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잘 산 삶의 새로운 대차대조표 - 소득 대 자율성
여기,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삶이 있습니다. 한 명은 월스트리트에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높은 소득을 올리지만, 정작 자기 시간의 주인은 되지 못하는 투자 은행가입니다. 다른 한 명은 버몬트 주의 작은 주유소에서 일하고 백화점 바닥을 닦던 **로널드 제임스 리드(Ronald James Read)**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평생을 검소하게 살면서 받은 월급을 차곡차곡 우량주에 묻어두었고, 세상을 떠날 때 약 8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90억 원이 넘는 자산을 남겼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찌 보면 단순한 우화 같지만, 우리가 ‘부(富)‘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정말 높은 소득이 곧 부유한 삶과 동의어일까요? 로널드 리드의 삶은 그렇지 않다고, 진짜 부는 통장에 찍힌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내가 내 삶을 통제할 수 있는 ‘자율성’의 크기라고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그에게 돈은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갈 독립성을 확보하는 궁극의 도구였던 셈이죠.
솔직히 말해, 돈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배당금은 뭘까요? 더 좋은 차? 더 넓은 집? 아닙니다. 저는 단언컨대 **‘자율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시간을, 내 하루를,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온전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능력 말입니다. 이 글은 바로 그 주장을 하려고 합니다. 행동경제학과 심리학의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단순히 자산을 불리는 것보다 ‘자율성’을 확보하는 데 돈을 쓰는 것이 우리의 행복과 웰빙에 훨씬 더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길임을 증명해 보이고자 합니다.
이야기는 총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진행됩니다. 먼저 1부에서는 왜 우리는 돈을 더 벌수록 오히려 더 부자유스러워지는지, 그 교묘한 심리적 함정들을 파헤쳐 볼 겁니다. 2부에서는 이런 함정에 맞서는 요즘 세대의 저항 방식, 바로 파이어(FIRE) 운동과 조용한 퇴사에 대해 조금은 비판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볼 거고요. 마지막 3부에서는 이 모든 통찰을 모아, 우리 각자가 빼앗긴 시간을 체계적으로 ‘되사기’ 위한 아주 현실적이고 증거에 기반한 실행 계획을 제시하려 합니다.
1부: 보이지 않는 족쇄: 우리는 왜 더 벌수록 덜 자유로워지는가?
이 파트에서는 소득이 늘어나는 데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여전히 돈과 시간의 노예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지, 그 이면에 숨겨진 우리의 인지적, 감정적 메커니즘을 하나씩 해부해보겠습니다.
제1장. 쾌락의 쳇바퀴와 라이프스타일 인플레이션: 끝없는 욕망의 동력
월급이 오르면 당연히 더 행복해지고 여유로워질 거라 기대하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더 벌게 된 후에도 예전과 비슷한, 혹은 더 심한 재정적 압박을 느낍니다. 이게 바로 **‘라이프스타일 인플레이션(Lifestyle Inflation)’**이라는 무서운 함정 때문입니다. 소득이 늘어난 만큼 씀씀이도 같이 커져버려서, 결국 바뀐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더 많은 돈을 벌어야만 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거죠.
아니,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그 뿌리에는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 다른 말로 **‘쾌락의 쳇바퀴’**라는 아주 강력한 심리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 뇌는 생각보다 적응의 명수라서, 좋은 일이 생기든 나쁜 일이 생기든 금세 익숙해져 원래의 행복 기준점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거든요. 월급 인상의 기쁨, 새 차를 뽑았을 때의 짜릿함? 아쉽게도 그건 정말 잠시뿐입니다. 금세 그 새로운 현실이 나의 ‘기본값’이 되어버리고, 행복감은 희미해지죠. 결국, 예전과 똑같은 수준의 행복을 느끼려면 더 새롭고, 더 비싼 자극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만족감이 항상 저 멀리 달아나는, 끝없는 욕망의 쳇바퀴가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런 심리적 경향은 ‘사회적 비교 이론’ 때문에 더욱 증폭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참, 내 만족도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주변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 결정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소득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어울리는 사람, 사는 동네가 바뀌면 비교의 기준점 역시 슬그머니 올라갑니다. ‘옆집 철수네는 차 바꿨다던데…’ 하는 식의 경쟁이 시작되고, 이건 라이프스타일 인플레이션을 가속하는 아주 강력한 사회적 엔진이 됩니다. 그러니 이걸 단순히 개인의 의지박약 문제로 치부하면 곤란합니다. 이건 우리 뇌에 기본적으로 탑재된, 예측 가능한 버그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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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황금 수갑의 역설: 높은 소득이 자유를 앗아가는 이유
높은 연봉. 누구나 꿈꾸는 직업적 성공의 상징이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높은 연봉이 개인의 자유를 꽁꽁 묶는 족쇄가 될 수 있습니다. **‘황금 수갑(Golden Handcuffs)’**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너무나도 달콤한 보수와 혜택 때문에, 사실은 만족스럽지 않은 이 직장을 도저히 떠나지 못하는 상황을 꼬집는 용어죠. 나에게 상으로 주어진 줄 알았던 높은 월급이, 어느새 다른 모든 선택지를 막아버리는 장애물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이 현상의 핵심에는 행동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인 ‘손실 회피(Loss Aversion)’ 심리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여러 연구가 증명하듯, 사람은 100만 원을 얻었을 때의 기쁨보다 100만 원을 잃었을 때의 고통을 심리적으로 약 두 배나 더 크게 느낍니다. 자, 이제 고연봉 직장을 그만두는 결정을 상상해봅시다. 우리 뇌는 이 상황을 ‘새로운 자유를 얻는다’는 긍정적인 프레임으로 보기보다는, ‘지금껏 누리던 높은 급여와 사회적 지위, 안정성을 잃는다’는 손실 프레임으로 먼저 인식합니다. 이 예상되는 상실의 고통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새로운 삶이 가져다줄지 모르는, 하지만 아직은 불확실한 기쁨을 그냥 압도해버리는 거죠.
여기에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까지 가세합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변화보다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거든요. 지금의 일이 불만족스럽더라도, 모든 걸 버리고 미지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새로운 길보다는 훨씬 안전하게 느껴지는 겁니다. 결국 소득이 높을수록 잃을 것도 많아지고, 그 결과 심리적으로는 더욱 현재에 얽매이게 되는 모순적인 상황. 바로 이것이 고소득의 역설입니다.
제3장. 행복의 고원 현상: 돈으로 더 이상 행복을 살 수 없는 지점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하겠지.” 이건 정말 끈질긴 통념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연구 결과는 돈과 행복의 관계가 그렇게 단순한 직선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 Paradox)’**이라는 유명한 개념이 있죠. 한 국가의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그 이후의 소득 증가는 국민 전체의 행복 수준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건 국가 단위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우리 개인의 삶에서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물론 돈은 가난이라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일단 먹고사는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돈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력은 급격히 줄어듭니다. 여러 연구는 소득이 특정 **‘포화점(satiation point)’**에 도달하면 행복도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조금씩 감소할 수도 있다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Jebb 등이 전 세계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삶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가 연 소득 95,000달러에서 정점을 찍고, 그 이상을 버는 그룹에서는 오히려 점수가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연구들에서도 가구 소득이 특정 수준에 이르면 소득 증가가 행복을 더 이상 높여주지 못하는 비슷한 결과가 관찰되었죠.
연구/저자 | 관할권 | 정서적 웰빙 포화점 | 삶의 평가 포화점 | 주요 발견 및 시사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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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bb, A. T., et al. (2018) | 전 세계 | $60,000 - $75,000 | $95,000 | 포화점을 넘어서면 삶의 평가 점수가 하락하는 ‘전환점’ 효과 발견. |
Kahneman, D. & Deaton, A. (2010) | 미국 | $75,000 | 포화점 없음 | 정서적 웰빙(일상의 행복감)은 약 $75,000에서 정체되지만, 삶에 대한 평가는 계속 상승. |
안주엽 외 (2015) | 한국 | 해당 없음 | 약 3억 5천만 원 (가구 소득) | 가구 소득이 특정 정점에 도달하면 행복 상승 효과가 소멸됨. |
심수진 외 (2015) | 한국 | 해당 없음 | 월 700-799만 원 (가구 소득) | 월 800만 원 이상 소득 집단에서 오히려 주관적 웰빙이 낮아지는 현상 관찰. |
그렇다면 대체, 일정 소득을 넘어선 우리에게 진정한 웰빙을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연구들은 한결같이 두 가지 비재무적 요소를 지목합니다. 바로 **자율성(Autonomy)**과 **사회적 관계(Social Relationships)**입니다. 내가 내 삶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깊은 유대감 말입니다. 그렇다면 답은 명확해집니다. 돈을 가장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끝없이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진짜 행복의 전제 조건인 시간과 마음의 안정을 구매하여 자율성을 키우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지는 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2부: 조용한 반란: 새로운 세대는 어떻게 자유를 되찾고 있는가?
자, 그럼 1부에서 진단한 이런 교묘한 심리적 함정들에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여기, 이 보이지 않는 족쇄에 맞서기 위한 요즘 세대의 전략적 대응이 있습니다. 바로 파이어 운동과 조용한 퇴사입니다. 이 두 현상은 겉보기엔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낡은 노동관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이라는 뿌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제4장. 전면전: 시스템 탈출 전략, ‘파이어(FIRE) 운동’
파이어(FIRE) 운동. 아마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경제적 독립, 조기 은퇴)’**의 앞 글자를 딴 말이죠. 말 그대로, 정해진 은퇴 연령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경제적 자립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는 라이프스타일 운동입니다. 이 운동의 최종 목표는 명확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 억지로 해야만 하는 의무적인 노동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
그럼 이들은 어떻게 그 목표를 달성할까요? 핵심 메커니즘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소득의 50%에서 많게는 80% 이상을 저축하는 극단적인 저축률. 둘째, 1년 생활비의 25배에 해당하는 자산을 모아, 그 자산의 4%를 매년 생활비로 쓰는 ‘4% 규칙’. 셋째, 이렇게 모은 돈을 저비용 지수 펀드 같은 곳에 투자해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이 들어오는 소극적 소득(passive income)을 만드는 것. 특히 평생직장 개념은 사라지고 고용은 불안하며, ‘성장’과 ‘열정’을 강요하는 ‘허슬 문화’에 지친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이 운동은 아주 강력한 탈출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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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파이어 운동은 인생의 전반부에 ‘노동’이라는 단계를 압축적으로 몰아넣고, 남은 인생 대부분을 ‘자유’의 시간으로 만들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돈이 아니라 시간이 가장 희소하고 궁극적인 자원이라는, 생각의 대전환인 셈이죠.
제5장. 게릴라전: 시스템 내 생존 전략, ‘조용한 퇴사’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는 실제로 사직서를 내는 행위가 아닙니다. 이건 일종의 태도에 가깝습니다. 계약서에 명시된, 딱 내게 주어진 최소한의 업무만 하겠다는 것. 그 이상의 시간과 노력, 소위 말하는 ‘열정’은 더 이상 투입하지 않기로 의식적으로 결정하는 것이죠.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요? 팬데믹을 겪으며 삶의 가치관이 바뀐 것, 기성세대와는 다른 가치관을 가진 젊은 세대의 등장, 그리고 끝없는 번아웃에 대한 방어기제가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걸 그냥 ‘게으름’이나 ‘무책임’이라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건 사실 불분명한 계약에 대한 지극히 합리적인 대응일 수 있습니다. 회사는 ‘열정’, ‘주인의식’, ‘가족 같은 분위기’ 같은 애매한 말로 포장해서 직원에게 공짜 초과 근무를 기대하곤 하죠. 조용한 퇴사는 바로 그 암묵적인 기대에 대해 직원이 명시적으로 “더는 안 하겠습니다"라고 선을 긋는 행위입니다. 그러니 이건 수동적인 도피가 아닙니다. ‘조직 문화’라는 이름 아래 비공식적으로 착취당해 온 나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되찾기 위한, 아주 적극적이고 조용한 형태의 노동 운동으로 볼 수도 있는 거죠.
제6장. 해방 전략 비교 분석: 당신의 전장은 어디인가?
파이어 운동과 조용한 퇴사. 이 둘은 근본적으로 ‘내 시간과 삶의 에너지를 되찾겠다’는 똑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갑니다. 하지만 그 전략은 완전히 다릅니다. 마치 전쟁터에서 구사하는 전술처럼 말이죠.
- 파이어 운동: 이건 시스템으로부터 완전히 빠져나오는 **‘탈출 전략(exit strategy)’**입니다. 초반의 엄청난 희생과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전쟁 자체를 끝내려는 **‘전면전’**에 가깝습니다.
- 조용한 퇴사: 이건 시스템 **‘내부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속가능성 전략(sustainability strategy)’**입니다. 정면충돌은 피하되, 명확한 경계를 설정해서 내 영토(시간과 에너지)를 지키려는 **‘게릴라전’**과 비슷합니다.
결국 이 두 현상은 ‘일한다 vs 그만둔다’는 흑백논리로 볼 문제가 아닙니다. 팍팍한 노동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자율성을 되찾으려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전략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가진 자원, 위험을 감수하려는 성향, 그리고 삶의 가치관에 따라 이 스펙트럼 위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차원 | 파이어 운동 | 조용한 퇴사 |
---|---|---|
핵심 목표 | 노동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 | 일과 삶의 균형 및 시간 통제권 확보 |
주요 전략 | 극단적 저축과 투자를 통한 자산 축적 | 계약된 최소한의 업무만 수행 |
시간적 관점 | 단기간의 고통, 장기간의 자유 | 현재의 지속가능성 추구 |
재정적 요건 | 높음 (연 생활비의 25배 이상 자산) | 낮음 (현재 소득 유지) |
핵심 위험 | 시장 변동성, 은퇴 후 삶의 불확실성 | 경력 정체, 승진 누락, 부정적 평판 |
심리적 비용 | 축적 기간의 박탈감, 사회적 고립 | 업무 몰입도 저하, 성취감 부재, 무기력 |
잠재적 보상 | 시간과 장소의 완전한 자유 | 정신적 에너지 보존, 번아웃 예방 |
3부: 자율성 회복 오퍼레이팅 시스템: 시간을 되사기 위한 3단계 실행 계획
자, 이제 앞선 분석들을 바탕으로 가장 중요한 파트로 넘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마지막 장에서는 여러분이 실질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되찾기 위해 오늘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단계별 가이드를 제시합니다.
제7장. 1단계 - ‘충분함’의 재정의: 당신의 내적 스코어보드를 설계하라
자유를 향한 여정의 첫걸음은, 우리를 끊임없이 쾌락의 쳇바퀴 위에서 달리게 만드는 외부의 기준(소셜 미디어 속 남의 삶, 끝없는 광고)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때 고대 스토아 철학의 지혜는 아주 유용한 정신적 나침반이 되어 줍니다. 스토아 철학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나의 생각, 나의 행동)에만 집중하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남들의 평가, 주식 시장의 등락)에는 무심해지는 것.
이런 단단한 철학적 기준이 섰다면, 다음은 ‘자유’라는 추상적인 목표를 구체적인 숫자로 바꿔야 합니다. 이때 ‘SMART 원칙’을 활용하면 아주 효과적입니다. 예를 들어,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목표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대신 이렇게 바꾸는 거죠. “재정적 압박 없이 새로운 직업을 탐색하기 위해(Relevant), 앞으로 30개월 동안(Time-bound) 매월 100만 원씩 저축하여(Achievable) 3,000만 원의 ‘자유 예비비’를 마련하겠다(Specific, Measurable).” 어떤가요? 훨씬 명확해졌죠? 이런 과정을 거치면, 골치 아프게만 느껴졌던 예산 짜기는 내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도덕적 문서’가 됩니다.
제8장. 2단계 - ‘자유 예비비’ 구축: 선택권을 구매하는 비대칭적 베팅
최소 3개월에서 6개월치 생활비에 해당하는 비상금을 마련하는 것. 이건 단순히 재정적 안전망을 만드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이건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즉각적이고 확실한 형태의 ‘자유’입니다. 저는 이 돈을 **‘자유 예비비(Freedom Fund)’**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 돈이 있으면, 우리는 부당한 대우를 억지로 참지 않고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바로 이 ‘심리적 안정감’이 자율성의 가장 단단한 토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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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중한 예비비는 어디에 보관하면 좋을까요? 입출금이 자유로우면서도 하루만 맡겨도 이자를 주는 ‘파킹통장’이나 ‘CMA(Cash Management Account)’ 같은 금융 상품이 적합합니다. 물론 순수하게 투자 관점에서 보면, 현금을 쥐고 있는 건 낮은 수익률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돈의 진짜 가치는 통장에 찍히는 이자 수익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선택권(optionality)’**에 있습니다. 자유 예비비는 현금 가치가 조금 하락할 수 있는 하방 위험은 제한적인 반면, 나를 병들게 하는 직장을 박차고 나올 힘이나 예기치 못한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능력 같은 상방 잠재력은 측정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따라서 이 자유 예비비를 구축하는 것은 내 인생에 거는 가장 확실한 ‘비대칭적 베팅(asymmetric bet)‘이며, 현금 보유에 따르는 기회비용은 자율성을 잃어버릴 수 있는 끔찍한 위험에 대비하는 보험료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제9장. 3단계 - ‘시간 회계’ 도입: 모든 지출을 당신의 삶과 교환하라
금융학에 ‘화폐의 시간가치’라는 개념이 있죠. 이 개념을 우리 개인의 삶에 한번 적용해보는 겁니다. 가게에서 물건을 집어 들 때, “이 물건 가격이 얼마지?“라고 묻는 대신, **“이걸 사기 위해 내 인생을 몇 시간이나 바쳐야 하지?”**라고 질문을 바꿔보는 겁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의 소비 습관은 극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계산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물건의 가격)을 (세금, 출퇴근 시간, 업무 관련 비용 등을 모두 빼고 계산한 나의 ‘진짜 시급’)으로 나누면 됩니다. ‘10만 원’이라는 추상적인 가격표가 “아, 내 인생의 5시간이구나"라고 환산되는 순간, 그 거래는 아주 현실적인 트레이드오프가 됩니다. “이 스마트폰이 내 유한한 인생의 5시간과 맞바꿀 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이 질문은 충동적인 소비를 막아주고, 나의 가장 소중한 자산인 ‘삶’과 지출을 일치시키는 강력한 ‘넛지(nudge)’, 즉 부드러운 개입으로 작용할 겁니다.
사례 연구: 로널드 리드 청사진 - 평범한 삶에서 구현된 비범한 원칙
이 보고서에서 이야기한 모든 원칙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완벽한 사례는, 서론에서 소개했던 바로 그 로널드 리드의 삶입니다.
- 원칙 1 (저축률이 왕이다): 그의 어마어마한 부는 높은 소득이 아니라,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높은 저축률에서 나왔습니다.
- 원칙 2 (인내와 복리의 힘): 그는 유행하는 테마주를 쫓아다니지 않았습니다. 그저 좋은 배당주를 사서 수십 년 동안 묵묵히 보유했을 뿐입니다. 그의 부는 천재적인 투자 감각의 산물이 아니라, 시간과 복리라는 가장 정직한 힘이 빚어낸 결과물이었습니다.
- 원칙 3 (소득보다 적게 쓰고 나머지는 투자하라): 그는 ‘나 자신에게 가장 먼저 돈을 지불하라’는 재테크의 제1원칙을 평생에 걸쳐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로널드 리드의 삶은 진짜 부가 머리가 좋거나 소득이 높은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의 몫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했습니다. 그는 남들보다 더 빨리 부자가 되려는 게임이 아니라, 더 길고, 궁극적으로 더 의미 있는 다른 종류의 게임을 함으로써 최종적인 승자가 되었습니다.
결론: 당신의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은 포트폴리오가 아닌 달력이다
이 글은 우리를 옭아매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함정들(1부)을 진단했고, 여기에 맞서는 요즘 시대의 저항들(2부)을 분석했으며, 마침내 우리 각자가 자유를 되찾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도구들(3부)을 제시했습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우리 재무 설계의 최종 목표는 통장 잔고의 액수를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율적인 시간의 총량을 극대화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진짜 성공적인 삶이란, 내 투자 포트폴리오의 규모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를 온전히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날들이 얼마나 많은가로 측정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돈의 가치를 계산하는 데는 아주 익숙합니다. 이제, 그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되돌려줄 시간입니다.
당신의 하루의 가치는 얼마이며, 그 하루를 되사기 위해 오늘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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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참고자료</strong>
- 로널드 제임스 리드(Ronald James Read) 관련 자료
- 중앙일보, "세상 떠나면서 90억원 기부한 미국 주유소 종업원"
- YouTube, "90억 부자가 떠먹여주는 성공 방식ㅣ로널드 제임스 리드 성공비밀"
- Stibee, "백화점 청소부가 90억 자산가가 된 비결"
- Wikipedia, "Ronald Read (philanthropist)"
- The Motley Fool, "The Janitor Who Became A Multi-Millionaire by Retirement"
- 행동경제학 및 심리학 개념 관련 자료
- Investopedia, "Lifestyle Inflation: What It Is, How It Works, and Example"
- Wikipedia, "Hedonic treadmill"
- Positive Psychology, "How to Escape the Hedonic Treadmill and Be Happier"
- 나무위키, "행동경제학"
- Steemit, "행동 편향과 투자 결정에 미치는 영향 (6) - 손실 회피 편향"
- 소득과 행복의 관계 (행복 고원) 관련 자료
- 제주일보, "소득과 행복의 관계"
- Korea Science, "이스털린 역설에 대한 연구"
- 내 삶의 심리학 mind, "돈을 많이 벌수록 더 행복할까?"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소득과 행복의 관계에 관한 연구"
- 한경 경제용어사전, "이스털린의 역설"
- 한국경제, "하버드 85년 연구의 결과…행복, 돈 아닌 관계에 있다"
- 파이어(FIRE) 운동 및 조용한 퇴사 관련 자료
- 나무위키, "파이어 운동"
- 중앙일보, "주식 안하고 5년만에 4억→21억…41세 파이어족 성공 비결"
- ResearchGate, "(PDF) An Evolutionary Concept Analysis of Quiet Quitting"
- 한겨레, "“받는 만큼 일할래요”…청년 '조용한 퇴사'에 빠지다"
- Healthline, "Is 'Quiet Quitting' Really Good for Your Health? What Experts Think"
- SoFi, "Pros & Cons of the F.I.R.E Movement"
- 실용적 프레임워크 관련 자료
- 나무위키, "스토아 학파"
- Cryptomus, "개인 재무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는 방법"
- Daum 뉴스, "파킹통장, CMA…하루만 예금해도 이자 나오는 상품들"
- 네이버 지식백과, "화폐의 시간가치"
- 유튜브(연합뉴스TV), ""부드러운 개입이 행동 바꾼다"…행동경제학 거두 세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