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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장벽 : 가까이, 하지만 닿지 않는 우리

pho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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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하는 자유, 닿지 않는 마음

여러분, 발트해의 차가운 바람이 스치는 나라,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 있는 한 조각상을 상상해보세요. 거대한 강철로 만들어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를 향해 아주 천천히, 그러나 멈춤 없이 다가갑니다. 금방이라도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줄 것 같던 기대감도 잠시, 두 몸은 서로의 형체를 그대로 통과하며 스쳐 지나가고, 이내 텅 빈 공간을 사이에 둔 채 다시 멀어집니다. 이 영원한 움직임 속에는 간절함과 쓸쓸함이 함께 배어있죠.

에스토니아 탈린 박물관의 거대한 남녀 조각상이 서로를 통과하며 회전하는 신비로운 모습
에스토니아 탈린 박물관의 거대한 남녀 조각상이 서로를 통과하며 회전하는 신비로운 모습

이 조각상은 수십 년간 거대한 이웃의 그늘 아래서 신음했던 에스토니아인들이 노래로 되찾은 ‘자유’에 대한 무한한 갈망과 지지를 상징한다고 해요. 결코 멈추지 않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 움직임. 그 자체로 숭고한 이상이죠.

저는 문득, 이 닿을 수 없는 움직임이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과 놀랍도록 닮아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에게도 한때 세상을 구원할 것 같았던, 눈부신 ‘자유’가 찾아왔으니까요. 바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열린 소셜 미디어 시대, 정보와 생각의 흐름이 국경도, 시간도 없이 넘나드는 새로운 세상이었죠. 우리는 그 안에서 더 넓게 연결되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며, 마침내 하나의 공동체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2. 디지털 광장의 첫 설렘

기억하시나요? 2010년대 초반, 우리가 느꼈던 그 설렘을.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를 ‘디지털 아고라’라 불렀습니다. 이집트의 광장을 가득 메웠던 시민들의 함성이 트위터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우리는 인류가 드디어 억압을 넘어 진정한 소통의 시대를 맞이했다고 환호했죠. 내 방구석의 작은 목소리가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에게 가닿고, 공감을 얻고,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내는 기적을 목격했습니다. 그때의 자유는 무한한 가능성 그 자체였습니다.

여러 인종과 연령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서로 밝게 연결되는 모습을 형상화한 일러스트
여러 인종과 연령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서로 밝게 연결되는 모습을 형상화한 일러스트

하지만 우리는 몰랐습니다. 그 눈부신 광장 아래,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 그림자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요.

3. 금이 가버린 저녁 식탁

이야기는 저희 집의 아주 평범했던 어느 명절 저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갈비찜과 향긋한 잡채가 놓인 식탁.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정겹게 오갔습니다. 대화는 자연스레 최근 발표된 부동산 정책으로 흘러갔죠. 그때였습니다. 늘 유쾌하시던 삼촌께서 평소와 다른 진지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꺼내 드셨습니다.

“너희는 아직 세상을 잘 몰라. 언론에 나오는 건 다 거짓말이야. 내가 가입한 이 페이스북 그룹에 진짜 전문가가 쓴 글이 있는데, 이대로 가면 다 같이 망하는 길이라고!”

삼촌이 보여주신 화면에는 ‘충격 폭로!’, ‘정부가 숨겨온 진실!’ 같은 자극적인 제목과 출처 불명의 그래프 몇 개가 전부인 글이 떠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여러 기사와 보고서를 통해 확인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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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그런데 그 내용은 사실과 좀 다른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공식 통계를 보면 장기적으로는 이런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하던데요.”

그 순간, 식탁의 따뜻했던 공기가 차갑게 식었습니다. 삼촌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죠. “그건 다 그들이 너희를 세뇌하려고 만든 자료야! 이 그룹에 모인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두 바보인 줄 아니?” 대화는 더 이상 정책 토론이 아니었습니다. ‘진실을 보는 우리’와 ‘세뇌당한 너희’ 사이의 전쟁이었죠. 우리는 한 공간에 있었지만, 사실은 각자의 스마트폰이 만들어준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던 겁니다.

‘진실을 보는 우리’와 ‘세뇌당한 너희’ 사이의 전쟁
'진실을 보는 우리'와 '세뇌당한 너희' 사이의 전쟁

4. 우리를 갈라놓는 몇 가지 풍경

삼촌과의 저녁 식사 같은 극적인 갈등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소셜 미디어가 만든 투명한 벽은, 우리의 평범한 관계마저 여러 모습으로 조용히 허물어뜨리고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겪어보셨을 법한, 몇 가지 익숙한 풍경들이죠.

  • 첫 번째 풍경: 친구의 성공에 눌리는 ‘좋아요’ 어릴 적 단짝이었던 친구의 SNS를 볼 때마다 느껴지는 미묘한 박탈감을 아시나요? 친구의 피드는 해외여행, 고급 레스토랑, 승진 파티처럼 행복이 편집된 ‘인생의 하이라이트’로 가득합니다. 야근과 씨름하는 내 초라한 현실과 비교하며, 어느새 축하보다는 질투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죠. 애써 ‘좋아요’ 버튼을 누르지만, 마음 한구석은 서늘해집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친구의 소식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서로의 진짜 삶에서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어릴 적 단짝이었던 친구의 SNS를 볼 때마다 느껴지는 미묘한 박탈감
    어릴 적 단짝이었던 친구의 SNS를 볼 때마다 느껴지는 미묘한 박탈감
  • 두 번째 풍경: 공허한 위로, 외로운 밤 정말 힘든 일이 있어 용기를 내어 속마음을 털어놓는 글을 올렸을 때, ‘힘내’, ‘기도할게’ 같은 댓글과 수십 개의 ‘좋아요’가 쌓입니다. 하지만 정작 전화 한 통, 메시지 한 통 없는 밤의 공허함을 겪어보셨을지 모릅니다. 나의 아픔은 친구들의 타임라인 위에서 잠시 소비되고, 사람들은 손가락 터치 한 번으로 ‘위로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연결되어 있다는 착각 속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철저히 혼자가 되어갑니다.
    정말 힘든 일이 있어 용기를 내어 속마음을 털어놓는 글을 올렸을 때, ‘힘내’, ‘기도할게’ 같은 댓글과 수십 개의 ‘좋아요’가 쌓입니다.
    정말 힘든 일이 있어 용기를 내어 속마음을 털어놓는 글을 올렸을 때, '힘내', '기도할게' 같은 댓글과 수십 개의 '좋아요'가 쌓입니다.
  • 세 번째 풍경: ‘언팔’로 정리되는 십 년 우정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십수 년을 함께한 친구의 계정을 ‘언팔’해 본 경험은 없으신가요? 한때는 밤새워 인생을 이야기하던 사이였지만, 이제는 그의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글들이 불편하고 심지어는 분노를 유발합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그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관계를 끊어내는 것이 가장 쉬운 해결책이 되어버렸죠. 우리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거나 이해하려는 노력 대신, 디지털 세상에서 그를 간단히 ‘삭제’해 버립니다.
    우리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거나 이해하려는 노력 대신, 디지털 세상에서 그를 간단히 ‘삭제’해 버립니다.
    우리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거나 이해하려는 노력 대신, 디지털 세상에서 그를 간단히 '삭제'해 버립니다.

이 모든 풍경 뒤에는 ‘알고리즘’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습니다. 나를 너무나 잘 아는 이 친절한 집사는 내가 좋아할 만한 것만 보여주며 나를 안락한 ‘에코 챔버’에 가두고, ‘확증 편향’을 강화시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타인의 다채로운 삶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알고리즘이 편집해준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상대를 쉽게 판단하고 재단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 개의 스마트폰 화면에 친구들의 행복한 모습, 슬픈 표정, 정치적 구호가 각각 떠 있고 그 사이가 금이 간 모습
여러 개의 스마트폰 화면에 친구들의 행복한 모습, 슬픈 표정, 정치적 구호가 각각 떠 있고 그 사이가 금이 간 모습

5. 민주주의라는 ‘시끄러운 춤’을 위하여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보이지 않는 벽을 부수고 다시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은 ‘불편함을 감수할 용기’, 그리고 ‘여행자가 될 각오’에 있다고 믿습니다. 매일 보던 채널 대신 일부러 다른 채널을 켜보는 작은 불편함,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가진 친구의 글에 반박 댓글을 달기 전 10초만 숨을 고르는 노력, 그리고 때로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불편함을 감수할 용기’, 그리고 ‘여행자가 될 각오’에 있다고 믿습니다. 매일 보던 채널 대신 일부러 다른 채널을 켜보는 작은 불편함,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가진 친구의 글에 반박 댓글을 달기 전 10초만 숨을 고르는 노력, 그리고 때로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겸손함
'불편함을 감수할 용기', 그리고 '여행자가 될 각오'에 있다고 믿습니다. 매일 보던 채널 대신 일부러 다른 채널을 켜보는 작은 불편함,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가진 친구의 글에 반박 댓글을 달기 전 10초만 숨을 고르는 노력, 그리고 때로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겸손함

민주주의는 본래 조용하고 아름다운 하모니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뒤섞여 때로는 불협화음을 내는, 시끄럽고 활기찬 시장과 같죠. 그 건강한 소음을 회복하는 것. 탈린의 조각상처럼 영원히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운명을 거부하고, 잠시 회전을 멈추어 어색하더라도 함께 새로운 춤을 배워보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이 위대한 자유의 시대에 우리가 민주주의를, 그리고 서로의 망가진 관계를 지켜내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릅니다.

#소셜미디어#관계단절#상대적박탈감#에코챔버#확증편향#알고리즘#민주주의#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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