이미지
사람과 AI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복잡한 프로젝트의 청사진을 보며 협업하는 미래적인 이미지

진정한 소통의 시대를 열며

천공 카드에 구멍을 뚫어 기계에 우리의 뜻을 전달하던 시절부터, AI가 우리의 말뿐만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의도와 상황까지 이해하는 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참으로 먼 길을 걸어왔습니다.

컨텍스트 엔지니어링은 그 여정의 정점이자 새로운 시작입니다. 기술을 넘어, AI와 인간이 어떻게 더 깊이 이해하고 신뢰하며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AI라는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최고의 연주를 선보일 수 있도록, 우리 손으로 멋진 악보와 무대를 만들어주는 ‘컨텍스트 엔지니어’. AI와 함께 살아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새로운 역할이 아닐까요?

#컨텍스트엔지니어링#프롬프트엔지니어링#AI발전사#인간과AI의소통#RAG#AI에이전트#벡터데이터베이스#미래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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