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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의 시대, 예측 대신 '견고함'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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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안개속으로 비행하는 비행기 조종속의 모슴
안개 속을 비행하는 조종사에게 백미러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여기 한 명의 조종사가 있습니다. 그의 계기판에는 딱 하나, **‘백미러’**만 달려 있죠. 그는 자신이 지나온 반듯한 활주로와 평온했던 하늘을 보며 혼잣말을 합니다. “음, 내가 온 길이 이토록 완벽했으니 앞으로도 문제없을 거야.”

하지만 정작 그의 앞유리는 짙은 안개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거대한 산맥으로 돌진하고 있는 건지, 역사상 최악의 난기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건지 전혀 알 길이 없죠. 그가 가진 유일한 믿음은 ‘과거가 미래를 보장한다’는, 아주 달콤하지만 치명적인 환상뿐입니다.

솔직히 말해, 이것이 바로 오늘날 수많은 투자자들이 시장을 대하는 방식과 놀랍도록 닮아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의 수익률 데이터와 정교한 경제 모델이라는 백미러에 의존하며 미래를 향한 비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피로 써 내려간 가장 무서운 진실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가장 치명적인 위험과 가장 위대한 기회는, 언제나 지도에 없던 곳에서 불쑥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이 글은 어떤 대단한 투자 기술을 알려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당신의 투자 관점을, 아니 세상을 보는 방식을 통째로 바꾸기 위한 초대장입니다. 예측이라는 신기루를 좇는 헛된 노력을 이제 그만두고, 어떤 미래가 닥쳐도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굳건히 지켜낼 **‘견고함’**이라는 가장 위대한 지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1부: 역사가 우리에게 속삭이는 위험한 거짓말

우리는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역사를 미래 예측의 도구로 쓰는 순간, 역사는 가장 교활한 사기꾼으로 돌변합니다. 과거 데이터는 미래의 청사진이 아닙니다. 그저 특정 조건 아래에서 일어났던 일들의 ‘박제된 기록’일 뿐이며, 그 기록은 자신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세상이 올 거라는 경고는 절대 해주지 않죠.

사례 1: 잿더미 위에서 싹튼 기적, 2차 세계대전

1945년, 전쟁이 끝났을 때의 세상을 상상해 보세요. 당시의 ‘데이터’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독일의 산업 생산량은 3분의 1 토막이 났고, 일본의 도시는 지도에서 사라졌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수십 년간의 암흑기를 예언했죠.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가장 ‘합리적’인 투자 전략은 모든 걸 팔고 다가올 대불황을 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쟁후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는 모습
1945년의 데이터는 절망뿐이었지만, 역사는 예측과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1945년의 데이터는 절망뿐이었지만, 역사는 예측과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역사는 비관을 비웃듯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미국이 ‘마셜 플랜’을 가동하며 유럽 재건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은 것입니다. 파괴된 인프라가 복구되고, 억눌렸던 소비가 폭발했으며, ‘베이비 붐’이 새로운 수요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1950년부터 서구 세계는 **‘자본주의의 황금기’**라 불리는 경이로운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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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의 비관적인 데이터만 믿었던 투자자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부의 창출 과정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역사는 데이터의 연장선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인간의 결단이 만들어내는 창조물임을 증명한 순간이었죠.

사례 2: 9/11 테러, 무너진 것은 건물이 아니었다

2001년 9월 10일, 그 어떤 리스크 모델에도 ‘테러리스트가 미국 여객기를 납치해 뉴욕 심장부를 타격한다’는 시나리오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삼류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으니까요. 9월 11일, 무너진 건 단지 두 개의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세계는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안정될 것’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믿음이 무너진 것입니다.

911 테러 뉴욕 제로 그라운드
9.11 테러 이 놀라움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블랙스완이 되었다

이 엄청난 ‘놀라움’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연쇄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1. 테러와의 전쟁: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값비싼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2. 초저금리 시대: 경기 침체 공포에 연준은 금리를 역사적인 수준까지 내렸습니다.
  3. 주택 시장 거품: 초저금리는 주택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거대한 거품을 만들었습니다.
  4. 2008년 금융 위기: 결국 거품은 터졌고, 전 세계는 최악의 금융 위기로 빠져들었습니다.

과거 100년의 금융 데이터를 아무리 정교하게 분석한들, 뉴욕의 테러가 7년 뒤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올 거라고 예측할 수 있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역사는 이처럼 **하나의 거대한 충격(블랙 스완)**이 수십 년에 걸쳐 전혀 예상치 못한 파장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2부: 새로운 놀라움의 시대, 안개는 더 짙어졌다

과거의 ‘놀라움’이 주로 외부 충격이었다면, 지금 우리는 게임의 규칙 자체가 바뀌는 근본적인 구조적 파괴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과거의 지도는 정말로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패러다임 전환 1: ‘평평한 세계’의 종말, 탈세계화

지난 40년간 세계 경제는 **‘세계화’**라는 믿음 위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가장 값싼 곳에서 만들어 저렴하게 공급하는 세상. 이 흐름 속에서 ‘인플레이션은 죽었다’는 선언까지 나왔었죠. 하지만 팬데믹과 전쟁은 이 믿음을 흔들었습니다. 공급망이 마비되고 에너지가 무기화되는 현실을 마주한 것입니다.

복잡하게 얽힌 전 세계의 운송 경로를 나타내는 지도
효율을 중시하던 세계화의 시대가 저물고, 안보와 회복탄력성이 중요해졌습니다.

이제 세계는 ‘효율’보다 **‘안보’와 ‘회복탄력성’**을 먼저 생각합니다. 자국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는 ‘탈세계화’는 지난 40년간 세상을 지배해 온 저물가 시대가 끝났다는 구조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패러다임 전환 2: 생성형 AI, 지성의 산업혁명

2022년 11월, ChatGPT가 등장하기 직전 그 어떤 경제 전망 보고서에도 ‘거대 언어 모델이 인류의 지식 노동 생산성을 근본적으로 뒤바꿀 것’이라는 예측은 없었습니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증기기관이나 인터넷 발명과 같은 **‘일반목적기술’**의 탄생입니다. 사회 전체의 생산성, 노동의 가치, 지식의 정의를 바꾸는 거대한 물결이죠.

일반 목적 기술
거대 언어 모델이 인류의 지식 노동 생산성을 근본적으로 뒤바꿀 것

“20세기에 만들어진 회계 원칙으로,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하는 알고리즘의 가치를 어떻게 측정할 거죠?” PER, PBR 같은 낡은 잣대로는 AI가 가져올 파괴적 혁신의 가치를 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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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예측이 아닌 견고함, 당신만의 ‘방주’를 만드세요

이 짙은 안개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더 정교한 예측 모델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어떤 폭풍우에도 부서지지 않는 튼튼한 **‘방주’**를 만드는 데 지혜를 집중해야 합니다.

폭풍우속의 등대
미래를 예측하기보다 어떤 폭풍우도 견뎌내는 견고함을 갖춰야 합니다.

미래를 예측하기보다 어떤 폭풍우도 견뎌내는 견고함을 갖춰야 합니다.

원칙 1: 벤저민 그레이엄의 지혜 - 실수를 위한 공간 (안전 마진)

투자의 아버지, 벤저민 그레이엄의 ‘안전 마진’은 ‘나는 틀릴 수 있고, 세상은 나를 놀라게 할 것이다’라는 겸손함의 표현입니다. 예상치 못한 위기에도 삶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현금 쿠션’**이 바로 당신의 안전 마진입니다. 현금은 수익률 0짜리 자산이 아니라, 공포의 순간에 위대한 자산을 헐값에 살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콜옵션’**입니다.

원칙 2: 나심 탈레브의 엣지 - 충격으로부터 이익을 얻어라 (안티프래질)

나심 탈레브는 충격을 받았을 때 오히려 더 강해지는 ‘안티프래질’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포트폴리오가 안티프래질하다는 것은, 시장 폭락과 같은 위기가 닥쳤을 때 오히려 기회를 잡는 것을 의미합니다. 충분한 안전 마진(현금)을 가진 당신은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던지는 위대한 자산을 주워 담아 더 부유해질 수 있습니다. 위기가 당신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원칙 3: 모건 하우절의 영혼 - 최고의 전략은 평생 지킬 수 있는 전략이다

모건 하우절은 『돈의 심리학』에서 개인 투자자들이 시장 평균보다 낮은 수익률을 얻는 이유가 ‘행동 격차’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공포에 팔고 탐욕에 사는 감정적인 행동이 수익을 갉아먹는 것이죠. 결국 최고의 전략은 이론상 수익률이 가장 높은 전략이 아니라, 시장이 미쳐 날뛸 때도 당신이 편히 잠들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나갈 수 있는 전략입니다. 투자는 시장과의 싸움이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결론: ‘나는 모른다’는 가장 자유로운 지혜

이제 우리는 짙은 안개 속에서 더 이상 불안하지 않습니다. 백미러를 떼어버리고 불확실성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했으니까요.

투자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지는 미래를 맞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미래에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겸허하게 인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 위대한 깨달음은 우리를 예측이라는 어리석은 게임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대신 우리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 즉 저축률, 인내심, 겸손함에 집중하게 만들죠.

예측의 족서ㅣ의 파괴
나는 미래에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예측이라는 어리석은 게임에서 해방

이것들이야말로 그 어떤 예측 모델보다 강력한, 미지의 세계를 항해하는 당신만의 새로운 나침반이 될 겁니다. 부디, 예측의 노예가 아닌 견고함의 주인이 되십시오. 그리하여 세상이 상상조차 못 한 폭풍우를 만났을 때, 당신과 가족이 머무를 안전하고 튼튼한 방주 위에서 평온한 마음을 누리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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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모건 하우절(Morgan Housel), 『돈의 심리학 (The Psychology of Money)』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 『블랙 스완 (The Black Swan)』, 『안티프래질 (Antifragile)』
  •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 『현명한 투자자 (The Intelligent Investor)』
  •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역사의 종말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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