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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핀 딜레마 현실로, 다가오는 '달러 이후'의 세계

pho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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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ylized image representing the US dollar as a global empire, with network lines connecting continents.
세계 금융을 연결하는 달러 네트워크

미국 달러요? 이건 그냥 한 나라의 돈, 그 이상입니다. 뭐랄까, 거의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을 돌리는 운영체제(OS) 같은 거죠. 생각해보면,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만들어진 지금의 금융 시스템, 그 뿌리부터가 달러로 되어 있다는 얘기입니다. 전 세계 GDP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미국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 무역 결제의 40%, 각국이 비상금으로 쌓아두는 외환보유고의 거의 60%가 달러로 채워져 있으니, 이건 사실상 하나의 거대한 ‘금융 인프라’라고 봐야 합니다.

물론 이게 세계 경제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안정시키는 긍정적인 역할도 했죠.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건 미국에게 엄청난 무기를 쥐여준 셈이었습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세계 경제를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지렛대 말입니다.

이런 지위를 두고 과거 프랑스 재무장관이었던 샤를 드골이 기가 막힌 표현을 썼습니다.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 정말 정확한 지적이죠. 미국은 돈이 필요하면 그냥 달러를 찍어내기만 하면 됩니다. 전 세계가 그 돈을 받아주니까요. 이건 사실상 전 세계로부터 아주 싼 이자로 돈을 빌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에는 아주 근본적인 모순이 하나 숨어있습니다. 한 나라의 통화 정책(예를 들어, 미국 내 물가를 잡는 일)과 전 세계에 돈을 공급해야 하는 기축통화 발행국의 역할이 충돌하는 거죠. 이걸 1960년대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이 간파하고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과도한 특권’이 빛이라면, ‘트리핀 딜레마’는 그 빛에 반드시 따라오는 그림자인 셈입니다. 이 글은 바로 이 두 가지 키워드를 축으로 달러의 모든 것을 파헤쳐 보려고 합니다.

미국 달러의 과도한 특권과 트리핀 딜레마
미국 달러의 과도한 특권과 트리핀 딜레마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슬슬 이런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달러의 시대는 영원할까?” 겉보기엔 여전히 굳건해 보이지만, 그 밑을 들여다보면 상황이 좀 복잡합니다. 아니, 사실 꽤 심각하죠. 미국의 막대한 빚 문제,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 그리고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 첨예해진 지정학적 갈등, 여기에 CBDC 같은 기술 혁신까지. 정말 여러 겹의 도전이 한꺼번에 닥쳐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이런 도전들이 달러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한번 제대로 따져보려고 합니다. 달러가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올랐는지, 그 **‘역사적 경로 의존성’**과 거미줄처럼 얽힌 **‘네트워크 효과’**의 힘을 먼저 살펴볼 겁니다. 그리고 동시에 시스템을 안팎에서 흔드는 **‘균열 요인’**들은 무엇인지 진단해서 미래 시나리오를 그려보겠습니다. 이 여정을 통해 우리는 달러라는 거대한 제국의 지속 가능성과 그 한계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될 겁니다.

제1부: 제국의 설계도 (과거)

이 파트에서는 미국 달러가 어떻게 세계 금융의 왕좌에 올랐는지 그 과정을 추적해볼 겁니다. 이건 뭐랄까, 아주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과 역사의 우연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장이 자연스럽게 선택했다기보다는, 특정 시점에 미국의 설계와 현실이 맞물려 만들어진 구조물에 가깝죠. 그리고 한번 만들어진 길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 법입니다. 바로 **‘경로 의존성’**이라는 무서운 관성이 작동하기 시작한 겁니다.

브레튼 우즈의 청사진: 모든 길은 달러로 통하게 하라

달러 제국의 공식적인 출범은 1944년 7월, 미국 뉴햄프셔의 브레튼 우즈에서 맺어진 협정입니다. 대공황과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엉망이 된 세계 경제를 어떻게 새로 짤 것인가, 이게 당시의 화두였죠. 그때 미국은 어땠을까요? 전쟁의 피해는 거의 없이, **전 세계 제조업 생산의 절반, 전 세계 금 보유고의 3분의 2 이상(무려 2만 톤!)**을 손에 쥔, 그야말로 압도적인 플레이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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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lack and white photo of the Bretton Woods Conference in 1944, with delegates seated at tables.
1944년 브레튼 우즈 협정, 달러 중심의 세계 질서가 설계되다.

이 역사적인 협상 테이블에는 두 명의 천재가 마주 앉았습니다. 영국 대표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미국 대표 해리 덱스터 화이트. 이 둘의 논쟁은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를 넘어, 세계 경제를 어떤 철학으로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거대한 충돌이었습니다.

  • 케인스의 꿈, ‘방코르(Bancor)’: 케인스는 정말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내놨습니다. ‘방코르’라는 새로운 국제 화폐를 만들자는 거였죠. 이 시스템의 핵심은 빚이 많은 나라(채무국)와 돈이 많은 나라(채권국) 모두에게 무역 불균형을 해소할 책임을 똑같이 지우는 ‘대칭적 조정’이었습니다. 그래야 과거 금본위제처럼 다 같이 망하는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고 본 거죠.
  • 화이트의 현실, ‘달러 중심 질서’: 반면 화이트의 계획은 훨씬 현실적이고,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미국 중심적이었습니다. 새로운 화폐는 무슨 소리냐, 금 1온스당 35달러로 고정된 미국 달러를 중심에 놓자고 주장했죠. 조정의 책임도 주로 빚진 나라들에게 떠넘기는 방식이었습니다.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화이트의 승리였습니다. 단순히 미국 힘이 세서 그랬던 것만은 아닙니다. 케인스의 안은 어딘가 대영제국의 옛 영광을 지키려는 속내가 비쳤던 반면, 화이트의 안은 미국이 중심이 되지만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시스템처럼 보였거든요.

하지만 이 선택은 시스템에 처음부터 비대칭이라는 균열을 내포하게 만들었습니다. **‘과도한 특권’**은 어쩌다 생긴 부작용이 아니라, 바로 이 설계도에 처음부터 그려져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설계된 시스템은 한번 길이 나자 모두가 그 길로만 다니게 되는 강력한 **‘경로 의존성’**을 만들어냈고, 나중에 시스템이 무너진 후에도 달러의 영향력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구조적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구분케인스 계획 (국제청산동맹)화이트 계획 (국제안정화기금)
중심 준비자산방코르 (Bancor) - 초국가적 통화미국 달러 (금에 고정)
기구의 역할글로벌 중앙은행 (신용 창출)안정화 기금 (제한된 대출)
조정 메커니즘대칭적 (채권국/채무국 모두에 압력)비대칭적 (주로 채무국에 압력)
기저 철학관리된 세계주의 (Managed Globalism)미국 주도의 다자주의

불사조의 귀환: 금은 죽었지만, 석유가 왕위를 계승했다

영원할 것 같던 브레튼 우즈 체제도 약 25년 만에 위기를 맞습니다. 베트남 전쟁과 복지 정책으로 돈을 너무 많이 쓴 미국이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게 된 거죠. 결국 1971년 8월 15일, 닉슨 대통령이 폭탄선언을 합니다.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닉슨 쇼크’**입니다. 브레튼 우즈 체제의 사망 선고였죠.

상식적으로 보면 이건 달러에 대한 신뢰가 뿌리째 흔들리는 치명적인 위기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이 위기를 정말 기가 막히게 활용합니다. 금이라는 족쇄에서 풀려난 달러를 새로운 실물 자산, 바로 ‘석유’에 묶어버리는 신의 한 수를 둔 거죠. 1973년 오일 쇼크로 유가가 4배나 뛰자,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비밀 협상을 맺습니다. 앞으로 모든 석유 거래는 오직 달러로만 결제한다는 내용이었죠. ‘페트로달러(Petrodollar)’ 시스템의 탄생 순간이었습니다.

An oil pump jack silhouetted against a background of US dollar bills.
석유와 달러의 결합, 페트로달러 시스템

이건 달러 헤게모니의 본질을 완전히 바꿔놓은 사건이었습니다. 브레튼 우즈 시절 달러의 가치는 미국의 금 보유량이라는 한정된 ‘재고(stock)’에 묶여 있었지만, 페트로달러 시스템은 이걸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인 석유의 일상적인 ‘흐름(flow)’에 기반한 보증으로 바꿔버렸습니다. 이제 전 세계 모든 나라는 공장을 돌리려면 석유를 사야 하고, 석유를 사려면 먼저 달러를 구해야만 했습니다. 영구적인 달러 수요가 창출된 겁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석유를 팔아 막대한 달러를 번 산유국들은 그 돈을 다시 미국 국채를 사는 데 썼습니다. 이른바 ‘페트로달러 재순환’ 메커니즘 덕분에 미국은 낮은 이자로 손쉽게 돈을 빌려 적자를 메울 수 있었고, 달러 제국은 재정적으로도 더욱 튼튼해졌습니다.

시스템 관리자의 힘: 플라자 합의, 그리고 경쟁자의 소멸

1980년대 초, 이번엔 달러 가치가 너무 높아져서 문제였습니다. 결국 1985년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G5 국가들이 모여 인위적으로 달러 가치를 낮추기로 합의합니다. 이게 바로 **‘플라자 합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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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는 성공했지만, 일본에게는 재앙이었습니다. 엔화 가치가 두 배나 뛰면서 수출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고, 자산 거품 붕괴로 이어져 그 유명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기나긴 침체의 터널로 들어가게 됩니다. 플라자 합의는 미국이 시스템 관리 비용을 다른 나라에 얼마든지 떠넘길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건이었고, 훗날 중국 같은 나라들이 경각심을 갖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플라자 합의
1985년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G5 국가들이 모여 인위적으로 달러 가치를 낮추기로 합의합니다. 이게 바로 ‘플라자 합의’입니다.

그리고 1991년, 소련이 무너졌습니다. 냉전 시대에 달러와 경쟁하던 루블 블록이 사라지면서, 달러는 마지막 남은 지정학적 경쟁자마저 잃게 됩니다. 이로써 달러는 명실상부한 **‘유일 패권 통화(Unipolar Currency)’**의 시대를 열게 됩니다.

제2부: 홀로 선 자의 압박 (현재)

이제 현대로 와보겠습니다. 이 장에서는 최근의 위기들이 어떻게 달러 체제를 흔드는 것처럼 보였지만, 역설적으로 그 지위를 더 강화했는지, 동시에 미래의 균열을 만들어냈는지 살펴볼 겁니다.

권력의 역설: 위기가 닥치면 모두가 달러를 찾는다

오늘날 달러의 힘의 핵심은 **‘네트워크 효과’**에 있습니다. 모두가 쓰니까 나도 쓰는 게 가장 편하고 이득이 되는 상황 말입니다. 이런 달러의 힘은 위기 때 더 빛을 발합니다.

**‘달러 스마일 이론’**이라는 게 있는데요, 미국 경제가 아주 잘 나갈 때와 전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졌을 때, 이 양 극단에서 달러 가치가 오른다는 이론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딱 그랬습니다. 위기의 진원지는 명백히 미국이었지만, 투자자들은 다른 모든 자산을 내던지고 유일하게 안전하다고 믿는 미국 국채 시장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이 ‘안전자산으로의 도피’ 현상 때문에 달러 가치는 폭등했습니다.

A graph showing the Dollar Smile Theory, where the dollar strengthens during both strong US growth and global risk aversion.
위기 속에서 가치가 오르는 달러의 역설

2008년 위기는 달러가 단순히 ‘안전 피난처’가 아니라, 시스템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배관(plumbing)’**과 같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위기 시에는 기댈 곳이 미국 시장밖에 없다는 구조적 의존성이 달러의 힘인 것입니다.

통화2000년2008년2015년2023년
미국 달러 (USD)71.0%64.1%65.7%58.9%
유로 (EUR)18.3%26.2%19.1%20.1%
일본 엔 (JPY)6.1%3.3%4.0%5.4%
영국 파운드 (GBP)2.8%4.2%4.7%4.8%
중국 위안 (CNY)--1.1%2.6%
기타1.8%2.2%5.4%8.2%
출처: IMF COFER Data (2023년 4분기 기준)

시스템의 모순: 저축 과잉이 부른 ‘환율 전쟁’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아시아 국가들은 ‘자기 보험’을 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러를 쌓아두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벌어들인 달러로 미국 국채를 사들이니, 미국의 금리는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게 됐습니다.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는 이걸 **‘세계적 저축 과잉(Global Saving Glut)’**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값싼 돈이 미국 내에서 더 높은 수익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같은 위험한 자산으로 흘러 들어갔고, 이게 2008년 금융위기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의 생존 전략이 역설적으로 미국에 금융 시한폭탄을 설치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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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수습을 위해 연준은 ‘양적완화(QE)’를 시작했고, 이 값싼 달러들이 신흥국으로 홍수처럼 밀려 들어갔습니다. 통화가치 급등과 자산 거품에 시달리던 브라질 재무장관은 2010년, **“이건 국제 환율 전쟁이다!”**라고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바로 트리핀 딜레마가 현실이 된 순간이었죠. 미국이 자국 경제를 위해 한 일이 다른 나라에는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제 각자도생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제국의 아킬레스건: 끝없이 늘어나는 빚

사실 달러의 가장 큰 위협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쌍둥이 적자(재정 적자+무역 적자)’ 문제입니다. ‘과도한 특권’ 덕분에 미국은 버는 것보다 더 많이 쓰며 살아왔지만, 그 대가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가 부채였습니다. 2024년 현재, 미국 연방정부 부채는 34조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GDP의 120%가 넘는 엄청난 규모죠.

A digital display showing the rapidly increasing US national debt clock.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미국의 국가 부채

이것은 트리핀 딜레마의 심화된 모습입니다. 기축통화국은 세계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적자를 내야 하지만, 그 빚이 너무 많아지면 결국 통화에 대한 믿음이 무너질 수 있다는 모순. 만약 전 세계 투자자들이 “미국이 저 빚을 갚을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달러 투매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루비콘 강을 건너다: 달러, 무기가 되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 중앙은행의 해외 외환보유고 약 3,000억 달러를 동결시켜 버렸습니다. 한 강대국의 자산을 이렇게 묶어버린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조치는 전 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줬습니다.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미국 국채가 사실은 지정학적 위험에 노출된 자산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깨닫게 된 거죠. 이 사건은 ‘탈달러화’ 논의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특히 중국처럼 미국과 껄끄러운 나라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쌓아둔 달러 자산이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겁니다. 달러 시스템이 중립적인 인프라가 아니라 서구 권력의 도구라는 사실이 명백해졌고, 대안을 찾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가 되었습니다.

제3부: 새로운 질서의 윤곽 (미래)

자, 그럼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이 장에서는 달러의 아성에 도전하는 세력들과 새로운 기술들이 판을 어떻게 바꿀지 살펴보겠습니다.

위안화와 브릭스, 그들의 꿈은 이루어질까?

최근 몸집을 불린 브릭스(BRICS) 국가들은 달러에 맞서는 대표적인 세력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진짜 목표는 달러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제재 방어(sanction-proofing)’**에 가깝습니다. 러시아처럼 금융 제재를 당했을 때 살아남을 수 있는 ‘금융 구명보트’를 만드는 거죠.

현실의 벽은 높습니다. 중국의 위안화 국제결제시스템(CIPS)이 성장했지만 여전히 대부분 SWIFT 망에 의존하고 있고, 위안화 자체도 자본 통제와 낮은 금융시장 신뢰도라는 한계를 가집니다. 기축통화는 단순히 경제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지표미국 (USD)유로존 (EUR)중국 (CNY)
세계 GDP 비중 (PPP 기준)15.5%11.2%18.5%
세계 무역 비중10.4%14.7% (역외)15.0%
외환보유고 비중58.9%20.1%2.6%
외환시장 거래 비중88%31%7%
정부채 시장 규모~ 27조 달러~ 15조 달러~ 21조 달러
자본계정 개방도완전 개방완전 개방부분 통제
법치주의/투자자 보호매우 높음높음중간 이하
출처: IMF, BIS, World Bank 등 종합 (2023-2024년 기준)

기술의 역습: CBDC와 ‘디지털 유로달러’

CBDC와 스테이블 코인
CBDC와 스테이블 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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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최대 화두는 단연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입니다. 특히 중국 등이 참여하는 ‘프로젝트 엠브릿지(Project mBridge)’는 달러를 거치지 않는 해외 송금의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한편, 민간에서는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USDT, USDC)**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이 이들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 발행사들이 미국 국채를 담보로 쌓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커질수록 미국 국채 수요도 늘어나는, 잠재적 위협을 오히려 달러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지지대로 활용하는 영리한 전략입니다. 과거 ‘유로달러’처럼, 이제 블록체인 위의 **‘디지털 유로달러’**가 21세기 달러 제국을 떠받치는 기둥이 될지도 모릅니다.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있다: 보호무역의 그림자

달러의 가장 큰 단기적 위협은 어쩌면 미국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미국이 극단적인 보호무역 정책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요? 달러 시스템의 근간은 자유로운 무역과 자본 이동인데, 그 근간을 스스로 허물어 버리는 셈입니다. 이런 움직임은 달러의 지위를 스스로 깎아 먹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영원한 피난처, 금의 귀환

국제 금값상승을나타내는 이미지
국제 금가격의 가파른 상승
달러 시스템이 무기화되는 것을 본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조용히 다른 보험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금’**입니다. 2022년과 2023년, 각국 중앙은행들은 수십 년 만에 최대 규모로 금을 사들였습니다. 특히 중국, 폴란드, 인도 같은 신흥국들이 적극적입니다. 이는 달러 자산에만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고, 정치적 위험이 없는 중립적 실물 자산으로 외환보유고를 다변화하려는 분명한 움직임입니다.

연도중앙은행 순매수량 (톤)주요 매입국
2022년1,082터키, 중국, 이집트, 카타르, 이라크
2023년1,037중국, 폴란드, 싱가포르, 리비아, 체코
2024년 1분기290터키, 중국, 인도, 카자흐스탄
출처: World Gold Council (2024년 1분기 기준)

결론: 단극 시대의 종언, 그리고 그 후

결론적으로, 가까운 미래에 달러를 대체할 단일 통화가 나오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미국 국채 시장의 압도적인 규모와 유동성, 그리고 **‘네트워크 효과’**의 힘 때문이죠.

하지만 의심의 여지 없던 달러의 ‘단극 헤게모니’ 시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과도한 특권’은 서서히 침식되고 있습니다. 안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빚 문제, 밖에서는 중국의 도전과 지정학적 대결, 여기에 기술 혁신까지. 시스템의 피로도가 곳곳에서 누적되고 있습니다.

미래는 달러가 아예 없는 세상이 아니라, 더 조각나고 여러 개의 힘이 경쟁하는 **‘다극적 통화 환경’**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장기적으로 **‘점진적 다극화(Gradual Multipolarity)’**의 길을 밟게 될 겁니다. 달러가 갑자기 몰락하는 게 아니라, 세계 경제가 여러 축으로 나뉘는 흐름에 맞춰 유로, 위안화 등 다른 통화들과 역할을 나누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변해가는 거죠.

물론 달러는 여전히 **‘동등한 자들 중 첫 번째(first among equals)’**로서 가장 중요한 통화로 남을 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혼자가 아닙니다. 위안화와 유로가 이끄는 지역 블록, 새로운 디지털 화폐들, 그리고 금과 같은 전통적인 안전자산과 공존하며 경쟁해야 할 겁니다. 이 새로운 시스템은 훨씬 더 복잡하고, 어쩌면 덜 안정적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경제 전략의 근본적인 수정을 요구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거죠. 영원할 것 같았던 달러 제국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불확실성과 기회의 시대가 문을 열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 Eichengreen, Barry. Exorbitant Privilege: The Rise and Fall of the Dollar and the Future of the International Monetary System.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 Prasad, Eswar S. The Dollar Trap: How the U.S. Dollar Tightened Its Grip on Global Financ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4.
  • 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Currency Composition of Official Foreign Exchange Reserves (COFR).
  •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BIS). Triennial Central Bank Survey of Foreign Exchange and Over-the-counter (OTC) Derivatives Markets.
  • World Gold Council. Gold Demand Trends Reports.
  • Penn Wharton Budget Model (PWBM). The Economic Effects of President Trump’s Tariffs. 2024.
  • “Why White, Not Keynes? Inventing the Postwar International Monetary System” - IMF Working Paper
  • “Project mBridge: experimenting with a multi-CBDC platform for cross-border payments” - B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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