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5. 규제의 건틀릿: 와일드 웨스트에서 질서의 시대로 ⚖️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기술적 실험을 넘어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중요 구성 요소로 부상함에 따라, 전 세계 규제 당국은 더 이상 이를 방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특히 2022년 테라-루나 사태는 규제 공백이 초래할 수 있는 파괴적인 시스템 리스크를 명백히 보여주었고, 각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규제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규제는 혁신을 저해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고, 소비자를 보호하며, 나아가 ‘디지털 통화 냉전’에서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핵심 전략 도구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포스트-테라 시대의 각성: ‘야생의 서부’는 끝났다
테라-루나의 붕괴는 스테이블코인, 특히 담보가 불분명하거나 없는 알고리즘 모델의 내재적 위험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 이 사건은 금융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력에 대한 규제 당국의 우려가 기우가 아니었음을 증명했으며, 스테이블코인을 기존 금융 규제의 틀 안으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글로벌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이제 시장의 화두는 **‘규제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로 완전히 전환되었습니다.
글로벌 규제 경쟁: 표준을 향한 수렴과 전략적 차이
각국은 자국의 금융 환경과 전략적 목표에 따라 각기 다른 접근법을 취하고 있지만, 몇 가지 공통된 원칙을 향해 수렴하고 있습니다.
- 유럽 연합 (MiCA): EU의 **암호자산시장법(MiCA, Markets in Crypto-Assets)**은 세계 최초로 포괄적인 암호자산 규제 체계를 도입한 선도적인 사례입니다. MiCA는 스테이블코인을 ‘자산준거토큰(ART)‘과 ‘전자화폐토큰(EMT)‘으로 분류하고, 발행사에 대해 엄격한 라이선스 취득, 준비금 요건(고품질 유동자산으로 1:1 보유), 그리고 모든 보유자에게 상환권을 보장할 것을 의무화합니다. 특히 ‘패스포팅(passporting)’ 제도를 통해 한 회원국에서 라이선스를 받으면 EU 전역에서 영업할 수 있도록 하여 단일 시장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다만, 회원국 간 감독 역량 차이로 인한 ‘규제 차익 거래(regulatory arbitrage)‘의 가능성은 잠재적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 미국: 아직 연방 차원의 단일 법안은 없지만, 주(state)와 연방 정부 차원에서 규제가 점진적으로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뉴욕주는 일찍이 ‘비트라이선스(BitLicense)’를 통해 선도적인 규제 환경을 구축했으며, 연방 의회에서는 지급결제용 스테이블코인 발행 및 운영을 규제하는 ‘GENIUS Act’, ‘STABLE Act’와 같은 법안들이 발의되었습니다. 미국의 규제 논의 기저에는 스테이블코인을 금융 혁신의 도구로 활용하여 달러의 글로벌 기축통화 지위를 디지털 시대에도 유지하려는 강력한 전략적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 영국: ‘지급수단으로 사용되는 스테이블코인’을 기존 금융서비스 규제 체계에 편입시키는 단계적 접근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영국 금융행위감독청(FCA)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및 수탁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규칙을 제안하며, 담보자산의 구성, 관리, 상환(T+1, 즉 상환 요청 후 다음 영업일까지 지급), 투명성 및 공시 요건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이는 혁신을 수용하되, 그 위험은 기존 전통 금융상품과 유사한 수준으로 통제하려는 실용적인 접근 방식을 보여줍니다.
- 싱가포르: 세계 최초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독자적인 규제 프레임워크를 확정하며 글로벌 디지털 자산 허브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통화청(MAS)은 모든 디지털 토큰 서비스 제공자에게 라이선스 취득을 의무화하고, 자금세탁방지(AML) 및 테러자금조달방지(CFT)에 대한 국제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합니다. 이 프레임워크는 발행 요건, 준비금 관리, 환매 절차, 공시 의무 등을 명확히 규정하여 시장에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규제는 혁신의 동반자 : 신뢰가 곧 경쟁력이다
초기 시장에서는 규제가 혁신의 발목을 잡는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이제는 명확한 규제가 오히려 경쟁 우위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규제 준수를 강조해 온 USDC가 규제 불확실성에 직면했던 USDT와의 시장 점유율 격차를 좁히고 있는 현상이 이를 방증합니다.
이러한 글로벌 규제 동향은 중요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전 세계 규제 당국은 스테이블코인을 관리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규칙을 발명하는 대신, 수십 년간 축적된 전자화폐(e-money)나 머니마켓펀드(MMF) 규제의 핵심 원칙들을 새로운 기술 환경에 맞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즉, ▲고품질 유동자산에 의한 100% 담보, ▲보유자의 즉각적인 상환권 보장, ▲발행사에 대한 인허가 및 건전성 감독, ▲정기적인 감사와 투명한 공시라는 네 가지 원칙이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주류 금융 시스템에 편입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며, 동시에 높은 규제 준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대규모 기관 플레이어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part6. 새로운 금융 리터러시의 여명, 현명한 항해사가 되어라 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